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인의 책마을 - 책세이와 책수다로 만난 439권의 책
김용찬.김보일 외 지음 / 리더스가이드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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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무슨 책을 읽느냐,는 질문은 가장 사적으로 은밀한 영역을 교묘하게 침범하는 일일런지도 모른다. 당신은 어떤 사람이냐,고 묻는 것보다 더 도발적인 일이 될 수도 있다. 우리는 읽는다, 기 보다는 차라리 새로 쓴다,는 표현을 빌리는 것이 더 독서에 대한 정직한 고백이 될 것 같다. 서사의 공백마다 주장과 고백의 여백마다 우리는 자신의 삶과 느낌, 주장을 슬며시 끼워 넣는다. 그리고 마침내 읽었다, 고 자백하고 만다. 똑같은 텍스트를 기반으로 한 자백은 그 수만큼이나 불어나 있다.

서평을 읽는 일은 그래서 가장 진지하고 까다로운 독서가 될 수 있다. 타인이 읽은 책에 대한 얘기를 듣는 일은 때로 나의 그것과 충돌하고 조응하고 비껴간다.  이런 아슬아슬한 만남은 아집에 빠질 수 있는 독서의 편력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축복이다. 독서는 그 자체로 비교적 바람직한 행위로 상찬받는 경우가 많아 적시에 주어지는 적절한 교정과 자극을 결여하는 일이 태반이다. 이런 와중에 저자 중 한 분인 stella09님과 인연이 닿아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모처럼 독서 행위 자체에 대한 의식적 점검을 가능한게 한 일이었다. 

문학, 인문사회, 문화, 과학 분야를 평범하지만 삶에 대해 몇 겹은 더 진지하고 성실한 자세를 가지고 있는 듯한 다양한 필진들이 자신들의 독서 지형도와 그에 따른 삶의 궤적을 감칠맛나게 버무려 보여주고 있다. 고등학교 때 그저 신분의 격차를 뛰어넘지 못한 비극적인 사랑의 결말로만 이해했던 <노틀담의 꼽추>는 어느새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에서 그 불합리한 신분의 틀안에 가두어진 개인의 존엄에 대한 각성으로 재해석되어 다가온다. 그 시대상에 대한 해박하고 명철한 지식과 날카롭고 명징한 비판의식을 떠받쳐 줄 도서 목록은 덤으로 따라온다. 새만금 방조제 물막이 공사 현장에서 그 방조제를 뚫는 기습시위를 벌인 전력이 있는 저자가 권해주는 환경과 생태에 관련된 책 목록은 그 분야에 대한 지식과 열정이 결여된 나에게 그 어떤 권장도서목록보다 절절하고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 국회에서 걸핏하면 남발되는 좌파 명찰 붙이기를 낳은 역사적 배경과 진정성 있고 영향력 있는 실천적 좌파로 거듭나기 위한 지침을 안내받는 일은 자기 안에만 함몰되어 눈앞의 욕망에 후달리는 몽롱한 나를 정치적,사회적으로 의식있는 개인으로  건너가는 그 길목에 서게 한다. 건널 것인가, 주저앉아 버릴 것인가,는 결국 선택의 문제로 귀결되겠지만 너머의 세계를 의식하는 일은 어렵지만 존재의 경계를 확장시킨다.

진중권이 얘기한 각주와 목록을 따라 인터넷을 서핑할 때처럼 클릭하면서 비선형적으로 미로를 헤매는 놀이에 몰두하는 기쁨은 서평 읽기의 또다른 즐거움이다. 무한증식하는 읽고 싶은 책의 목록만큼이나 매혹적인 가능성을 품고 있는 게 또 있을지 잘 모르겠다. 이 책읽기가 사회적 의미를 가지게 되는 비평의 의미로까지 확장되려면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아슬아슬한 경계타기를 하며 수많은 이야기들을 주무르며 유리창을 닦 듯 나의 세계상을 닦는다. 언젠가는 말갛게 드러날 것을 기대하며 그 경험을 공유하는 이런 책을 가지고 계속 걷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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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10-09-07 15: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나는 아직도 읽고 있는 중인데 벌써 다 읽고 리뷰를 썼구랴.
정말 껌정드레스님 글 참 인상적이죠? 그 부분 읽으면서 사알짝 질투가 났었다능...^^

blanca 2010-09-07 16:44   좋아요 0 | URL
스텔라님 글도 참 좋았어요. 근데 읽으실거 생각하니까 언급하기감 좀 어렵더라구요^^;; 정말 잘 읽었어요. 재미있고 유쾌하고 유익하고...그랬답니다.^^

