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이 가는 시점 개인적으로 기억에 남기고 싶은 올해의 책들을 추려본다. 좋았던 책은 많았지만 그 중에서도 다시 읽게 될 것 같은 책을 중심으로.


▶인문/과학




방대한 분량, 사 세기에 걸친 과학자와 시인, 소설가의 이야기는 언뜻 위압감을 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엮어낸 거대한 모자이크를 들여다보면 그 촘촘함과 조화로움이 가지는 아름다움에 눈이 부실 지경이다. 요하네스 케플러의 꿈에서 출발하여 마거릿 풀러의 묘비 앞에서 맺는 이야기는 우리 인간의 개개의 삶이 가지는 그 찰나성과 우리가 소망하는 것들이 끝내 좌절당하고 사랑이 떠나갈 때의 그 가차없음에 대한 것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속에 남아 죽지 않는 그 무엇에 대하여 우주적 관점에서 조망한 것이다. 크고 빛나는 이야기들.











흔히 베스트셀러는 그 깊이와 완성도에 대해 의심당하는 경향이 있다. 다 좋다고 하면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 같은 느낌. 말초적이고 단편적이고 무언가에 영합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 그러나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좋은 책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철학을 사변적이고 추상적으로 이야기해야 그 본질에 더 충실한 것이라는 시선은 하나의 편견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 이야기. 얄팍하지 않으면서 흥미롭고 진지하면서 금세 실제 사례로 가닿는 그의 능수능란한 글솜씨에 절로 넘어갈 수밖에 없는 책이다. 재미있고 뭉클하다. 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소설




어렵다. 어려운데 매력적이다. 작가가 이 책 한 권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들을 쏟아부었는지 그 공력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책이다. 과연 우리가 죽음을 제대로 알 수 있을까? 죽기 직전까지도 우리는 여전히 그 실체를 붙잡을 수 없을 것이다. 삶이라는 게, 사는 일이라는 게 생명을 전제로 하는 한 죽음을 제대로 완벽하게 연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그 근사치에 처절하게 가닿으려는 노력 그 자체를 목격하는 것만으로도 사는 일과 죽는 일에 대한 이해가 조금은 더 깊어지고 넓어지지 않을까. 한 구도자의 구도 과정을 목격하는 것 같은 느낌의 읽기였다. 이 책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날이 과연 올 것인가 싶을 정도로 나의 이해는 피상적이었다. 나머지는 사는 일과 읽고 생각하는 일들로 채워질 수 있을지 확신할 수는 없다. 그 묘한 사투리의 리듬감, 삶의 고단한 그 여정의 간이역에서 채워지는 구수한 입담들이 주는 즐거움도 읽는 재미를 준다. 










지루하고 어렵고 시대에 뒤떨어진 작품일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여전히 오늘날에도 유효하고 시의성 있는 질문을 품고 있는 문제작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시대를 뛰어넘는 인간과 인생, 무엇보다 인간의 그 불완전함을 한계치까지 밀고 나가 탐구하고 이해하려 했던 작가다. 그의 펜끝에서는 삶의 속살과 인간의 심연이 기어이 드러나고야 만다. 그 끝에 절망으로 침잠하지 않을 수 있는 작가는 그가 유일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만든 캐릭터들은 분명 실존한다. 우리의 뒤에 우리의 옆에 바로 우리의 속에. 위대한 이야기다.









남성 작가가 여성을 이야기할 때 그것은 흔히 대상화되기 쉽다. 표피적이고 단편화되기도 한다. 그러나 이 한계를 깨고  그 여성의 내면에 들어가 그녀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작가가 윌리엄 트레버라고 생각한다. 


이야기에는 필연적으로 작가의 세계관이 윤리관이 투영될 수밖에 없다. 익명으로 죽어간 소녀들을 흔들어 깨우고 그녀들의 이름을 찾아준 이 대작가에게 진심으로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에세이




체코의 국민작가인 차페크의 열두 달 정원에 관련한 글이 맞다. 맞는데 신변잡기 에세이가 아니다. 묵직하고 감동적이고 심오하다. 그런데 동시에 귀엽고 사랑스럽고 웃음이 절로 나온다. 


정원과 사랑에 빠진 중년 남자가 그 정원의 땅 위에 우스꽝스럽게 엎드린 모습이 그 작가의 형의 삽화로 직접 재현된다.


세계적인 작가의 정원 가꾸기 분투기는 이 작가의 책을 더 읽어보고 싶게 만드는 최고의 홍보문이다. 










▶기타



전설적인 시나리오 작법서. 영화 제작자나 작가가 되려는 사람들의 교본처럼 칭송되는 책이지만 그런 것과 전혀 무관한 그 누구에게도 권하고 싶을 정도로 좋은 책이다. 인간의 본성과 삶에 대한 이야기가 그 어떤 철학자나 소설가보다 흥미롭고 깊이있게 얘기되는 책이다. 심지어 인간 관계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심리학이나 처세술이 아니라 이 책에서 의외의 출구를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야기의 원형을 이야기하며 인간에 대하여 이야기할 수밖에.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서 그들의 그림책에 대한 이야기뿐 아니라 부모로서 아이를 키우는 자세에 대한 금과옥조 같은 조언들을 들을 수 있었다. 자신을 오늘날의 작가로 성장시킨 유년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들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로서 가장 가치를 두어야 할 부분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가능하게 한다. 








2022년에는 더 행복해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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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집 2021-12-28 19:4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more and more 행복해지시길~

blanca 2021-12-29 07:40   좋아요 0 | URL
덕담 감사합니다. 기억의집님도 점점 더 행복해지기를...

stella.K 2021-12-28 19:5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년엔 더 행복해질 거예요.^^

blanca 2021-12-29 07:40   좋아요 1 | URL
스텔라님도 같이 행복해져요. 감사해요.

psyche 2021-12-29 10: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옛날옛날에 읽은 죄와 벌을 빼고 읽은 책이 하나도 없네요. ㅜㅜ blanca님 더 행복한 2022년 되시길!

blanca 2021-12-29 16:28   좋아요 0 | URL
프쉬케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항상 건강하시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