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막상 계집아이 입에다 미음을 넣어 주자 그만 구멍 난 볼때기로 주루룩 흘러 버려, 아이의 어미를 다시 한번 대성 통곡하게 하였다. 넣는 대로 흐르는 미음을 어미는 손바닥으로 쓸어 담아 잇바디 드러난 뺨 구멍으로 밀어 넣어 주다가, 아예 틀어막고 앉아 "먹어라아.......먹고 가아......이놈의 새끼야......내 새끼야, 먹고 가아, 아이고, 아이고오, 내 새끼." 산발을 하여 부르짖는다. - 최명희 <혼불> 중
어떻게든 먹고 살아보려고 혹한을 뚫고 배를 곯으며 북만주까지 걷고 또 걸어 온 가족. 마침내 또다른 곤궁한 삶이 예비된 그 곳에 이르렀지만 어린 딸내미는 동상과 천연두로 얼굴이 썩어 들어간다. 가난하고 무지한 아비는 그런 딸내미의 그 볼을 가위로 싹둑 잘라내고 열에 들떠 죽어가는 어린 딸에게 마지막으로 미음이라도 먹여 떠나 보내려고 어미는 산발을 하고 절규한다. 어미의 마음은 그런 것이다.
시인 윤동주가 후쿠오카 감옥에서 죽어 돌아왔을 때 의외로 그의 모친은 슬픔을 크게 내색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느 날 빨랫감 속에서 그의 셔츠가 나오자 그녀는 산비탈에서 몇 번이고 몸을 굴러내리며 절규한다. 가슴을 치며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어도 내 몸과 피를 나누어 만든 또 다른 작은 나의 죽음은 감내할 수가 없다. 내가 내 몸을 풀어 헤치고 내 안의 내장을 다 끄집어 내어도 그 슬픔과 그럼에도 내가 살아 있음에 대한 그 끔찍스러움은 가실 길이 없다. 자식의 죽음은 견디면서 사는 것이지 망각하거나 화해할 수 없다.
엄마가 몹시 아팠을 때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해두라고 했을 때 외할머니는 어린 손녀들 앞에서 몸부림쳤다.
"생떼 같은 내자슥! 생떼 같은 내 자슥! 내 자슥아! 자슥아!" 당신의 절규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한 삽화로 남아 있다.
내리사랑이라고 나는 그 때 그렇게 이성을 잃고 펄펄 뛰는 할머니의 모습을 마음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지병으로 만신창이가 되어 종이조각처럼 쪼그라들어버린 지금의 할머니 앞에서 과거의 그 포효를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마치 열에 들뜬 듯 이 방 저 방을 다니며 울부짖었던 그 모습은 열 달을 품고 몸 전체를 분해시킬 것 같은 진통 속에
그렇게 세상에 내어놓고 가정을 이루어 솔가시켜 놓고도 새끼와 묶은 그 끈질긴 공생의 끈을 놓지 못함이었다.
아마 죽을 때까지 그럴 것이다. 아니 죽고 나서도 이 세상에 내가 뼈와 살을 발라 주어 내보낸 자식의 안녕을
어찌 걸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차가운 물에서 삽십대, 사십대를 누려 보지도 못하고
그대로 마지막 숨을 고르고 있지나 않을까 마음이 저린다.
그들의 어미들은 지금 얼마나 고통스러운 기다림을 견디고 있을까.
그 기다림의 끝에 제발 안도와 기쁨의 웃음이 걸리기를 간절히 간절히 기원한다.
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