2014년이 가고 2015년이 온다. 1996년을 제외한다면 나에게 특별히 기억되는 한 해는 없다. 그래서 어떤 일이 일어난 해를 정확히 기억해 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누군가 2001년을, 혹은 2009년을 묻는다면 선뜻 대답하기 어렵다. 시간이란 인위적인 구획으로 가두는 것이 불가능함을 머리로는 알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는 해와 오는 해의 경계에서는 머뭇댄다. 정말 2015년이 오고야 만다.

 

서른 살이 되는 나를 1996년에는 감히 상상할 수 없었지만 마흔 살이 되는 나를 2014년에는 현실감 있게 지각한다. 아니 더 나아가 내가 쉰도 심지어 여든도 될 수 있음을 안다. 이제 나는 저지를 수 있는 일들이 점점 줄어드는 나이로 간다.

 

2014년, 아직 추위가 물러나지 않은 아침을 유모차를 굴리며 학부형이 되는 시간들을 나름 힘겹게 보내고 결혼기념일 한 학교의 한 학년 아이들이 바다 밑으로 가라앉은 거짓말 같은 비보를 접하고 한동안 우울증에 시달렸다. 한창 예쁜 짓을 하는 아기를 눈앞에 두고 있으니 더욱 더 그 부모들 마음에 감히 감정이 이입되어 그냥 눈물이 줄줄 흘렀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도 일어나는 게 세상사구나, 싶어 사는 게 더 한층 두렵게 느껴졌다.

 

 

 

 

 

 

 

 

 

 

 

 

 

 

엄마로서 부족한 점이 많다 보니 더 육아서에 집착하게 되었을 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책을 읽는 동안은 좀 더 나은 엄마가 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느낌에 안심이 되고 어떤 방향등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을 밝혀 주는 것 같아 마음이 차분해진다. 많은 육아 관련 책 중 이 책은 나에게 베스트다. 무엇보다 어떤 교조적인 가르침을 남발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실제 아이를 키우는 그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들은 이야기들, 더 나아가 그 인터뷰에 응한 부모들에 대한 강한 공감, 친밀감, 지지가 그들의 내면 깊은 곳의 이야기를 끌어내어 공명하게 한 점이 감동적이었다. 유아기, 어린이, 사춘기를 거쳐 성장해 가는 아이들에 따라 변하는 부모의 역할과 자리에 대한 느낌, 감정 들이 다채롭게 펼쳐지면서 우리가 부모가 되어 부모로 산다는 것이 우리의 긴 생애에 있어 어떤 의미를 가지는 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로까지 나아간 부분은 이 책의 대단원이다. 좋은 부모로 사는 것보다 좋은 인간으로 삶을 잘 사는 것과 그것을 접목시키는 지점에서 읽는 이의 지지를 끌어낼 수 밖에 없는 책.

 

소설은 무거운 것도 가벼운 것도 재미있게 읽은 것이 많았다. 특히 브론테 자매의 <제인에어>와 <폭풍의 언덕>을 읽으며 감탄에 감탄을 거듭했다. 시골의 목사관의 한정된 공간에서 어떻게나 그런 다이나믹한 상상의 세계를 그릴 수 있었는 지, 정식으로 작가가 되는 과정을 밟은 것도 아닌데 문장들은 또 어찌나 아름다운 지, 요절한 자매들은 소설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태어나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표본 같았다.

 

 

 

 

 

 

 

 

 

 

 

 

 

 

 

 

찾아보니 2013년과 2014년에 걸쳐  톨스토이의 <유년 시절 소년 시절 청년 시절>을 읽은 기록이 있다. 지금은 애거서 크리스티의 자서전을 읽고 있다. 유아기부터 소녀 시절을 거쳐 이제 애거서는 결혼을 하고 딸을 낳고 힘든 경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고 아직 유명 작가가 되기 전이다. 그녀는 자신이 사십 년이 훌쩍 지나 영국 여왕과 만찬을 하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하는 상황이다. 심지어 전업 작가가 되리라고도. 나도 지금으로부터 사십 년 뒤 내가 어떤 모습일 지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여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알지만 어떤 할머니가 되어 있을지. 그 때도 건강하게 읽고 쓰고 까페라떼를 마시면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지금 같은 정서를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무리 상식이하의 끔직한 일들이 많이 벌어져도 세계는 진보하고 있다고 믿고 싶으니 그 세상은 더욱 아름답고 지금보다 한층 성숙한 모습이었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나이가 들수록 더 너그러워지고 사랑이 많아지고 편견이 적어졌으면 하는, 그런 소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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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로 2015-01-01 0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블랑카님덕분에 책 읽는 즐거움을 많이 배웠어요~~~. 늘 충실하게 글쓰는 모습을 배우고 싶고요,,,2015년도 블랑카님의 서재를 즐겨 찾으며 공감을 나누게 되길 바랍니다. 가족이 늘 평안하고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blanca 2015-01-01 16:57   좋아요 0 | URL
비비아롬모리님, 서재에 돌아오셔서 생생하고 즐거운 일상 남겨주어 저에게도 행복 전염이 되어 고마워요.
비비아롬모리님 가족도 또 저희 가족도 항상 건강하고 더욱 즐거운 이벤트 많이 만드는 2015년이 되어요.^^

