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존 D. 록펠러에게 최후의 평결을 내린다면, 그것은 마땅히 그가 의학 연구에 기부한 행위가 인류의 진보에 이정표 역할을 했다는 것이어야 한다. 과학은 처음으로 머리를 얻었다. 보다 장기적인 대규모 실험이 가능해졌고, 그 일을 맡은 사람들은 재정상의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르네상스 시대 예술이 교황과 군주들의 후원에 힘입었던 만큼이나, 오늘날 과학은 관대하고 통찰력 있는 부자들에 빚지고 있다. 이러한 부자들 가운데 존 D. 록펠러는 가장 훌륭한 전형이다.
                                                                                                                                                -윈스턴 처칠
                                                                                                     

는 떠돌이 난봉꾼에 아내 몰래 다른 여인과 중혼한 아버지의 가장 역할을 대신하여 열 여섯 살에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했다. 찌는 듯한 8월의 찜통더위속  6주 동안 매일 일자리를 찾아 나서는 노동 끝에 마침내 위탁판매회사의 보조장부계원으로 취직한 9월 26일을 그는 평생 취직기념일로 기억하게 된다. 

소년 시절부터 돈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돈의 주인이 되기를 갈망했고 빨간 장부A에 수입과 지출을 기록해 나가며 십만 달러 부자의 꿈을 꾸었던 존 D. 록펠러평범한 대중들이 갈망하는 물질적 부의 성취와 고결한 삶의 지향을 몸소 구현한 모순적 존재이다. 그는 미친듯이 벌고 미친듯이 저축해 폭포수처럼 자선을 베풀고 삶의 장막 뒤로 퇴장했다. 록펠러는 치졸한 거부의 전형과 위대한 자선의 전범을 동시에 구현하였기에 드러난 행적에 대한 수많은 해석들과 비밀스런 삶에 대한 각종 추측들과 억측들이 난무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딜레마를 가진 인물이다.  

누군가의 삶을 대물렌즈로 들여다 보는 일은 어느 정도 염증스러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이니까. 어떤 측면으로든 위대하다고 평가받은 이의 삶은 한층 더 그러할 수 있다. 성취의 길목에서 불현듯 마주치는 수많은 유혹들에 대한 타협과 굴복은 더 빈번할 수밖에 없다. 그의 삶을 조준하는 일은 그의 삶 전체를 주변인들과 시대적 배경과 치밀하게 직조해 낸 하나의 커다란 밑그림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 무엇보다 그를 미워하면서도 사랑해야 한다. 그래야 그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사려깊게 사람들에게 소개할 수 있다. 전기를 쓰는 일은 그래서 애증의 작업이다. 드라마틱한 삶의 서사는 그 자체로 하나의 픽션적 감동의 잠재태다. 이 소중한 자료를 얼기설기 엮다 보면 그 과정에서 빈약함과 허술함을 고백할 수밖에 없다. 조심스럽고 더없이 위대한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론 처노는 이 모든 것을 해냈다. 완벽에 가깝게. 금융전문가로서 19세기의 자본주의의 태동의 그 정열적이고 무모한 과정을 섬세하고도 사려깊게 재현해 냈고 그 속을 종횡무진 누비며 최초의 다국적 기업을 건설해 냈던 록펠러의 열정어리고 때로는 치기어린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했으며 인생의 황혼에서 자신의 부의 제국을 자선의 제국으로 치환해 나가는 그 드라마틱하고도 예술적이기까지 한 고결한 모습을 우아하게 그려냈다. 또한 유려하고 깔끔한 번역으로 론 처노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복원해 낸 번역자들에게도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고 싶다.  

 

 

 

 

 

 

 

 

# 사기꾼 아버지와 독실한 침례교도의 어머니 사이에서 

록펠러는 야누스적 인물의 전형이다. 탐욕적 자본가와 고결한 자선가가 공존하는 그의 모습은 사기꾼 의사로 행세하며 떠돌아 다니다 마침내 가족을 버리고 다른 여자와 중혼을 한 아버지 빅빌과 그런 남편을 묵묵히 인내하고 기다리며 여섯 아이를 키워낸 어머니 엘리자가 빚어낸 조합이었다. 그는 평생 독실한 침례교도로서 극도의 절제와 절약으로 돈에 대한 색정을 물려받은 아버지의 잔상을 지워내려 애썼다. 걸핏하면 집을 떠나 남은 가족들이 외상을 깔며 생활하게 만들다 불시에 크리스마스의 산타클로스처럼 나타나 그 외상을 자랑스럽게 갚아주었던 아버지의 모습은 어쩌면 록펠러가 돈에 대한 하나의 착각어린 맹목적 애정을 가지게 된 하나의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는 돈을 불확실한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이자 가족적 안정의 중추점에 놓인 것으로 이해했다. 청소년기 일하던 사무실 금고에서 사천달러 수표를 몇 번이고 꺼내보며 황홀해 했던 그의 모습은 잃어버린 부정에 대한 하나의 대체물로서 그것이 자리매김했을 지도 모른다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그는 돈을 미치도록 사랑했다. 왜냐하면 아버지는 항상 돈과 함께 나타나 가족을 안심시켰으므로.   

