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은 어떻게 내 삶을 구했는가
데이비드 실즈 지음, 김명남 옮김 / 책세상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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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대단히 솔직한 사람을 대면하면 그 미덕의 무게만큼 다소 불편해지는 것이 사실이다. 구태여 의식하고 싶지 않은 사실들이 나열되고 그것에 대한 나의 느낌이나 의견까지 요구한다면 더더욱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한 시간, 장소는 어느새 어떤 공모적 성격을 띠게 된다. 그런 사람을 만나고 나면 나는 도저히 그 사람을 만나기 전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없게 된다. 이미 듣고 느낀 것을 어떻게 부정하겠는가.

 

이 책은 그러한 책이다. 플롯이 있고 창작 의도가 명료한 장대한 이야기들을 써서 삶의 의미와 존재론적 핵심에 가닿으려 하는 그 지난한 노력이 주도하는 문학은 그 앞에서 절멸하고 만다. 데이비드 실즈가 죽음에 대해 이야기했던 책의 주인공이자 매개체였던 구순이 훌쩍 넘었던 노장 아버지도 그 필멸의 과정을 벗어날 수는 없었다. 아버지처럼 될까 봐 두려워하는 이 말더듬이였던 그래서 도리어 더 언어에 천착했던 작가는 그 '죽음'이라는 간명한 화두 밑에 모든 것들을 허무화시키는 기염을 토한다. 어차피 죽는 우리들은 왜 그것을 항상 의식하지 않는가, 그러나 그 대척점에 놓인 삶이 지속되려면 우리는 어쩔 수 없이 그 분명한 명제를 가끔씩 놓쳐야 하고 이따금씩 이러한 글쟁이들 앞에서 또 그 잊어버렸던 슬픈, 어쩌면 다행인 마침표를 환기한다.

 

이 문학적 자서전은 문학에 대해 별 기대가 없는 아니,이제는 그 기대의 몸짓조차 허무로 환원해 버리는 편린들의 무작위적 조합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를 흔들었던 수많은 작가들의 경구들이 편재하고 이제 정말 솔직히 삶과 문학의 기만을 응시하는 명민한 작가들의 조언을 적극 차용한 저작이기도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데이비드 실즈는 독자들 앞에서 자신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고백한다. 그에게 있어 조지 부시는 그의 부정적 기질들이 구현된 존재이고 몰락한 타이거 우즈는 그 모습에서 은근히 대리만족을 느끼게 되는 시기심의 가운데에 있다. 대학 시절 그가 벌인 그 어설픈 연애들은 가장 못난 구석까지 가감없이 머리를 들이밀고 조이스의 단편이 훌륭한 것은 알지만 이제 그 비슷한 것을 쓰는 데에 더이상 흥미가 없음을 고백한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무언가 짜임새 있고 유의미한 척 하는 것에 대놓고 역겨움을 표시하는 오십대 후반의 "우리 자기 자신에게만 쌓이게 되는" 그 어떤 나이를 넘어 버렸다. 그래서 그는 두렵다고 이야기한다.

 

이런 시각이 우리를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고 느끼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 정말이다. 정직이 최선의 방책이다. 빠져나가는 길은 더 깊이 들어가는 것밖에 없다. 존재를 있는 그대로 대면하는 것은 아찔하고도 홀가분한 일이다.

-p.112

 

열네 살 아들에게 <호밀밭의 파수꾼>을 처음으로 읽다니 얼마나 부러운지 모르겠다고 말한 어머니를 둔 그런 사람은 언제나 드잡이해도 백전백패할 것 같던 아버지와의 애증으로 '죽음'을 '존재'를 응시했었다. 이제 그는 삶을 향해, 그 삶의 환각을 향해 그리고 그 삶의 구조화를 꿈꾸는 문학을 향해 냉소적으로 고개를 흔든다. 그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절망과 허무를 마주하게 된다. 그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더욱 의기소침해지게 된다. 거짓말을 과장을 허구를 연기하지 못하는 사람과의 만남은 그래서 건조하지만 무게가 있다. 당자에게는 아찔하고도 홀가분한 일이 때로는 청자에게 부담스럽게 느껴지지만 그래도 우리는, 나는 다음에 또 그와 만날 날을 꿈꾸게 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내'가 있기 때문에.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했던 '존재의 방점'이 있기 때문에. 일말의 진실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외면하고 싶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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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4-12-12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이 궁금했는데 더 궁금해지네요. 다음주에 주문할 때는 반드시 이 책을 넣어야 겠어요.

blanca 2014-12-13 11:49   좋아요 0 | URL
다락방님, 이 책은 뭐랄까, 기존의 책에 관련된 책과는 조금 달랐어요. 어떤 고정된 틀이나 선입견을 해체한다고나 할까요, 그 시선이 좀 불편할 수는 있는데 흥미로웠습니다.

icaru 2014-12-12 1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제게도 주문한 이 책이 도착했는데요~ 화제의 글에 님 글이 떠서 득달같이 달려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혼자만의 책 읽는 시간과 같은 맥락의 책일거라고 짐작했는데,,, 음.. 정면으로 삶을 응시할 거 같은,, 바람부는 적막한 사막에서 존재의 실체와 맞닥뜨리는 느낌 들거 같네요..헛,,, 혼자 멀리갔나요?? ㅎ

blanca 2014-12-13 11:50   좋아요 0 | URL
맞아요. icaru님은 이미 시작하셨겠지요? 저보다 더 저자와 잘 소통하실 것 같아요. 저는 솔직히 제가 기대했거나 예상한 방향과 좀 어긋나서 중간부터는 좀 헤매고 그랬답니다. 저는 아직 어떤 진실이나 실체와 마주할 만큼 성숙하지 않았나 봐요.

Jeanne_Hebuterne 2014-12-15 13: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종 대답하기 난감한 질문이 있는데 그것은 늘 가장 밖으로 오픈된 것이곤 했습니다.

이를테면 `how are you?` 같은 것이오.

그럴 때는 배운 대로 fine, thank you. 가 나와야 하는데 살아있는 게, 꼭 그렇지가 않다고 생각했거든요.

블랑카님의 다가서기 쉬운 길잡이를 접하고 영어를 처음 배울 때 달달 외운 그 공식과도 같은 대화문이 떠올라요. 데이비드 실즈는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에 이어 이번에도 이러한 진리를 다시 끄집어들고 나왔군요. 늘 그랬듯이, 그것이 가장 자명하지만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blanca 2014-12-15 19:48   좋아요 0 | URL
저도 사실 영어권에서 무슨 인사처럼 상대 기분을 알아내려 하는 게 참 허식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기분 안 좋다고 이야기할 것도 아닌데 ^^;; 말이에요. 아, 누구나 죽는다,는 게 너무나 확실한 명제지만 정말 진심으로 받아들이고 살 수 있을까요? 너무 선뜩해요. 나이가 들수록 삶에 생명에 자꾸 연연하게 되네요. 차라리 어렸을 때는 그 명제를 더 겁없이 받아들였던 것 같아요. 이제 이런 함박눈도 영원히 맞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맞으면 더 기쁘기도 하고 더 슬프기도 해요, 쟌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