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뒷북] 책의 날 기념, 10문 10답 이벤트!
하늘은 께느름한데 모처럼 가디건을 벗어던지고 싶다고 느꼈으니 날씨가 좋았다고 눙칠 수 있을 지경이다. 그 정도로 파란 하늘과 샤방샤방한 날씨는 이 해 들어 거의 볼 수가 없었다. 어린이날 전날 지독한 콧물 감기와 배려받지 못한다는 자괴감은 하늘을 찔러 한 마디로 구린 하루였다. 예전에는 귀엽고 ㅋㅋㅋ 젊었으니 우울하다면 돌봐주는 사람도 몇 있었건만 나이들고 아줌마 되니 누구하나 내 우울에 관심 기울여 주는 이 없다.-..- 근처 대학교가 두 개나 있는데 그 아이들의 젊음을 보면 눈이 부시고 슬며시 질투가 난다. 아놔~이렇게 나이들어 가나 보다. 스무살 적 스물 아홉살을 보고 정말 절망적인 나이다,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내 나이의 아줌마에 대한 기억은 없는 걸 보니 아예 사정권밖으로 치워버렸었나 보다. 그러니 10문 10답이나 하련다.
1. 개인적으로 만나, 인생에 대해 심도 있게 대화를 나누고픈 저자가 있다면?
<혼불>의 최명희를 만나고 싶다. 이미 이 생의 사람이 아닌 그녀가 미처 끝내고 가지 못한 <혼불>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못다한 얘기들이 매듭을 짓지 못하고 너덜거리는 듯한 느낌에 아연했다. 그 자체로도 경이롭고 아름다운 작품이지만 살아 숨쉬는 듯하는 등장인물들의 뒷얘기를 알 수 없음에 목이 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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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단 하루, 책 속 등장 인물의 삶을 살 수 있다면 누구의 삶을 살고 싶으세요?
이 생에서는 결혼을 해봤으니 다음 생에서는 결혼을 안할테다.(비장한 어조로)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올리버 색스가 쓴 <색맹의 섬>을 읽고 이 팔자좋은 할아버지의 삶에 진심으로 부러움을 느꼈다. 이른이 훌쩍 넘은 나이로 평생 독신으로 살았던 올리버는 때로는 자신이 심취한 양치식물을 탐사하기 위하여 혹은 풍토병을 연구하려고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다. 미크로네시아섬에서 태평양이 보이는 옥상에서 저물녘 사카우를 마시고 만취하여 조이스의 "축축한 암청빛 열매가 주렁주렁 열린, 별 가득한 하늘나무'를 봤다는 대목에는 절로 질투가 났다. 내가 저기 앉아 있어야 하는데--;; 참, 이건 그러니까 작가가 자신의 얘기를 쓴 것이니 등장 인물이라기 보다는 실제 인물이 되버려서 질문과 어긋난 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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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읽기 전과 읽고 난 후가 완전히 달랐던, 이른바 ‘낚인’ 책이 있다면?
낚인 책은 정말 많지만 얘기하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다.
4. 표지가 가장 예쁘다고, 책 내용과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책은?
솔직히 심미안이라고는 없기(미술은 항상 우미였음)에 표지를 논할 자신이 없다. 다만 도서출판 이후의 수전손택 시리즈는 그녀의 사진들을 활용하여 가장 그녀다운 표지를 만들어 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표지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진다. 세워서 꽂아 놓으면 그 자체로 하나의 그림이 된다. 수전 손택의 얼굴로. 연인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의 작품들인 것 같은데(확실하진 않으나 확인하기 귀찮다--;;) 역시 불순한 감정이 담겨야 사진이 샤하게 나온다. 연인이 같은 여자였다는 것을 최근에 알고 조금 놀라긴 했다. 하지만 수전 그녀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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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다시 나와주길, 국내 출간되길 학수고대하고 있는 책이 있다면?
솔직히 학수고대하고 있지만 않지만 춘원 이광수의 책이 대부분 절판인 것은 의아하고 아쉽다. 중학교 때 참 좋아했었다. 힘들게 수집해 놓았는데 아버지가 딱 <흙> 한 권만 남기고 다 처분하셨더라. 왜 하필 <흙>이었는지.
6. 책을 읽다 오탈자가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시는지요.
동그라미를 친다. 왜 치는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만다. 많이 나오면 혼자 막 신경질 낸다.
7. 3번 이상 반복하여 완독한 책이 있으신가요?
사실 같은 책을 여러 번 읽는 편이 아니라서. 어렸을때 계몽사에서 나온 소년소녀문학전집은 다 매우 여러 번 읽은 것 같다.
8. 어린 시절에 너무 사랑했던, 그래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꼭 읽어주고 싶은 책?
계몽사의 소년소녀문학전집에 나왔던 책 대부분. <쿠오레>, <소공녀>, <소공자>, <작은아씨들>. 참, 그리고 로라 잉걸스의 초원의 집 시리즈는 미리 장만해 뒀다. 같이 읽고 싶은 책이다. 뒷심이 좀 부족한 책이긴 해도 정말 너무나 다사롭고 읽기만 해도 마구마구 행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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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지금까지 읽은 책 가운데 가장 두꺼운(길이가 긴) 책은?
<태백산맥> 10권. 시작할 때는 분량에 질렸지만 마칠 때는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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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이 출판사의 책만큼은 신뢰할 수 있다, 가장 좋아하는 출판사는?
결국 좋은 책을 좋은 장정으로 내놓을 수 있는 것도 자금력의 문제인 것 같다. 좋다는 의미는 여러 면으로 해석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많이 안 읽을 것 같은데도 좋은 책을 공들여 찍어낸 출판사는 그 어디라도 그 공력에 감탄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