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 안에는 모든 것이 있었다.
삶과 죽음, 사랑과 이별, 전쟁과 평화, 논쟁과 타협, 이성과 감성, 위선과 위악.
들어가는 문은 좁았다. 그러나 나오는 문은 턱없이 휘했다. 허전하고 슬펐다.
나는 오른쪽 발을 그 출구의 문지방에 걸친채 그대로 있어도 될 구실을 찾아 더듬거렸다.
톨스토이의 분신 같은 레빈이 고개를 들었다.
안나는 갔어요. 나도 가게 됩니다. 사소한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 하고
순간순간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당신도 결국 한 줌의 먼지로 스러지게 됩니다.
그렇다고 삶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그 경계 너머에 절대적인 선, 절대적인 진리가 스며 있습니다.
불합리한 사랑이지만 우리는 사랑을 합니다. 이 힘이 오는 그 시원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영화를 먼저 본 것은 언제나 그렇듯 약간의 함정과 약간의 생생함을 떨구었다.
소피마르소의 그 에메랄드 빛이 살짝 휘감긴 회색 눈동자는 안나의 그것과 거의 흡사했지만
안나의 특질인 붉은 입술 사이를 팔딱팔딱 뛰어 돌아다니는 생기로 묘사되는 그 과잉된 뭔가
되레 온순해 뵈는 그녀의 인상에서 도저히 상상해 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억눌린 생기를 마침내
발산하고 마는 안나를 제대로 떠올릴 수가 없었다. 그건 분명 실책이었다. 소피 마르소의 안나를 알아 버린 것은.
내내 안나 카레니나를 소피 마르소로 치환하여 떠올리고 말았다. 



 

당시 러시아의 시대적 배경들과 인용된 각종 원전들에 대한 친절한 각주들은 그 자체로 돋보였다.
모지락스러운, 숙부드러운 부인(사랑에 빠지기 전의 안나에 대한 세간의 평^^), 잇바디(치열),너나들이(격의없는 사이)
같은 우리말들을 활용하여 정성스럽게 한 번역은 간혹 만연체로 늘어지는 그 지루함에 대한
아쉬움 정도만이 남을만치 훌륭했다.
 

결국 불륜의 로맨스이자 실패한 일탈로 귀결지어질 수도 있는 안나의 사랑만이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는 아니다.
그녀의 오빠 스티바의 불륜으로 문을 열고, 스티바의 처제 키티와 결혼한 친구 레빈의 철학적 성찰로 작품의 문을 닫은 것은
톨스토이가 결국 하고 싶었던 이야기의 맞춤한 양단 같다.
온갖 불합리와 감정의 과잉이 판치는 세상사를 가족의 안에서 형상화하고 그 자잘한 불합리와 비극들의 소재들을,
결국 어떤 절대적 존재의 절대선으로 다림질하여 아퀴를 짓는 것.
물론 이런 이상주의적 결론에 아쉬움이 조금 남기도 하지만
그것이 소설의 틀 안에서 완성되는 모습이 그 자체로 미학적인 아름다움을 가지는 것 같다. 
소설은 철학서가 아니지만, 그래서 어쩌면 이 아쉬움이 그대로 미결인 채로 아름답게 빛나지만
허구 안에서 진실의 사금파리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은 언제나 유쾌한 경험이다. 

세 권의 두툼한 분량이 아쉬울만큼 재미있다. 뒤로 갈수록 더 속도가 나고, 안나의 내면에서, 또 레빈의 내면에서
들고나는 그 수많은 사고의 편린들이 긴박감 있게 묘사되어 전혀 지루하지 않다. 톨스토이는 꼭 인간의 마음 속에
들어가서 한번 휘휘 저어보고 나온 이처럼 예리하게 우리의 마음 속을 지나가는 그 수많은 상념들을 집어낸다.
그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사고나 감정의 조각들도 그의 펜 끝에서는 하나의 서사가 되어 나오니 놀라울 따름이다. 

 

표지의 라일락빛도 안나에게 사돈처녀 키티가 상상으로 입혀보고 어울린다고 생각했던 라일락빛에 대한 암시인 것 같아
기억해 두고 싶다. 물론 안나는 그 파티에 키티의 기대를 저버리고 검은 드레스를 입고 와버리지만. 아주 자상한 북커버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뭐든지 필연으로 감치는 것도 재미있는 습관이라고 합리화하련다. 

다 읽고 나서는 1권의 중반까지 걸치고 오만하게 내렸던 결론을 뒤집고도 한참을 어안이 벙벙하게 할 정도로
임팩트가 컸다. 고전이란 이런 것이구나. 소설적 성취가 여기까지도 올 수 있구나.
답답하게 엉켜 있던 실타래를 마구 끄집어 내어 풀리는 데까지 막 흔들면서 풀어내고 마무리를 넘겨준 사람을 만난 느낌.
삶에 던지고 싶은 수많은 질문들을 들키고 그 해답을 차근차근 함께 연구하다 갑자기 내처진 느낌.
안나의 그 무모한 사랑과 그 사랑에 던진 과잉된 무언가의 그 극적인 마력에 이끌리다가도
심심하게 일상을 영위하고 항상 질문하고
고민하며 살아가는 레빈에게 결국 끌려가고 마는 아이러니는, 이 작품에서 가장 아름다웠던 장면을
그가 농부들과 더불어 풀베기를 하는 그 노동의 무아의 지경으로 기억하는 것으로 설명될 수 있을까?
 

충동과 순간을 뚫고 나가는 과잉된 무언가를 요구하는 사랑의 피곤함보다는 사물에 대한 우직한 투신과 연마가 남기는
담백한 만족감을 원한다면 자기기만일까, 아님 늙어버렸다는 방증일까.
이렇게 또 질문들은 또 숱하게 남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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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1-16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지다...안나 카레니나를 독파한 사람이 우리나라에 몇명이나 있을까요?

blanca 2010-01-16 22:03   좋아요 0 | URL
아...침울했는데 노자님 칭찬에 기분이 급좋아지는 이 단순함이라니. 책 다 읽었다고 칭찬받기는 또 처음이네요^^ 좀전에 우리나라에 조이스의 율리시즈를 다 읽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아버렸답니다.ㅋ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1-17 14:53   좋아요 0 | URL
율리시즈...유명하긴 하지만 실제로 읽기는 힘든 책들에 관심이 많으시군요.저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정도라면 몰라도 율리시즈는 좀...

다락방 2010-01-19 10: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이에자이트님과 blanca님의 이 댓글들을 보니, 반드시 율리시스를 완독해야겠다는 의욕이 불타올라요. 2010년에는 읽을 수 있도록 노력해봐야겠어요. 불끈!

blanca 2010-01-19 14:36   좋아요 0 | URL
아. 저 다락방님이 이거 산거 페이퍼 검색하다 보고 저도 사고 싶지만 읽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정말 다 읽고 리뷰 올려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당!

프레이야 2010-01-24 13: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페이퍼에요.
소피 마르소는 착해보이는 약간 처진 눈꼬리가 어떤 경우엔 단점이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나이 들어갈수록 오히려 더 분위기가 풍성해지는 배우 같아요.
저도 라일락색 참 좋아하는데요, 북커버에도 필연이^^

blanca 2010-01-24 20:27   좋아요 0 | URL
맞아요. 소피마르소는 언제나 착해보이잖아요. 그래서 좋아하기도 하구요. 라일락색 참 묘하게 이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