마녀고양이 2010-09-07 2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읽으셨네요.. 난 요즘 바쁜 일이 많아져서, 손도 못 대고 있어요. ㅠㅠ
블랑카님 리뷰를 보니, 더 읽고 싶어지는데여.

blanca 2010-09-07 23:15   좋아요 0 | URL
저도 며칠이 걸렸어요. 이상하게 제 주변도 어수선하고 책을 읽을 시간이 도통 나지를 않네요..마녀고양이님은 개강하셨으니 저보다 몇 배는 바쁘신 게 당연하죠.

순오기 2010-09-08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벌써 리뷰까지 올렸군요. 부지런한 님!^^
첫날 아는 분들 글만 찾아 읽고 독서회 토론도서가 줄줄이 밀려서 나머지는 못 읽었어요.
금욜이 지나야 마저 읽을 수 있을 거 같아요.ㅜㅜ

blanca 2010-09-08 22:53   좋아요 0 | URL
순오기님, 바쁘시잖아요. 저 요새 책 주문을 최대한 참는 방향으로 해서..(지금도 알라딘 들어와서 또 극기하고 있어요 ㅋㅋㅋ) 읽을 시간이 났어요. 순오기님의 맛깔스런 리뷰도 기다려집니다.

꿈꾸는섬 2010-09-08 22: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 너무 부지런하세요. 전 아직 손도 못댔거든요. 얼른 읽고 싶어요.^^

blanca 2010-09-08 22:54   좋아요 0 | URL
꿈꾸는섬님은 저보다 몇 배는 더 부지런하신걸요. 다만 요즘 아이가 낮잠을 안자서 종일토록 놀아줘야 해서 애로가 많답니다--;; 저질체력이 낳아도 고질체력이 나오기도 한다는 깨달음을 얻는 중이랍니다 ㅋㅋ

기억의집 2010-09-10 2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블랑카님 이 책 리뷰 썼군요. 전에 스크롤하면서 이 리뷰는 놓친 것 같네요. 드레스님, 이번 일욜에 만나 영화 보기로 했는데, 그 때 블랑카님 이야기 할께요. 하핫. 드레스님을 제가 맨날 똘끼 있다고 놀리는데(어휴, 정말 이 아가씨가 겁도 없이 어떨 때는 자기 변기 뚫는 이야기는 올리는지라)... 정말 역사에 대해서만은 너무나 진지하게 대하고 역사를 보는 시각이 참 독특해요. 강인하면서 자기 주관이 뚜렷한 분이에요. 아 궁금하네요. 제가 드레스님한테 내가 이 책 사서 싸인 받을꺼야, 했는데..^^

blanca 2010-09-10 21:56   좋아요 0 | URL
진짜 신기해용! 부러버요^^;; 주말에 영화보시는 것도 부럽고 드레스님 뵙는 것도 부럽고--;; 비도 오고 허리도 아프고 참으로 우울한 하루였거든요. 밖에 못나가니 아이도 막 화내고 말안듣고--;; 그게 정말 저는 정말 놀랐어요. 드레스님 역사 전공하셨나 했어요. 제 얘기좀 해주세요 ㅋㅋㅋ

감은빛 2010-09-11 0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첫문장 무척 공감합니다. 우연히 놀러간 누군가의 집에서 책장을 쓱 한번 훑어보고 나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게되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몇 년을 알고 지낸 사람보다 오히려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독서취향을 알고나면 더 친숙한 느낌이 듭니다. 또 누군가가 우리집에 와서 책장을 살펴본다면 괜히 부끄러운 느낌이 들어 쭈뼛거리게 됩니다. 어떤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고백하고 또 들키는 것은 그만큼 은밀한 영역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그런 비밀스런 기분을 이렇게 잘 표현해 주시다니! 놀랍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blanca 2010-09-11 11:08   좋아요 0 | URL
저도 누구 집에 가면 책장 염탐을 열심히 한답니다. 그런데 참 아쉬운 점은 요즘 또 저의 인관 관계에서는 책을 많이 꽂아둔 집이 없더군요.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그 자체로 친밀하게 느껴져요. 예, 어떤 책 읽고 있다는 건, 내가 지금 어떤 기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일과도 같은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