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 아파 한심도 못 잤는데 목욕하고 나니까 또 안 아퍼. 이상해. 정말 아파야 된다는데. 

재수할 때 나의 생일날 선물로 빨간 장우산을 들고
맞은 편에서 환하게 웃으며 걸어 왔던 친구는
출산 예정일을 앞두고 긴가민가했다.  

나는 은근 경험자로서 되도 않는 잘난 척을 시작한다.
규칙적으로 아프냐? 파도처럼 밀려오냐? 

친구는 이것저것 대답하다 갑자기
무서워.... 그런다. 

괜찮다. 너는 내가 볼 때 별로 안 아플 것이다. 

돌아서서 생각하니 이런 궤변도 없다.
기준도 없이 그저 너는 순산할 것이다,라고
결론을 내려 준다. 

그리고 연락이 끊기고 전화를 안 받더니
온 세상이 은세계가 된 오늘
친구는 사내아이를 낳았다. 

정말 아프더라. 둘째는 생각해봐야겠어. 

사락사락 눈 내리는 날 미술 문화센터를 가며
눈덩이 속에서 이리저리 구르며 즐거워하다
아예 자리잡고 눈덩이를 굴리던 나의 아이는
정작 너무 늑장을 부려 목적지는 가지도 못하고
슈퍼에서 사탕 하나를 빨며 다시 귀가했던 분홍공주는 

오늘 잠을 재우는데 "엄마 이거 모가 나와. "
해서 뒤돌아보니 좁쌀 베개를 다 뜯어 좁쌀을 사방에 흩어 놓았다. 

인내를 시험하는 순간. "엄마, 미안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해 놓고는 다시 "엄마, 이거 봐봐. 어떡하지?"해서 돌아보니
화장실 문짝 경첩의 나사를 풀어 놓으셨다. 

온 세상이 하얗게 지워지고 정이는 아이를 낳고
공주님은 좁쌀을 사방에 뿌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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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0-12-28 2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친구분 순산 축하드리고요, 오늘과 같은 눈이 많이 내린 날에서 태어나서
그 분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출산이 될거 같네요^^;;
마지막에는 웃었습니다.ㅎㅎ 잘못을 저질러놓고 벌을 면하기위해서
블랑카님에게 온정의(?) 눈빛을 보내는 분홍공주님의 모습을 생각하니 귀여울거 같습니다.^^

blanca 2010-12-29 21:42   좋아요 0 | URL
cyrus님, 감사합니다. 그냥 눈이 펑펑 내리는데 친한 친구가 아이를 낳으니 괜히 기분이 더 좋더라구요. 바로 사과하며 치고 들어오니 야단도 못치고 요새는 그냥 웃고 맙니다.

비로그인 2010-12-29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여자에게 출산은, 비가 오는 날이든, 눈이 내리는 날이든, 아무렇지도 않은 날이든 잊기 힘든 기억일 것입니다. 저는 다 기억해요. 잊는 방법을 잊어버렸습니다. 그 날 걸렸던 붉은색 신호등, 한밤중, 텅 빈 병원 로비, 뒷수습을 하며 간호사들이 하던 이야기까지요.

그렇게 아픈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을 도중에 했어요. 아프지 않으면, 도저히 창피해서, 알량한 사회적 체면과 위신 때문에 아이를 나는 낳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픈 것이 전부라면 나는 한 다스의 아이를 낳아, 첫째부터 막내까지 줄지어 놓고 도레미 송을 부르게 한 다음 남는 네 명은 방의 사각 네 귀퉁이에 앉히겠습니다. 나는 이제서야 아이를 낳았던 것이, 낳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말을 조금씩 알아가려고 해요. 나의 일상의 틀이 너무나도 단단하고 견고해서, 나는 이것을 애당초에 부술 마음조차 없었다는 것을 다시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이 모든 것과는 별개로, 블랑카 님의 아이의 이야기는 참 좋습니다.

blanca 2010-12-29 21:44   좋아요 0 | URL
잊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쥬드님은 밤에 낳으셨군요. 그죠. 솔직히 저는 정말 이렇게 아줌마가 되는 거구나, 싶을 정도로 최소한의 매무새도 챙기도 못하겠더라구요. 너무 아파서 그냥 말도 못하고 벽만 긁었어요. 그럼요. 저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어요. 낳는 건 껌이었구나. 시작도 아니구나. 쥬드님의 댓글을 읽으며 저의 출산 기억과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하여 다시 진지하게 돌아보게 됩니다. 고마워요.

깐따삐야 2010-12-29 14: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한 생명이 태어났군요. 날이 추운데 엄마도 아가도 모두 건강히 겨울을 나길 바랍니다.

