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책이 한 권이라도 없으면 초조하다. 대체로 사서 읽는 편이니 책은 나날이 늘어간다. 결혼하기 전에는 한 단에 스무 권 남짓 들어가는 오 단 정도짜리 책장이 차는 정도였고 그나마 아버지가 조용히 처분하셨고 신혼집에서 서울로 이사 오기 전 또 그 정도 가량의 책을 기증하고 다시 시작했음에도 그리고 두 번 다시 읽지 않을 것 같은 책은 바로바로 중고로 팔고 있음에도 새로운 책은 들어올 자리가 없다. 애초 아이를 위해 구입한 오 단 책장은 천장 부분만 아이 것으로 채워지고 나머지는 또다시 나의 것으로 그것도 앞 뒤로 빼곡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이 정도 되면 다른 가족 구성원에게 심히 눈치가 보인다. 먼지가 앉고 햇빛에 바래 두 번 다시 들춰지지 않은 책들. 책등을 몇 번이나 확인하고 펼쳐도 보며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기증할 대상을 선별해 보기도 하고 때로 너무 낡은 것은 분리수거날 폐지류로 버려지기도 한다. 그래도 끝이 안 보인다. 이제 나도 마흔이 멀지 않았으니 욕망대로 내달릴 수만은 없다. 그리고 활자욕도 아무리 그럴 듯하게 포장해도 또 하나의 사회적으로 좀 덜 비난받는 개인의 욕망이 아닌가, 하는 생각. 결국은 사실은 나도 욕심쟁이였다.
이 책을 읽으며 줄을 긋지 않았다. '장서의 괴로움'을 읽으며 나는 이 책도 처분의 대상이 될 것을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줄 긋고 싶은 대목이 군데군데 나온다. 결정적으로 괴로운 것은 저자 오카자키 다케시의 의견에 끊임없이 동조하게 된다는 것. 그러니 이 책은 좀 더 가지고 있으려 한다.
2013년 봄 나는 쉰여섯이 되었다. <중략> 지적 욕구로 허세를 부리는 일은 어지간히 쇠했다. 슬슬 장서를 엄선하고 응축하는 데 마음을 써야할 때가 아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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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렇지만 사실 자신이 어떤 책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 지 제대로 파악하는 사람이 별로 없는 것같다. 저자도 예외가 아니다. 있는 책도 또 사고 분명 가지고 있는 책인데 찾을 수 없어 도서관에 그 책을 빌리러 가는 지경이다. 헌책방 업자가 직접 출장을 와서 이천 권 가량을 사갔음에도 꿈쩍도 안 하는 서재. 이 정도면 '장서의 괴로움'을 호소할 만하다. 이 책은 이러한 저자가 책을 처분하는 이야기, 소문난 장서가들의 책의 보관, 이동, 처분에 관련된 흥미로운 에피소드들이 갈피짬마다 어우러져 지금 여기에서의 관심사가 책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사람이라면 어느 누구나 흠뻑 빠져 경청할 만한 것들이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자꾸 나의 책장을 돌아보게 된다. 일본은 지리학적 특성상 지진이 빈번하고 목조 가옥이 많아 책의 무게로 집의 바닥이나 천장이 기울거나 무너지는 경우가 종종 있는 모양이다. 이 지경에 이르러 장서 처분이나 이동을 결심하는 사람들의 사연이 재미있다. 그러나 저자나 저자가 다루는 사람들에게 전자책이나 문서책을 전자화하는 '자취'는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일흔이 훌쩍 넘은 노시인이 자신이 가진 책들을 전자화하여 아이패드로 보관하고 그것으로 장서량을 간소화하는 이야기가 유일하다. 아이튠스에서 <채링크로스 84번지> 영화를 내려받아 본다는 그의 고백이 왠지 뭉클하다. 고서점의 주인과 고객이 주고받는 편지 내용으로 이루어진 영화. 그의 '자취'가 종이책 그 자체에 대한 진한 그리움과 사랑마저 희석시키지는 못했나 보다.
대미를 장식하는 '1인 헌책시장'의 묘사가 너무 아름답고 따사로워 접어두고 싶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실 다소 생소한 분위기의 헌책처분 광경이다. 옛날식 민가 갤러리를 빌려 책을 사랑하는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여 개인의 장서를 처분하는 주인공은 바로 이 책의 저자 자신이다. 사흘 동안 열린 이 축제에 손님이 와 줄까 걱정했던 지은이의 우려는 기우였다. 축제는 성황리에 끝난다. 비록 여기에서 처분한 책은 겨우 자신이 가진 책의 3% 정도라고 이야기했던 주변 사람도 있었지만. 책을 다 팔고 난 수익금으로 뒤풀이 비용을 대는 것을 어떨까, 하는 조언도 따뜻하다. 고등학교 시절 동창과 재회하는 풍경도 정답다. 질투날 정도로 예쁜 날씨들이 소중한 요즘 나도 이런 시장을 열거나 가보고 싶은 꿈을 꾼다.
여하튼 책을 사랑하는, 그래서 책 앞에서 속수무책인 사람의 이야기는 언제나 얼마나 들어도 지겹지 않다. 그리고 그러한 책들이 또 나의 책장 한켠을 위무도 당당하게 차지하고 있는 것또한 사실이다. 책을 처분하라,고 독려하는 이 책이 또 자리를 차지하는 아이러니. 사실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런 모순, 아이러니로 채워지는 것도 무시할 수 없기에 나는 오늘도 책장 앞을 서성인다. 무언가 반드시 처분하거나 기증하거나 해서 제발 책장을 깔끔하게 만들고 앞으로 올 또다른 책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헛된 기대로. 볕이 잘 들고 먼지가 앉지 않도록 관리되는 깔끔하고 널찍한 서재.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책상 같은 허무맹랑한 꿈도 좀 꿔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