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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귀 가죽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3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이철의 옮김 / 문학동네 / 2009년 12월
평점 :
세상을 향해 내뻗었던 촉수들을 하나씩 거두어 나의 내면으로 던져 놓는 그 시간, 잠들기 직전 나의 소원들을 정렬해 보곤 한다. 아주 어릴 적부터 하루가 그럭저럭 괜찮으면 괜찮은 대로 더 욕심이 나서, 하루를 망쳐 버린 날이면 그 상처를 다독거리기 위해서 그 소원들이 다 실현된 내일의 공상 속에 잠들곤 했다.
이제 삶이 더 이상 내일의 가능성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게 되면서 나의 소원은 줄고 작아지고 스러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삶을 살아내기 위해서 견디기 위해서라도 나는 또 무언가를 욕망하고 그 실현을 꿈꾸는 그 허망한 과정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다. 산다는 것은 결국 죽어간다는 것이고 무언가를 원한다는 것은 결국 그것에 대한 무기력하고 허약한 반역을 꾀하는 것임을 때로 머리로 자각하면서도 나의 호흡은 그런 명징한 가끔의 깨달음을 지워 버린다.
프로이트가 죽기 전 '나는 그리움을 품은 채로 무로 가는 길을 준비한다',며 마지막으로 읽은 책이 바로 이 <나귀 가죽>이었다. 죽음을 의미의 부재를 받아들이는 일로 해석했던 그가 욕망과 생을 맞바꾸며 마침내 파멸하고 마는 청년의 얘기로 삶의 문을 닫고 걸어 나간 것은 의미심장하다. 마치 프로이트 자신의 삶에 대한 해석과 해명을 이 소설을 읽는 것으로 대신한 것만 같다. 삶은 욕망과 등가물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우리는 무언가를 원하고 추구하다 때로는 좌절하고 가끔은 이루어졌다고 착각하며 생을 소모한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을 추구하는 생의 본질적 경향성도 결국 욕망과 다름아니다.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주체를 갉아 먹는다. 발자크가 바람과 행함이 존재의 원천을 고갈시킨다고 얘기한 것은 인간 존재의 근원적 모순성에 대한 슬픈 지적이다.
프랑스의 19세기의 시대상을 방대한 소설 모음으로 재현하려 했던 그의 원대한 구상 안 철학의 범주 안에 들어가는 이 작품은 현실과 그 현실의 원리, 법칙에 대한 철학적 해석의 중간 지점에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 파리의 몰락한 귀족의 자제인 라파엘은 죽음을 결심하고 있던 와중에 우연히 들어가게 된 골동품점에서 만나게 된 골동품상 주인에게서 소원을 이루어 주는 나귀가죽을 얻게 된다. 이 가죽은 소망의 강도와 횟수에 비례하여 그 둘레가 줄어들게 되어 있는데 남은 가죽의 크기는 바로 남은 목숨을 표상한다. 소망이 이루어지면 질수록 삶은 점점 종말을 향해 치닫게 되는 것이다. 라파엘은 그토록 바라던 엄청난 재력과 권력을 지니게 되었을 때 정작 아무것도 원하지 않게 되게 된다. 무언가를 욕망하고 이루게 되는 것이 가져오는 상실이 그 욕망을 가능케 하는 주체와 원인 자체를 말살하는 것이라는 잔인한 깨달음은 나귀가죽으로 상징화되어 단순하고 거칠게 우리를 위협한다. 욕망 그 자체가 악과 연결되는 지점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것이 삶임을 우리는 어쩌면 선험적으로 알고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무언가를 강하게 욕망하고 그것을 이루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그 설명할 수 없는 꺼림칙함과 두려움이 그 방증이다. 그리고 거기에 인간 존재의 비극이 있다. 어느 지점이든 우리가 소원해서 간 그곳은 목적지로 두고 바라봤을 때의 그곳이 이미 아닌 것이다. 우리는 또다시 초조해지고 그 목적지가 단지 지루한 길의 하나의 경유지에 불과했음을 스스로에게 가르쳐 주고 만다. 다음에는 또 눈을 돌리게 된다. 새로운 욕망은 도처에 널려 있다. 그 욕망을 거치지 않고 길을 걸어가는 것은 흡사 하나의 묘기가 되어 버리고 만다. 이백 년이 지난 오늘, 라파엘과 나는 다른 점보다 닮아 있는 대목이 더 많다.
라파엘이 쇠잔해진 몸을 이끌고 간 요양지에서 뭇사람들이 그를 벌레 피하듯 피하고 따돌리는 장면은 현재진행형이다. 사회는 황금과 멸시를 먹고 산다는 발자크의 말은 소름끼치도록 잘 구현되어 있다. 이 세상에 불행 말고 완전한 것은 없다,는 그의 문장은 이 소설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사랑하는 여인의 품에서 고통스럽게 죽게 되는 라파엘의 최후는 마지막 구원의 가능성마저 무자비하게 차단하고 대단원의 막을 내려 버린다. 그의 냉소, 그의 잔인할만치 예리한 삶에 대한 통찰, 마치 독자와 일대일로 대면이라도 하고 있는 듯이 사람의 보편적 갈등, 고뇌의 근저를 저며내는 그의 언사들은 때로 섬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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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너, 제복만 입지 않았을 뿐 시종들 중 상 시종인 너, 뻔뻔한 식객이여, 네 성질은 집에다 두고 다녀라. 너를 맞아준 주인이 음식을 소화시키는 속도에 맞추어 너도 소화시켜라. 그의 눈물에 눈물을 흘려라. 그의 웃음에 웃음을 터뜨려라. 그의 빈정거림도 듣기 좋은 것처럼 받아들여라. 그를 헐뜯고 싶으면 그의 실각을 기다려라. 세상은 이런 식으로 불행한 자에게 은전을 베푼다. 그를 죽이거나 내쫓는 식으로, 아니면 그를 타락시키거나 거세시키는 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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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사회, 소원을 말해보라고, 나는 너의 소원을 이루어 주는 여신이 되겠다고 꼬드기는 곳, 그곳에서 우리는 오늘도 나의 욕망을 결국은 이루기 위한 것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자존심들을 뚝뚝 부러뜨리고 울며 걷는다. 그건 하나의 착각이고 그건 하나의 거짓이고 사기라는 것을 결국은 알게 될 것을 예감하면서도. 라파엘의 '나귀가죽'을 저마다 손 안에 꽈악 움켜쥐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