아이는 온종일 엄마의 일거리를 만들면서 배우는 것 같아요. 귀여워라.^^

blanca 2010-12-29 21:46   좋아요 0 | URL
깐따삐야님, 아기가 정말 한창 귀여울 때였던 것 같은데 저는 그 때도 힘들어서 이쁜지를 모르고 흘려보낸 것들이 많아 참 아쉬워요. 일거리는 정말 탑을 쌓을 만큼 엽기적인 것들이 많답니다. 깐따삐야님 아기보다 조금 더 커서 제 액상 아이라이너로 온 몸과 제 화장대에 그로테스크한 문양을 칠갑해 저를 경악시켰던 기억이 납니다. 본건 있어가지고--;; 눈두덩이가 시커멓게. 갑자기 생각나네요. ㅋㅋ

마녀고양이 2010-12-29 17: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분홍공주 이쁘다, 말썽쟁이 이쁜둥이네요.
그리고 친구의 순산 축하드려요.

벌써 10년 전 기억이지만, 다시 아이 낳기 무서워요. 으으... 하두 고생하고 낳아서.

blanca 2010-12-29 21:47   좋아요 0 | URL
마고님 고생 많이 하셨군요. 무섭죠. 정말. 으스스한 그 고통을 어떻게 잊겠어요. 둘째 낳기 전에는 한 달 전부터 잠이 안 왔다던 조리원 엄마 생각이 나네요. 모르고 무서워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고.감사해요. 자꾸 유치워 가면 혼난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그럼 안된다고 원장샘이 미리 경고하시더라구요 ㅋㅋㅋ 엄마들이 다들 그 수법을 쓰는지.

L.SHIN 2010-12-29 21: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귀여워요. 좁쌀을 사방에 뿌리고,라니.^^
친구분의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blanca 2010-12-29 21:48   좋아요 0 | URL
우아, L.SHIN님이다. 고마워요. 좁쌀을 치울 때는 가슴에서 치미는 게 많답니다.--;;

비로그인 2010-12-31 14:55   좋아요 0 | URL
블랑카님, 좁쌀을 치울 때는 가슴에서 치미는 게 많다는 이 댓글이 난 왜 이렇게 좋은 걸까요? 이상스럽게 운이 맞고, 하필이면 그 대상이 콩도, 쌀도 아닌 좁쌀이라는 게 의미심장하고. 내가 우디 알렌이었으면 이 댓글 하나로도 영화를 찍었을 것을, 너무 평범한 사람이어서 죄송스러울 지경이어요!

순오기 2010-12-30 1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출산의 고통과 희열.... 하지만 둘쩨 셋째 낳다보니 것도 이력이 붙어요.
셋째는 정말 두 시간만에 퐁~~~~하고 나왔어요.^^
분홍공주가 엄마를 성인의 반열에 들게 하는군요.ㅋㅋ

blanca 2011-01-02 16:30   좋아요 0 | URL
두 시간이라구요? ^^ 이제 정말 힘든 (육체적으로) 시기들은 다 간 것 같아요. 그 만큼 아기였을 때의 모습이 그립기도 하니 참 모순이지요. 순오기님처럼 어엿하게 다 키우려면 한 참 멀었지만요. 순오기님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후애(厚愛) 2010-12-31 09: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친구분의 출산을 축하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항상 행복하세요.^^
해피 뉴 이어~~~

blanca 2011-01-02 16:31   좋아요 0 | URL
후애님 안그래도 페이퍼 글을 시간이 없어 읽고 댓글을 못 달았는데 몸이 아프셔서 어떡하지요? 새해에는 후애님이 몸과 마음이 다 편안하기를 기원합니다. 멀리서나마 항상 응원할게요.

노이에자이트 2010-12-3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너무 아쉬워말고 보내줍시다.

blanca 2011-01-02 16:31   좋아요 0 | URL
노자님은 저보다 열 살은 더 먹은 것 같아요 ㅋㅋㅋ 알겠습니다. 명심할게요. 그래도 아쉬운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올해부터가 유독 그래요. 노자님 새해에는 건승하세요!

비로그인 2011-01-01 22: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난해 제 서재를 자주 찾아주시고 댓글도 남겨주셔서
최소한 혼자 중얼거리는 신세는 면할 수 있었습니다ㅋㅋ
고맙습니다.
새해에도 늘 건강하고 평안한 하루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더불어 블랑카님의 아름다운 문체도 계속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blanca 2011-01-02 16:33   좋아요 0 | URL
후와님, 에이, 겸손의 말씀을요. 많은 분들이 추천도 하시고 읽기도 하시고 댓글도 다는 후와님의 서재인걸요. 새해의 덕담 정말 감사합니다. 좋은 기운을 받아 행복하도록 할게요. 후와님도 모든 면에서 다 원하는 성취와 건강, 행복을 맛보시기를 기원합니다.

2011-01-04 07:5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1-01-04 16:0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