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치폰의 최대 단점은 한 방에 훅간다는 것이다,라고 쓰고 싶었다. '한 방에 훅간다'는 표현을 정말이지 써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예기치 않게 전화를 걸면 안되는 사람(오 년동안 연락 한 번 없었던 사람, 전직장의 상사 같은)의 전화번호에 살짝 집게 손가락이 닿아 그 사람과 수인사를 나누고 되게 말아버리는 상황 같은 것이 생긴다. 통화음이 가기 시작하면 더욱더 정신이 없어져 종료 버튼을 어떻게 활성화시켜야하는 지 같은단순한 매뉴얼도 머얼리 떠나 버린다. 다른 사람이 구경좀 하자고 가져갔다 벌어지는 사단도 꼭 이런 것들이다. 왜 나쁜 예감은 틀리지를 않나. 그 사람은 이리저리 구경하다 또 통화 버튼을 스치고 만다. 이 정도면 가히 미칠 지경이다. 화도 못 내고. 발신음이 두 번 가는 동안 상대의 기지국을 찾아 헤매는 시간이 될 수도 있다는 기사를 읽고 마음대로 종료시켜 버린다. 설마 부재중 통화가 뜨지는 않았을 거야,라고 가슴을 쓸어내리지만 알 도리는 없다.
이래저래 화가 나서 끓여 먹은 라면 세 젓가락에 가열차에 깨서 울어대는 아이 소리. 가까스로 다독여 놓고 나오니 밤 열 시 반에 갑자기 벨 눌러 주시는 택배 기사님. 이 책을 가지고. 괜시리 겁나 양 다리를 쫘악 늘여 여차하면 튈 기세로(아이를 나두고?) 받아들고 제목을 읽으니 더욱더 우울해진다.

김훈도 공지영도 신간을 내고 께작께작 읽는 하루키의 <먼 북소리>도 나쁘지 않은데 갑자기 책이 너무 많고 건성으로 너무 많이 읽었다,는 우울한 자각이 엄습한다. 11월인 게다. 올해도 나는 누구 엄마로 그것도 그다지 최선을 다하지 못한 엄마로 한 해를 보내고 만다. 잘 살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오리무중이다. 열심히 정성스럽게 하루하루를 채워 나가고 싶은데 방법도 방향도 모르겠다. 되지 않을 꿈을 꾸는 일도 피곤하고 그렇다고 다 포기하고 손 놓자니 사는 것 같잖고 정작 가장 원하는 게 뭔지도 모르겠고 소소한 재미들도 다 값없게 느껴지고 다만 카푸치노에 계피가루 뿌려 먹는 게 맛있다는 것만 알았고. 포도농사와 사과농사가 풍작이라 맛있다는 것밖에 모르겠고.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