2015-01-01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1 16:59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이 2015-01-02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숙한 모습을 갖는 일은 생각과 달리 꽤 어렵더라구요. 요즘 들어 자주 느끼죠. 블랑카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_ 더 그득한 사랑 누리시기를 바랄게요.

blanca 2015-01-03 15:08   좋아요 0 | URL
야나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더욱 더 즐거운 읽기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랍니다. ^^
저는 아직 멀었어요. 계속 실수하고 반성하고 그러며 나이 먹는 것 같아요.

2015-01-02 21: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1-03 15:09   URL
비밀 댓글입니다.

[그장소] 2015-01-03 03: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직더..배워야 한다니..또 고쳐야 한다니.
한참..멍해서 종일 부지런 떨어 집안일을
했어요....더는 새로울 게 없다고.
저는 어디서 그런 마음이 든걸까요ㅡㅡ
이건 책 속에 있을 답이 아닌 듯 합니다.
하긴..모두 아는 사실이겠지만 책엔 어떤
문제를 해결해 주겠다하는 인생의 정답 따위..없어요.그렇지요?. 또 다른 길이
있을 뿐... 음..은사님..하핫 자주 뵈야지.좀 괴롭혀 드리고..약도 좀 올려 드리고요.부쩍
노염이 많아지시더라고요..흐하하..세월의 힘이지..합니다.더 자주 가까이 뵈야지.
blanca 님..단꿈..꾸시고 또 뵈요..^^

blanca 2015-01-03 15:12   좋아요 1 | URL
그장소님, 집안일 얘기하셔서 돌아보니 제 주위는 --;; 새해 벽두부터 속에 탈이 나
이것저것 다 의욕 상실이네요. 저는 살면 살수록 모르는 것 투성이라는 생각이 들고 그나마 정답이라고
여기던 것들도 또다른 시각에서 다른 답이 보여요. 이게 지각의 한계일까요?
안 그래도 며칠 전 저는 다시 신입사원이 되는 꿈을(미생 부작용일까요 ㅋㅋ) 꿨는데
그 당시는 그렇게 힘들었던 상황을 너무 잘 풀어가고 있어서 일어나고 나니 참 기분이 좋더라고요.

[그장소] 2015-01-03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합니다.저는 불면증이 심해요.잠을자도
보통 악몽이 대부분이고 그래서 누구와 곁을 같이해 잠을 자는 것 ..엄청 신경 쓰이는 일이되곤합니다. 아직 새해..잠든 시간이래야 잠시 앉아 꾸벅 존 정도..그 사이 다녀간 손님도 역시 지독하게 ..이건
좋은지 않좋은지..ㅎㅎㅎ반복해서 상황만 조금 다를 뿐 여러버전으로 제가 한꿈에서 수도 없이 지독하게 죽고 .죽고 또 죽고..뭐,
그럽니다..이젠 아..또 올게 왔구나..할정도..입니다.하도 여러버전으로
다양하게 죽어봐서요.
인생을..신입으로 다시 사는것.과 죽었.다
사는 것..뭐가 더 끔찍할까요?
저는 이쪽도 blanca님 쪽도 그닥 반갑진
않아요.하핫..
그래도 blanca님 꿈끝이 기분 좋으셨다니..
참 다행이고 기쁩니다.^-^

blanca 2015-01-04 10:11   좋아요 0 | URL
그장소님, 아웅 힘드시겠어요. 저도 물론 악몽도 꾸긴 하지만 좋은 꿈 어쩌다가 한번 꾸고 나면 그 여운이 참 달콤하더라고요. 저는 꿈을 많이 꾸는 편이었어요. 내용도 다니나믹하게요. 그나마 나이가 들어가니 점점 꿈없는 밤이 많아지네요.

[그장소] 2015-01-04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뭐 벌써 연장전 돌입해서요..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신경이 예민한 상태..
집중 못하고있죠.^^ 그래도 점점 꿈이 줄어
든다니 희망이 저...멀리 있긴 한거네요.!
비소식있더라고요..오후던가,내일즈음..감기 조심하시고요..기지개 켜고 시작할까요?^^

blanca 2015-01-05 19:28   좋아요 0 | URL
오늘 날씨가 많이 풀렸더라고요. 마무리하는 시점에 댓글을 달게 되네요.
그장소님도 오늘 하루 잘 마무리하셨기를 바라요^^

[그장소] 2015-01-05 1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녁 맛있게 드셨나요? 날씨 풀린 듯..했죠. 그치만 비 올거같아요...잠자리 드시기까지 내내 평안이 함께..
그럼.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