# 현대의 자본주의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언들

19세기 록펠러의 스탠더드 오일의 모습은 21세기 한국의 삼성과 닮아 있다. 스탠더드 오일은 수많은 자회사를 간부위원회하에 통제하고 소유하였으며 노조의 합법성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경쟁적 위치에 있는 정유회사들을 파멸키시거나 사들이며 문어발식으로 확장하여 업계를 장악하였다. 당시 석유수송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철도회사와는 비밀리에 카르텔을 맺어 독점적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였다. 정계에는 반독점 법안을 결렬시키고 거대 기업에 우호적인 정책추진을 펼칠 의붓자식들을 심기 위하여 비자금을 살포하였다. 수많은 비리와 독점행위에 대한 소송에는 뻔뻔하고 거만하고 무책임하게 대응하여 교묘하게 빠져나갔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우리의 거대 기업과는 달랐던 점이 있다. 물론 이후의 행보를 지켜볼 필요는 있겠지만 그는 경영권을 제3자에게 넘겼고 기업의 이윤을 공공의 재산으로 간주했다. 이윤의 착취 과정의 논란과 노조에 대한 인식의 편협함에서는 그도 자유로울 수는 없었지만 결국 결과론적 이윤의 상당 부분을 공공의 것으로 환원함으로써 공적 책임을 방기하지 않았다. 또한 아들 주니어 록펠러가 결국 노동자들의 파업을 중재하고 그들의 처우개선과 노조의 결성을 인정함으로써 가장 아픈 상처를 들어내는 용기있는 결단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런 모습은 후손들의 유전자에도 각인되어 흘러내려 오고 있다. 거대 독점 기업이 해체되고 그 후신으로 남은 엑슨 모빌의 주주로서 경영의 합리와와 환경친화적인 주주 결의안을 내어 놓은 그들의 모습은 현재가 과거로 화석화되는 것만이 아님을 방증한다. 우리의 모습은 결국 미래 후손들의 예고와 다름아니다.  

또한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거대한 스탠더드 오일 트러스트를 과감하게 해체하며 반독점법을 천명하는 대목은 오늘날 우리 시장 경제에서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 경제적 이권과 맞물려 있는 거대 자본과의 손쉬운 결탁대신 그 재벌을 상대로 외로운 투쟁의 기치를 내걸고 시장질서 구현을 위해 분투하는 대통령의 모습은 돌올하다. 정치잡종이라 불렸던 그가 스스로가 내세운 자본주의의 윤리적 대의를 실현하는 과정은 우리의 주인공인 록펠러를 잠시 뒤로 밀어놓게 할 정도로 매혹적이기까지 하다. 

# 자선 제국의 건설, 그 아름답고 합리적인 도정

록펠러는 도움을 받는 사람의 도덕적 뼈대를 약화시키지 않으면서 베푸는 법에 대하여 고민했다. 그의 자선은 즉흥적이거나 과시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퇴임후 하루에 한 시간씩 자선을 위해 일했던 그의 자선은 체계적이었고 미래지향적이었으며 겸손했다.  거액을 기부한 대학이나 설립에 참여한 기관에도 교수 임용이나 표현의 자유에 결코 간섭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 선행을 과장하지도 않았다. 그의 자선은 과거의 탐욕스러운 자본을 기반으로 한 악업에 대한 회개의 개념도 아니었다. 십대 시절 1달러를 벌 때도 10센트를 기부하고 그만의 '장부A'에 기록해 둔 전례를 봐도 그의 자선은 신앙으로 체화되어 성장했던 것 같다. 양면적인 의미로 그는 돈에 대한 확실한 지배 개념을 터득했다고 할 수 있다. 그는 돈을 제압하고 마침내 거기에서 자유를 얻었다.  

# 거부의 가난했던 자녀들

여덟살 때까지도 이 거부의 외동 아들은 누나들의 원피스를 물려 입어야 했다. 실제 그는 성장과정중 자신이 부자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적이 없다고 한다. 록펠러는 집안에 모의시장경제체제를 도입하고 아이들에게 회계장부를 꼼꼼하게 기록하게 했다. 아이들은 집안일을 해서 용돈을 벌었고 자전거를 한 대 사서 네 명이 돌려타며 양보하는 법을 배웠다. 자녀들은 장성해서 배우자 문제, 혹은 칼 융의 정신분석에의 지나친 경도 등으로 문제를 일으키기기도 했지만 예술가와 가난한 자들을 자신이 가진 것들로 도와주는 것을 잊지 않을 수 있었다. 5대손으로 이어져 내려오는 록펠러가가 다른 재벌가들과는 달리 후손들의 사치, 향락, 방탕한 사생활들로 회자되지 않을 수 있었던 연유를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다. 다만 극도의 억압적 가풍은 자손들의 신경질환으로 발현되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그는 절약은 해야 될 때 하는 것이 아니고 할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탠더드 오일의 등유 포장 깡통의 납땜 한 방울을 절약할 것을 권고하여 수십만 달러를 절약한 사례를 위시하여 그의 구두쇠 근성은 여러 곳에서 에피소드를 낳았다. 그는 돈이 적절하게 쓰이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했다.  

