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대단히 심한 위염입니다. 이것 보세요.
의사는 화면의 생채기가 가득해 군데군데 피를 흘리고 있는 위를 가리켰다. 그건 신입직원의 위였다.
속에서 받지 않는 술을 잔돌리기라는 직장의 의례 분위기를 해치지 않기 위해 억지로 들이붓고,
줄 서 있는 손님들 하나 하나가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과제처럼 느껴져
그 위압감과 스트레스로 발을 동동 구르다 안그래도 어리버리한 비전공자로 눈엣가시로 여기는
팀장의 잔소리까지 상처없이 여과해 내려고 했던 신입사원의 처절한 발버둥의 현현이었다.
아버지는 그 사진을 들고 가슴아파했다. 동기는 인터넷에서 위염 관련 정보를 출력해
형광펜까지 쳐가며 무너져 가는 나를 일으켜 세우려고 애써 주었다.
그래, 직장만 그만 두면 나의 위는 깨끗해질거야. 직장 생활의 궤적은 나의 위를 흘러가며 흔적을 그렸다.
속이 쓰릴 때마다 나는 머슴의 비애를 곱씹었다.
이 무능력하고 무기력하고 단순한 머슴은 눈물을 삭히며 대신 위로 눈물을 흘렸다.
그런데 직장 생활과 멀어진 지금도 나의 위는 잠잠해지지 않았다.
<한겨레21>을 읽으며 손등에 라인을 잡고 내시경을 기다리는 시간,
그 공간을 채우고 나와 같이 위에 그려진 자신들의 삶의 비애의 지도를 확인하고 보듬어 주기 위하여 수십 명이 지루한 기다림을 죽이고 있었다.
저는 스트레스성 자살입니다.
노예로서의 충성심도 사라진 지금 정체성이 남아 있지 않다며 자살을 택한 시간 강사의 얘기.
98년도 이후 여덟 명의 시간강사가 목숨을 끊었다,는 기사.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하고
영등포 구치소에 복역하고 있는 연인을 기다리며 참여연대 노래패에서 <다시 떠나는 날>을 소망하는 그녀.
아이폰4를 시연하며 개발자 하나 하나를 호명하며 일어나게 해서 박수를 받게 했던 스티브 잡스의 얘기.
삶이 뭉클뭉클 일어나 서로 교차하며 뻗어 나가는 환영 속에 나는 수면 마취가 안되 계속 눈을 말똥말똥 뜨며
다량의 마취제를 추가로 투여 받아야 했다.
무언가에 온전하게 취하지 않고는 견디기 힘든 삶의 신산한 편린들 속에서 취하지 않고
명징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더듬고 싶은 것은 하나의 갈망으로 그치고 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