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많은 내 모습이 있다. 그건 어는 날 소풍을 다녀오며 친구들과 폭우에 흠뻑 젖어 하필 대학가의 카페 유리창에 그 모습을 비춰보고 있는데 그 안에 선망해 마지 않던 대학생들이 안에서 우리가 비에 쫄딱 젖은 모습을 보고 유쾌하게 웃던 풍경이나(긴 머리를 빨래처럼 짜고 있었으니,), 짝사랑하던 사람 남자 친구와 헤어지며 다음에 그 얼굴을 볼 일주일을 기다릴 일에 돌아서며 벌써 괴로워하던 여대생의 모습이나(음..그 정도면 고백을 했어야지.), 아기띠를 하고 전투적으로 언덕을 올라가던 젊은 엄마의 모습이 이제 어엿한 중년의 모습으로 나아간다. 그러니까 결국 시간이다. 수많은 나를 양산한 것은 시간의 흐름이다. 다 결국 나인데 이 모습들은 시간의 나이테를 지나며 타인만큼 멀어졌다. 가끔은 그 간극에 아연하다. 마트료시카 인형처럼 내 안에 수많은 나를 품고 이제는 미래를 생각해 본다. 그러다 보면 그 시간 속에서 할머니도 된다. 이런 생각들을 계속 하다 보면 뭔가 몹시 신비하고 아득하면서 언어로 주워담을 수 없는 각종 감정이 휘몰아친다. 내 앞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내 뒤에도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태어나고 살다 죽을 것이다.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다 살 수 있다네. 그러므로 우리 정신의 삶은 이백사십 년에 걸쳐 이어진다고 말할 수 있지.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 김연수
김연수의 이야기들은 스무 살의 추억을 이야기하던 삼십 대의 작가가 이제 오십 대가 되어 유장한 시간성 속에서 육체의 유한성, 인생의 한계를 조망하는 것으로 모인다. 현실을 비관하고 모든 것들을 비판하고 불만을 가지기란 쉽다. 그러나 그 안에서 낙관을 이야기한다는 건 용기와 비난을 각오해야 하는 일이다. 김연수는 거기에서 작가가 설 지점을 섬세하게 찾는다. 그건 통시적으로 우리의 짧은 삶을 바라보는 일이다. 자연히 우리의 삶은 작아질 것이다. 응축될 것이다. 지금 여기에서 괴로워하는 일, 한없이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일상의 과업들은 자연히 사소한 것으로 졸아들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무의미를 이야기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살아나가는 일의 그 가치에 대하여 여전히 흔들리지 않는 확신으로 이야기하는 소설가의 여전함이 반갑다. 나이 들어도 때가 묻어도 어떤 원형은 그대로 남는 것 같다. 그렇기에 누군가를 오래도록 응원할 수 있다.
"선생님, 저는 일 년 후에 제가 살아있을지도 장담할 수가 없어요. 생각해보면 십대 때부터 그랬어요. 저는 그렇게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본 적이 없어요."
-나종호 <뉴욕 정신과 의사의 사람 도서관>
여기 조금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게 먼 미래를 바라보며 살아본 적이 없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남미 출신의 40대 여성으로 트랜스젠더다. 그녀는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한번도 흔들림 없이 믿었던 여성이라는 정체성을 육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들을 버린다. 명문대 학벌, 주변의 시선, 사회적 기대. 그러나 그 순간만큼은 단 한번도 후회해 본적이 없다. 그녀를 괴롭히는 우울증은 다른 문제다. 물론 이것이 결국 타인들이 그녀를 바라보던 시선에서 비롯되었을 가능성은 있다. 내년에 살아있을지 확신할 수 없는 사람은 그러나 하루하루를 치열하게 열심히 산다. 그녀는 치료에도 적극적이다. 미래를 기약할 수 없지만 그럼에도 하루하루를 충실히 열정적으로 살아나가는 그녀의 모습에 눈물이 났다. 그녀가 나름의 시선으로 보는 삶은 그렇게 가혹하고 유한하건만 그것을 대하는 그녀의 태도는 엄숙하기까지 하다. 이걸 비난할 수 있을까. 통시성이 아니라 여기, 지금에 집중하는 삶은 또 다른 견지에서 의미를 가진다.
우리는 모두 뒤로 걸어가는 중이다. 대부분은 인생이라는 여정이 얼마나 위험한지 망각한 채로, 가끔 주변 사람들에게 닥치는 일에 충격을 받고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이들을 항상 그리워하며 살아간다. 아무도 언제 지뢰를 밟게 될지 미리 알 수 없지만, 생각해보면 그 누구도 지뢰를 피할 수 없다는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된다.
-나이젤 워버튼 <언제 죽을지 모르는 게 좋다>
인생이라는 여정은 그러하다. 위험하고 허무하고 짧다. 그러나 그것에서 부조리와 무의미만을 추출한다면 이 삶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럼에도 담담하게 일상을 살아나갈 힘을 어디서든 끌어오는게 과제가 아닐까. 그 과정에서 저마다 삶의 서사를 만들어 나가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