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어나더커버) - 10인의 작가가 말하는 그림책의 힘
최혜진 지음, 신창용 사진 / 은행나무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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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이 어릴 때 감정 동화책을 읽어주다 정작 내가 울어버린 적이 있다. 슬픔을 상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조곤조곤 속삭이는 듯한 책에서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어도 되고 그 사람 이야기를 하고 싶을 때 마음껏 해도 괜찮다는 처방이 실린 책에서 나는 늦은 치유를 경험했다. 그때는 절대 그 사람을 떠올려서도 눈물을 흘려서도 안 된다고 했었다. 어쩌면 가장 중요한 것은 세월과 성장으로 체득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이미 내재되어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렵고 고차원적인 이야기 속에 해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는 프랑스에 거주하는 유명한 그림책 작가들을 인터뷰한 책이다. 이렇게 설명하면 이 책은 그렇고 그런 책으로 축소될지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기대 이상으로 거대하고 심원한 내용을 담고 있다. 저자 최혜진은 작가들의 성장을 묻는다. 그 성장은 결국 그들의 삶의 이야기로 그것은 다시 그들의 창작으로 뻗어 나가며 한 사람의 삶의 지도를 만든다. 제대로 된 질문과 그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변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나타난 창작자들의 교감의 향연은 놀랍다. 여느 철학서 못지 않게 그것은 진지한 삶 속의 내밀한 질문들과 탐구, 그에 대한 천착을 담고 있다. 그래서 그림책에 전혀 관심이 없는 그 누구라도 이 인터뷰 내용들에게서 무언가를 얻어 갈 수밖에 없다. 


"시도해보고, 감탄하고 실패하고, 수정하고, 배우고, 다시 해보면서 변화하는 존재가 사람입니다.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는 속담은 거짓말이에요. 그 말 좀 믿지 마세요. 아이에게든 어른에게든 산다는 건 예측 불가능한 난관을 통과하는 과정이고, 우리는 언제든 그 과정에서 배우고 수정하고 진화할 수 있습니다."

-클로드 퐁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프랑스의 국민 그림책 작가 클로드 퐁티는 대단히 불행한 유년 시절을 겪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는 그 유년에 함몰되는 대신 그것을 딛고 자신이 잃어버린 유년의 꿈들과 자유를 아이들에게 선물한다. 인간의 회복 탄력성의 산 증인이 바로 그다. 슬프고 외로웠던 유년을 통과한 사람이 그려내는 아름다운 동화들이 눈부시다. 인간이 대단한 점은 바로 그런 것이 아닐까. 우리는 절망 속에 고꾸라지는 사람도 목격하지만 그곳에서 뚜벅뚜벅 걸어나와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들을 때로 목격한다.


부모로서 아이를 양육하는 일에 대한 솔직한 고백은 그 어떤 육아서보다 실질적인 조언이 된다. 작가 키티 크라우더의 "우선은 엄마 이전에 자기만의 삶을 가진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 아이를 삶의 중심에 놓고 이 사회가 제시한 경쟁 사회의 규격에 맞게 아이를 통제하고 채근하는 우리나라의 현 교육 과정에서의 학부모로서의 삶과는 다른 이야기다. 엄마가 엄마 본위의 삶을 살 때 우리는 모성을 의심하도록 키워졌다. 우리는 우리가 열망했던 자본주의의 위계의 사다리 위로 아이를 올려놓는 것이 가장 잘 성취된 양육과 교육의 최종 도착지인냥 간주해 왔다. 작가들의 이야기는 이러한 우리의 열망과 대치된다. 아이들이 스스로 느끼고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며 배워나가도록 한 걸음 떨어져 지켜본다는 그들의 이야기는 그래서 생경하게 들리지만 그런 여건과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부러웠다. 


바람직한 부모 자녀 관계는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같아야 합니다. 지하수로 연결되어 소통은 하지만 서로의 생태계를 존중하는 관계여야 하죠. 

-클로드 퐁티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모든 인간 관계에 해당되는 이야기일 것 같다.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기억하고 싶은 문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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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니데이 2021-10-08 18: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달의 당선작 축하합니다.

blanca 2021-10-08 19:44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즐거운 주말 되시기를 바라요.

새파랑 2021-10-08 18:2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blanca님 축하드려요 ^^

blanca 2021-10-08 19:44   좋아요 2 | URL
잊지 않고 축하해 주셔서 감사해요.

프레이야 2021-10-12 19:5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각자의 생태계를 가진 두 개의 호수.
블랑카 님 리뷰만큼이나 좋은 비유라고 생각이 되네요.
분홍공주는 많이 컸겠어요. ^^

blanca 2021-10-13 07:57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이제 그 무서운 중2랍니다. 세월이 정말 빠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