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파 한심도 못 잤는데 목욕하고 나니까 또 안 아퍼. 이상해. 정말 아파야 된다는데.
재수할 때 나의 생일날 선물로 빨간 장우산을 들고
맞은 편에서 환하게 웃으며 걸어 왔던 친구는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긴가민가했다.
나는 은근 경험자로서 되도 않는 잘난 척을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아프냐? 파도처럼 밀려오냐?
친구는 이것저것 대답하다 갑자기
무서워.... 그런다.
괜찮다. 너는 내가 볼 때 별로 안 아플 것이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이런 궤변도 없다.
기준도 없이 그저 너는 순산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준다.
그리고 연락이 끊기고 전화를 안 받더니
온 세상이 은세계가 된 오늘
친구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정말 아프더라. 둘째는 생각해봐야겠어.
사락사락 눈 내리는 날 미술 문화센터를 가며
눈덩이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즐거워하다
아예 자리잡고 눈덩이를 굴리던 나의 아이는
정작 너무 늑장을 부려 목적지는 가지도 못하고
슈퍼에서 사탕 하나를 빨며 다시 귀가했던 분홍공주는
오늘 잠을 재우는데 "엄마 이거 모가 나와. "
해서 뒤돌아보니 좁쌀 베개를 다 뜯어 좁쌀을 사방에 흩어 놓았다.
인내를 시험하는 순간. "엄마,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해 놓고는 다시 "엄마, 이거 봐봐. 어떡하지?"해서 돌아보니
화장실 문짝 경첩의 나사를 풀어 놓으셨다.
온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고 정이는 아이를 낳고
공주님은 좁쌀을 사방에 뿌리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