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7년 소련 우랄의 한 지방이 이 세상에서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핵무기 개발 과정에서 나온 폐기물에 들어 있던 플루토늄의 폭발 때문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병원에서 유폐당한 채 죽어간 이 참극은 망명한 소련 과학자의 증언으로 비로소 세상에 드러났다.
1986년 4월 26일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고 우수하다고 정평이 난 체르노빌 원자로의 대폭발은 죽음의 재를 지구 전체에 전파시켰다. 우크라이나는 물론, 스웨덴, 벨기에, 심지어 8천 킬로미터나 떨어진 일본에게까지 죽음의 재는 당도했다.
2011년 3월 우리는 악몽이 현실화되는 것을 지척에서 목도하게 되었다. 일본 열대를 덮친 거대한 쓰나미는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할 수 있다는 그 오만하고 얄팍한 믿음을 일거에 말소시켰다. 체르노빌에 육박하는 원전 사고가 터졌다. 일본은 방사능 오염수 1만톤을 인접국가인 우리나라에 그 어떤 상의나 통보도 없이 방류하는 기염을 토했다. 아직 진정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방사능은 지금 이 순간도 계속 새어 나오고 있다. 생태계 전체를 교란시킬 방사능으로 오염된 해류는 유유히 태평양을 흘러 이동하고 있다. 그리고 말한다. 저농도라 괜찮단다. 우리나라에 들어올 즈음이면 많이 희석될 거란다. 내일은 비가 온다. 촉촉하고 마음을 이상스레이 달뜨게 하던 봄비가 이렇게 꺼림칙하기는 또 처음이다.
일본의 반핵반전운동가인 히로세 다카시가 체르노빌의 참사를 제대로 증언하고 원전의 위험성을 경고한 이 책은 거의 노스트라다무스의 지구종말 대예언과 맞먹는 울림을 준다. 그리고 섬뜩할 정도로 적중했다. 1989년에 간행되어 1990년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던 내용들은 21년이 지나 예리한 칼날이 되어 되돌아 왔다. 진실은 시공간을 초월한다,는 깨달음을 이런 식으로 얻고 싶지는 않았다. 일상이, 순간 순간의 삶 그 자체가 기적이라는 표현은 미사여구가 아니라 참혹한 진실이었다. 우리는 시한폭탄을 안고 살고 있다. 원전은 첨단의 기술이자 공기를 오염시키지 않는 그린에너지원이 아니라 아직 실체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제대로 통제할 여력도 없는(앞으로도 가능해질지도 확신할 수 없는) 비과학적이고 허술한 허상이며 그 허상에 기대어 미래를 설계하려는 시도가 얼마나 무력하고 악질적인 것인지를 이 책은 제대로 폭로하고 있다.
히로세 다카시는 이미 원전의 긴급 노심 냉각 장치와 격납용기, 콘크리트 구조물 모두가 제대로 위험 상황을 제어할 수 없음을 간파했다. 실제 이번 후쿠시마 원전 사고에서 이 세 가지 위험 완충 장치는 모두 제 구실을 못했다. 또한 원전 기술 자체가 전체를 제대로 파악할 수 할 수 없는 구조로 수입되고 있음을 지적했다. 얼마전 일본의 원전 기술자가 폭로한 원전의 허술함과도 일맥 상통하는 얘기다. 현장 기술자들은 피폭량 허용치를 준수하면서 눈앞의 일을 단시간안에 해치워야 하는 강박에 시달리고 있다고 한다. 전체를 파악할 수 없는 구조, 제한된 시간, 심리적 불안감 등이 겹쳐 제대로 된 보수나 조치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통제할 수 없는 위험요소들을 간과하고서라도 원전을 유지하고 증설해야 하는 논거들로 흔히 에너지 부족과 석유, 석탄 자원의 고갈을 얘기하고 있다. 이것은 진실일까? 실제 원전논란에서 첨예하게 대립되는 지점에서 흔히 나오는 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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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은 석유 절약이 안 됩니다. 원자력 그 자체가 석유 제품이고 원자로 1기는 화력 발전소 3배의 건설 생산원가가 필요하며 <중략> 우라늄의 채광에서 정제, 운전에 이르기까지 대량의 석유를 소비해야 됩니다. 또 최대의 문제점인 영원히 관리해야 하는 폐기물 관리 비용이 전기값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아직도 방사능 처리 기술이 개발되지 않았기 때문에 관리비용조차 계산할 수 없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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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후쿠시마 원전들을 폐쇄하는 데 드는 비용은 8조 정도로 수십 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정확한 피해집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사회적 비용들을 감안한다면 원전은 사고가 터질 경우 어마어마한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 결코 꿈의 대안 에너지원이 아닌 것이다. 차라리 이 노력과 비용을 신재생 에너지나 대안 에너지로 돌리면 어떨까.
덴마크의 예가 있다. 1976년 원자력 착공 계획을 발표한 정부를 대체 에너지 정책안으로 설득해 내고 실제 그것을 현실화한 시민 단체의 개가는 덴마크라는 나라 자체의 유리한 조건들을 차치하고서라도 배울 점이 있다. 히로세 다카시는 에너지 문제라는 것은 애초부터 없다고 얘기한다. 그리고 사회 문제는 없다고 얘기한다. 모두 자기 문제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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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자기를 죽이려고 덤벼드는데 "어떻게 하면 좋아요"하고 남에게 묻는 사람이 어디있습니까.
<중략>
나는 이론적으로 절망 상태에 있습니다. 내 딸이 죽임을 당하는데 방관할 수 있습니까. 이런 터무니없는 원자력산업 때문에 죽어야 하다니 말도 안 됩니다. 이러한 인간들이 손가락 하나 대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내 생명, 내 삶에 대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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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르노빌 원전 대폭발후 체르노빌에서 남서쪽으로 450킬로미터나 떨어진 체르노프치에서는 15세까지 아이들이 모두 머리카락이 빠진 일이 있었다고 한다. 피해자의 70%는 20세이하의 젊은 층이라고 한다. 체르노빌로부터 30킬로미터까지의 위험지대의 감시는 2060년까지 계속되어야 한다고 한다. 아직도 치우지 못한 사체들과 각종 폐기물 들에서는 방사능이 나오고 있다. 체르노빌의 재해는 끝난 것이 아니라 망각되고 있을 따름이다.
나는 지금 컴퓨터 자판으로 하기 좋은 소리들을 하고 있다. 이 전기는 가난하고 나이 든 이들이 생업으로 미역을 말리며 수명이 다해 가동중지하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무리하게 수명연장을 한 원전을 이따금 보면서 "그래도 어떡해. 나라가 한 일인데..."하며 슬픈 체념을 한 그곳에서 온 것일지도 모른다. 나의 아이가 또 그 아이의 아이가 속절없이 무방비로 떠안은 그 고준위위험성 폐기물들로 그득찬 땅과 공기, 물을 마시며 살아갈 미래를 무책임하게 예비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나는 그냥 입을 닫고 컴퓨터를 꺼야 하는 것일까.
그럼에도 말하련다. 더이상은 안된다. 그 모든 것보다 생명이 우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