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우물 1 펭귄클래식 22
래드클리프 홀 지음, 임옥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8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1928년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가 출간되었다. 같은 해에 평생 남장을 하고 다녔던 작가 레드클리프 홀의 <고독의 우물>은 출간 즉시 여성들의 동성애를 그렸다는 이유로 금서 처분을 받는다. 2022년에 1928년에 출간된 성소수자의 이야기를 읽는 일은 우리 사회가 당시의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던 편견의 시선에서 얼마만큼 더 자유로워지고 진보했나를 자문하게 했다. 


그리고 비단 이 이야기는 성소수자의 이야기로서만 가치를 가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 모두 세상이 부여하는 관습의 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부분들이 있고 그것은 때로 엄청난 소외감과 고독을 유발한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근원적 고독, 소외감, 상실에 대한 처절하리만치 아름다운 애가로 읽힐 수 있을 것이다. 


레드클리프 홀의 문장은 각별히 아름답다. 특히 주인공 스티븐이 태어나 자라는 고든 가의 시골 영지 모턴의 자연 풍광의 묘사는 절창이다. 스티븐이 그 아름다운 자연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동과 분리가 되지 않는 슬픔은 자신의 몸이 자신이 지향하는 남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데서 오는 간극과 모순에서 느끼는 혼란과 닿아 있다. 아들을 바랐던 아버지 필립 경과 어머니 애너에게서 태어난 이 엉뚱한 아이는 결국 자신이 지향하는 남성성으로 자연스럽게 이행한다. 여성의 몸을 한 남성은 여성들과 사랑에 빠진다. 그 사랑은 번번이 어긋나고 매번 실패한다. 무엇보다 세상에 떳떳하게 인정받을 수 없었다. 세상이 요구하는 준거틀에 부합할 수 없었다. 세상이 누리는 양지에서 자랑스럽게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는 자기 안에 시체를 짊어지고 다녔다. 안젤라에 대한 사랑의 시체였던가?


무엇보다 미망인이 된 어머니의 반응은 충격적이다. 평범한 여성으로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가정을 이루기를 바랐던 애너는 딸이 남성의 옷을 입고 같은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 행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심지어 그 이유로 딸을 사랑할 수 없었고 거부감을 느꼈다. 스티븐이 결국 목숨보다 사랑했던 유년의 집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이러한 어머니의 단죄 때문이었다. 이후로도 스티븐은 사랑하는 제인을 그곳에 데려갈 수 없었다. 자신의 사람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곳을 보여줄 수 없다는 사실은 그녀를 내도록 괴롭혔다. 



영문학사 최초의 레즈비언 소설이라는 문구는 <고독의 우물>을 반 정도밖에 설명하지 못한 말이다.  그 틀 안에서 이 이야기를 받아들인다면 여러 한계가 보인다. 무엇보다 주인공 스티븐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남성이 되고 싶어했으며 여성과 사람에 빠질 때마다 자신을 남성적 위치에 상정한다는 것이 가지는 의미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녀는 여성으로서 여성과 사랑하지 않는다. 당시 이성애적 사랑에 빠질 때 남성이 점유하는 위계에 집착한다. 연인을 보호하고 경제적으로 지원하며 생활을 통제하고 싶어하는 모순에 빠진다. 이 이야기 안에서 남성성은 때로 폭력적이고 위압적이지만 강력하고 우월한 것으로 그려진다. 즉 레즈비언의 이야기이면서 여성과 여성성을 존중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또한 성적 소수자들의 아픔과 소외감에 집중하면서 정작 흑인들을 검둥이라고 부르고 하대하는 장면들을 그린 것은 시대적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작가가 실제 귀족주의자였고 파시즘을 지원한 경력 등으로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당연히 여러 소수자적 집단에 속할 수 있다. 남성이자 백인인 성소수자가 될 수도 있고 흑인 이성애자가 될 수도 있다. 그리고 그 분류에 따라 어떤 곳에서는 우위를 점하거나 어떤 곳에서는 약자적 소외감을 경험할 수 있다. 그렇다고 자신의 모든 행동과 말이 자신의 소수자적 정체성만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성소수자가 인종차별을 정당화할 수 없는 것도 같은 맥락의 이야기다. 이 대목은 이 작품의 높은 완성도를 볼 때 상당히 아쉬운 대목이다. 


<고독의 우물>은 인간이 사회적 정상성 기준에 부합하지 못할 때 느끼는 고독을 처절할 정도로 섬세하고 아름답게 형상화한 작품이다. 스티븐이 끝내 극복해내지 못하고 만 것들의 잔향이 여전히 오늘날에도 심연을 드리운다. 대다수가 정상이라고 상정하고 만들어 놓은 틀 바깥으로 내쳐지는 수많은 주변인들의 고독과 그 소외감을 상상해 본다. 사랑은 사랑이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3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페크pek0501 2022-04-08 12:0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남자들의 사랑을 그린 모리스, 를 읽은 적이 있어요. 포스터의 작품 같아요. 장편소설.
뒤에 반전이 있어 멋진 작품으로 기억하게 됐어요.
요즘 드라마에도 동성애 사랑을 그린 거 예고편인가 본 것 같아요. 세상이 진보하고 있는 중이네요. 늦은 감이 있지만.

blanca 2022-04-08 12:34   좋아요 2 | URL
페크님, 저도 <모리스> 정말 좋아해요. 다시 읽어봐야겠어요.

새파랑 2022-05-07 07:5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축하드려요~!! 저도 이 책 읽으려고 계속 꺼내놨는데 아직 못읽었네요 ㅜㅜ 이번달에는 읽어봐야 겠습니다 ^^

blanca 2022-05-07 09:10   좋아요 1 | URL
오, 새파랑님 덕분에 알았네요.감사합니다!

서니데이 2022-05-07 17:02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blanca 2022-05-08 08:2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