 

# 거인 평온하게 눈을 감다 

백 살까지 사는 프로젝트를 가동했던 그는 자신의 인생에 깊은 영향을 끼쳤던 애버뉴 침례교회의 융자금 전액을 대신 갚아주고 바로 그 날 새벽 잠든 상태에서 평온하게 숨을 거둔다. 98번째 생일을 6주 앞둔 날이었다. 론 처노는 그가 사망했을 무렵 커다란 악의 세계로부터 헤아릴 수 없는 선함이 쏟아져 나왔으므로, 록펠러는 그 자신이 기대하고 확신했던 하나님의 마중을 받았을지도 모른다고 얘기하며 덧붙인다. 록펠러가 죽은 뒤 아들 록펠러 주니어는 자신의 이름 뒤에 주니어(2세)라는 표현을 없애지 않기로 했다. "존 D. 록펠러는 이 세상에 단 하나뿐"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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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4-28 09: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역시 좋은 리뷰입니다.
록펠러는 진짜 현대 사회에서 추구하는 인물의 전형 같아요. 능력을 발휘하면서도 베푸는. 그리고 정말 미국적인 인물이죠. 감탄은 하면서도, 저는 왠지 정은 안 가여. 너무 완벽해서 그럴까요? 록펠러 전기를 저번에 사시더니 다 읽으셨네요.... 저는 요즘 융의 자서전 읽는 중 이랍니다.

blanca 2010-04-28 16:30   좋아요 0 | URL
마녀고양이님! 융 자서전도 있어요? 우아! 안그래도 여기에 록펠러 딸이 융을 거의 숭배하다시피 하며 따라다니거든요. 그런데 또 프로이트가 융을 그렇게 싫어했다면서요. 그런 얘기들이 나오더라구요. 꼭 리뷰 써주세요. 저는 히틀러랑 융의 리뷰를 기다릴게요. 부담 막 드리고 있죠?^^;;

반딧불이 2010-04-28 11: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이름만 듣던 록펠러에 대해 조금이나 알게 되었어요. 고맙습니다.

blanca 2010-04-28 16:30   좋아요 0 | URL
반딧불이님의 소세키에 대한 섬세한 리뷰는 제 독서를 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더 고맙죠.

루체오페르 2010-04-28 16: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한권을 함께 읽은 기분입니다. 좋은 리뷰 감사히 잘 봤습니다.^^
ps : 칼 융 자서전의 제목은 '기억 꿈 사상' 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4-28 20:20   좋아요 0 | URL
루체님.. 오홋... 저는 지금 읽는 중이면서도 제목이 기억 안 났는데요.. ㅋㄷㅋㄷ
아..... 존경스러워라~

blanca 2010-04-28 23:16   좋아요 0 | URL
루체오페르님 감사합니다. 당장 찾아 보았답니다.

루체오페르 2010-04-29 00:53   좋아요 0 | URL
마녀님, blanca님 두분 다 제가 영광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29 0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록펠러도 록펠러지만 이런 평전을 지을 수 있는 저술가들이 있다는 사실이 부럽습니다.가까운 일본만 해도 전기작가들이 많이 활동하더군요.

blanca 2010-04-29 15:05   좋아요 0 | URL
예.. 저도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기작가들은 한 인물과 시대를 재평가하는 중책을 맡게 되는건데. 이게 결국 역사관과 각종 정치 경제 정책들에도 전범이 되거나 반면교사로 역할을 할테니까요. 참 아쉬운 부분입니다. 좀 삼천포로 빠지자면 국사가 수능에서 빠진다는 얘기듣고 정말 충격받았답니다.--;;

후애(厚愛) 2010-05-01 05: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즐겁고 행복한 주말 되세요~ 그리고 항상 건강하시구요.^^

blanca 2010-05-01 23:00   좋아요 0 | URL
후애님도요! 이미 행복하게 보내고 계시겠죠?

순오기 2010-05-01 15: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돈의 가치를 제대로 알고 쓴 부자였군요.
자식들이 부자라는 걸 느끼지 못하게 키웠다는 것도 대단하네요.

blanca 2010-05-01 23:01   좋아요 0 | URL
오늘 딸아이가 사달하는 구두, 펜, 다 사주면서 록펠러 생각했답니다.--;; 이러면 안되는데, 하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