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소아 모리악의 <떼레즈 데께루>를 정말 힘겹게 읽으며 2011년을 맞았다. 걱정거리를 달고 사는 편인데다 하필이면 어둑신한 이런 책으로 새해를 열고 말았다. 전혜린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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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죽음을 당시는 자살이라 단정짓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천재 소리를 들으며 경기여중고, 서울대 법대, 뮌헨대, 그리고 귀국하여 대학에 출강하고 어린 딸까지 두었던 그녀가 서른한 살에 죽음으로 걸어들어간 이유에 대하여 분분하던 의견들과 그녀의 미처 개화하지 못했던 문학적 열망이 맞물려 그녀의 유고 에세이들은 커다란 주목을 받았다. 1965년에 죽은 그녀의 글들은 당시 시대상을 감안할 때 상당히 파격적이고 도발적인 면면들이 있다. 삶 그 자체가 딛고 서 있는 일상성에 매몰되는 것을 그녀는 꽤나 두려워했던 듯싶다. 끊임없이 권태와 순응에 대한 두려움을 얘기하고 있다. 기억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장 아제베도'로 가면을 쓴 누군가에게 거의 절규하듯 보낸 편지 내용은 그가 등장하는 <떼레즈 데께루>를 언젠가 읽어보겠다는 막연한 다짐과 함께 잊혀졌다. 소설 등장인물의 이름을 준 그에게 "내가 원소로 환원되지 않도록 도와줘!" 라고 외치고 사흘 뒤 그녀는 원소로 산화되어버리고 만다.
장 아제베도. 많은 것들을 쉽게 잊어버리지만 이상스레이 뇌리에 박혀 빠져 나오지 않는 이름이었다. 죽을 때 유언에 따라 작가와 함께 관에 들어갔다는 <깊은 강>은 결국 나를 <떼레즈 데께루>로 끌고 갔다.
아내의 죽음을 맞아 고뇌하는 남편의 모습으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인도 단체 여행으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네 사람의 지나간 삶의 궤적과 인생의 의미, 죽음에 대한 성찰로 집대성된다. 죽음을 흘려보내는 물에 함께 산 사람이 들어가 자신의 삶을 위해 기도하는 갠지스 강의 풍광은 삶과 죽음이 대척점에 놓여 서로를 집어삼키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섞여 하나의 의미로 나아갈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살기 위해 전장에서 동료의 인육을 먹어야 했던 처절한 상황, 죽음을 환생으로 환원하여 이해하려는 죽은 자와 남은 자의 상실을 채우는 모습, 타락으로 보란듯이 삶과 고귀한 가치들을 조롱하려 드는 여인의 오기 들은 갠지스 강을 흘러가는 시체를 태우고 남은 재가 섞인 물로 목욕하며 기도하는 이들의 그것들에 그대로 녹아 떠내려 간다. 그리고 짐짓 뜬금없이 군데군데 또 <떼레즈 데께루>가 나온다. 결혼이라는 사회적 제도 안에 의식적으로 '자기'를 안착시키며 끊임없이 파편화된 나머지 자신의 모습을 직시하며 괴로워하는 미쓰코는 떼레즈를 끌고 들어온다. 떼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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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누구의 역할을 하는 게 싫었고, 강요된 행동을 하는 게 싫었고, 판에 박힌 얘기를 하는 게 싫었고, 순간순간 진정한 나 떼레즈를 배반하는 게 싫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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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혜린은 다시 돌아왔다. 이건 흡사 그녀의 육성 고백 같다. 가족이 없는 여자가 되는 것, 자기 마음대로 자기 가족을 결정하는 것에 대한 소망을 얘기하는 떼레즈는 비소 몇 방울로 천천히 남편을 독살했다는 혐의를 받게 된다. 이것의 진실 여부와 관계 없이 그녀가 가족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 정상적인 생활을 하는 것과 그녀의 심연에 도사리고 있는 욕망이 부딪는 지점에서 피어나는 비극은 인간이 사회적으로 기대되는 '정상의 테두리'안에 스스로를 가두기 위하여 얼마나 처절하고 소모적인 분투를 해야 하는 지에 대한 하나의 은유다. '인형의 집'을 나가는 노라와는 비껴가는 지점이다. 장 아제베도는 하나의 상징에 지나지 않았다. 그녀의 맹렬한 욕망과 악의를 슬슬 건드려 깨우는.
내면의 파충류를 재우는 것. '교과서적으로 살지 않는 사람이 결국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이라고 강변했던 교수님의 얘기와 만났다 헤어진다. 모순과 불완전함과 때로는 악덕으로 일그러진 인간의 삶을 직시할 때는 언제나 아프고 불편하다. '척'의 비늘들을 다 벗기고 나면 나에게는 무엇이 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