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를 낳고 2008년 첫째를 키우면서 작성한 메모를 훑어본다. 낮잠 시간, 이유식량, 육아를 책을 보고 하려 했던 흔적이 역력하다.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는 여덟 살의 자리에 엄마, 아빠가 세상 전부였던 낯가림이 심한 아가가 기어온다. 영원할 것 같았던 모습은 다이어리에 희미한 흔적처럼만 남아있다. 아쉽고도 또 아쉽다. 더 여유를 갖고 융통성 있게 순간을 즐기며 하지 못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온다. 그리고 더 많이 적어두지 못해 기억이 희미한 흔적으로만 남은 것도 아쉽다.
1851년 3주 동안 자신의 다섯 살 난 아들을 돌보며 썼던 이 일기는 자기 충족적인 작품입니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는 작품으로 상당히 매력적이고, 무표정한 듯하지만 아주 재미있어서 호손에 대해 완전히 새로운 인상을 줄 정도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손을 음울하고 괴로움을 많이 겪은 인물로 생각하는데, 사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만이 아닙니다. 그는 사랑이 많은 아버지이자 남편이었으며, 품질 높은 시가와 한두 잔의 위스키를 좋아하고, 장난기 있고 온화하고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 <작가란 무엇인가> 폴 오스터 편 중
너새니얼 호손이 아내가 친정으로 떠난 근 3주 동안 다섯 살짜리 둘째 아들 줄리언을 돌보며 적은 육아 일기는 그를 사랑하고 존경했던 후 세대의 작가 폴 오스터를 통해 세상에 나온다. 폴 오스터의 파리 리뷰 인터뷰 내용 중 언급된 이 일기는 내 바람을 알기라도 한 듯이 뒤이어 번역되어 무척 기뻤다. 폴 오스터의 이야기처럼 무언가 좀 음울하고 기기묘묘한 인상을 풍기는 이 작가가 삼십 대 후반 늦은 결혼으로 얻은 사랑스러운 아들에 대하여 어떤 기록들을 남겼을까 무척 궁금했다. 1851년 마흔 일곱이나 된 아버지가 다섯 살 아들을 삼 주 동안이나 홀로 감당할 수 있었을까, 또 어떻게 놀아주고 먹이고 재웠을까, 하는. 사실 요새 같이 아버지의 역할이 강조되고 각종 정보도 많은 시기에도 아버지가 홀로 사내아이를 돌보기란 쉽지 않다.
아침 일곱 시, 아내가 줄리언과 나를 붉은 농장에 남겨두고 처형 엘리자베스와 첫째 우나, 막내 로즈버드와 함께 집을 떠났다. 이 모습을 보고 우리 애늙은이가 하는 말.
"아빠, 애기가 가니까 좋지 않아?"
자, 이렇게 미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위대한 작품을 남긴 작가는 개구진 다섯 살 사내 아이를 온전히 돌봐야 하는 과업을 수여받았다. 다행히 줄리언은 아홉 시가 되기 전에 잠들고 일곱 시 즈음에 일어나는 규칙적인 수면습관과 혼자서도 잘 놀고 가끔 함께 놀아주면 더없이 신나하는 아주 사랑스럽고 애교많은 아이다. 아이는 풀 위의 이슬을 '요정들이 작은 주전자를 기울여 풀과 꽃에 물을 부었다'고 묘사한다. 아이는 아버지를 존경하고 따르는 <백경>의 허먼 멜빌 아저씨를 길에서 우연히 만나 함께 말을 타고 돌아온다. 아버지는 아이가 잠든 틈에 멜빌과 시간, 영원함, 이 세상과 그 다음 세상, 책, 출판업자, 가능한 문제, 불가능한 문제를 두고 밤이 깊도록 이야기하는 여유도 누린다.
아버지는 여름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아이의 재잘거림을 때로는 거추장스러워하기도 하지만 이러한 아이를 있게 한 아내와 아이를 더없는 축복으로 여기며 함께 한 시간들을 하나 하나 눌러쓴다. 매일 아침 아이의 머리를 말고 우유를 가지러 가고 산책을 하고 방문객을 맞는 단조로운 생활들은 갈급하게 하루씩 줄어들고 아내를 오망불망 기다리며 아이를 온전히 맡기고 자유로운 시간을 기대하는 평범한 아버지의 모습은 할 수 만 있다면 아이가 말한 모든 것을 기록해 두고 싶어했던 바람과 맞물려 눈물겹게 아름답고 정겹다.
나의 육아일기. 아직은 내 손 안의 여덟 살 아이와 7개월의 아기. 결국 모든 것은 사라지고 비처럼 쏟아지던 그 수많은 자질구레함들과 아이의 은성한 언어들은 가뭇없어질 것이다. 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고 시간이 빨리 갔으면도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