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만구천 원짜리 티는 어이없게도 목 둘레에 오십 원짜리 동전만한 크기의 구멍을 달고 있었다. 입어보기도 전에 소스라치게 놀라 종이봉투에 다시 넣어 두었다.
스페인의 중저가 브랜드인 그 옷의 환불 기한은 무려 한 달. 일이 주 내외인 여타 국내 브랜드에 비해 엄청 길다고 인상적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써먹을 데가 금방 생겨 버렸다. 똑같은 옷은 없고 마음에 드는 다른 옷들은 애초에 샀던 이 티의 가격의 두 배 정도였다. 삼 주 정도 지나 환불을 받아 버렸다.
그리고 멕시코시티로 떠나 보낸 친구와 마지막으로 만나던 날 무심코 사탕 색깔 같은 나풀나풀한 옷들이 디피된 가게로 들어가 그 아이가 사무실용의 하얀 블라우스를 충동적으로 구입하는 것을 봤던 그 가게를 또 충동적으로 들어갔다.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워지는 적당히 유치하고 적당히 인상적인 색감들의 착한 가격의 옷들 속에서 민트색 원피스를 집어 들었다. 이만구천 원을 환불 받았으니 만이천 원을 더 쓰고 그 원피스를 산들 크게 죄책감을 느끼지 않아도 될 터였다,고 스스로 자위하며 그 원피스를 샀다. 그 가게는 아주 묘하다. 곳곳에 막 흥분하며 이 신발을 신어보고 저 옷을 입어 보던 친구의 흔적들이 떠돌아 다녔다. 마치 꽃을 포장하듯 곱게 접은 옷을 미농지에 싸서 커다란 비닐백에 넣어 주는 점원은 내 친구를 기억할까?
중년의 미국 여인이 이탈리아의 토스카나에서 자신의 공간을 만들어 나가는 이야기를 읽고 있다. 시인답게 묘사 하나 하나가 정말 만져질 듯한 질감이다. 로르카의 <인상과 풍경>에 비길 만하다.
그런데 위화감을 느낀다. 외국에 육백 평이 넘는 부지의 집을 사서 그것을 또 자신의 구미에 맞게 수리하고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은 아무나 가질 수 없기 때문에 그녀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느끼는 것들은 자꾸 내 눈앞에 비늘을 만든다. 그러니까 나는 질투하며 책을 읽고 있다. 나의 인식의 한계는 사실 경험의 한계 안에 갇힐 테고 그것은 단연 나를 둘러싼 시공간의 제약을 받는다. 내가 보지 못한 것들, 모르는 것들이 내가 누릴 수 없는 것들과 겹칠 때 밀려오는 감정은 사실 유치하고 적나라한 것이다.
동생에게 꼭 창덕궁에 같이 가자고 했다. 창덕궁에 가고 싶었던 것을 너무 늦게 기억해 냈다. 예전에 애 업고 버스 타고 갔는데 마침 휴관이었던 그 창덕궁에 장마가 오기 전에 가기로 다짐을 받아 두었다. 먼저 볼 수 있는 것들부터 차근차근 볼 참이다. 그 다음에는 꿈을 꾸어야지. 민트색 원피스를 입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