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할아버지의 통나무집에 소녀는 잡지책 낱장을 벽에 이어 붙였다. 단 순서대로가 아니어서 할아버지가 스토리를 이어 이해하려면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거나 다음 날에 발견한 그 다음 장을 이어붙여 수정해서 받아들여야 했다. 루시아 벌린의 의도였다. 그녀의 첫 문학 수업은 이토록 창의적이고 사랑스러웠다. 이 대목이 너무 좋아 몇 번이나 다시 읽었다. 아버지와 함께 방문하고곤 했던 숲 속 외딴 오두막의 고독한 노인을 위한 소녀의 재기 어린 시도가 너무 귀엽고 참신했다. 





분홍색 슬립을 입고 침대에 드러누워 추리소설을 읽는 엄마를 뒀던 루시아 벌린은 그 후로 다사다난한 삶을 살게 된다. 여러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고 그 사이에 아들 넷을 둔 싱글맘이 되어 먹고 살기 위하여 온갖 일을 전전해야 했다. <웰컴 홈>은 이러한 삶을 스스로 기록한 부분과 그녀를 찍은 사진들, 그리고 그녀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그녀 자신이 주로 끊임없이 이동했던 장소를 전면으로 내세우며 회고하는 자신의 삶의 이야기는 문장들, 사건들의 얼개가 마치 미완성된 아름다운 소설처럼 흥미롭다. 하지만 그녀의 때이른 죽음으로 그녀의 복기된 삶은 마침표를 잃는다. 갑자기 뚝 끊기는 마지막이 그래서 참 아쉽다. 남편의 친구와 아이들을 데리고 사랑의 도피 행각을 하고 멕시코에서 원주민들과 자연과 어우러지는 삶을 사는 등 삶의 서사의 폭이 크다. 


사진 속 그녀의 모습은 참 아름답다. 그녀의 미모는 그녀의 작품을 출판하는 데 오히려 독으로 작용한다. 성추행과 성희롱으로 얼룩진 소위 출판계 인사들의 행태에 그녀는 역겨움을 느낀다. 알코올 중독자였던 어머니조차 딸을 제대로 평가해주지 않는다. 가족과 주변인들, 생활고가 끼어들어 글쓰기는 간헐적으로만 지속된다. 그럼에도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네 아들들은 엄마의 곁에 남아 엄마의 글의 독자가 된다. 이 책도 그런 아들의 손에서 나온다. 어머니의 글을 읽고 어머니의 글을 정리하고 그녀의 임종을 지켰던 아들. 이것이 그녀의 비극적 삶의 위안이다. 


그녀가 편지에 인용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에서 나온 문구.


"집은 내가 달리 갈 곳이 없을때 나를 받아줘야 하는 곳이다."


이 책의 테마가 되었다. 떠돌아다녔던 그녀가 결국 가장 돌아가고 싶어했던 그곳은 바로 '집'이다. 때로 자신을 자학하고 자신의 글을 폄하했던 시간은 그녀의 사후 남긴 작품들이 센세이션을 일으키며 쓸려나간다. 그녀가 알지 못했던 자신의 영광이 아이러니하다. 그녀가 그 틈새에서 만들어낸 이야기들을 읽을 시간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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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20-09-14 12: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쾅 쾅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집이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이냐, 와 비슷한 문장을 어느 책에서 읽은 게 생각나네요.

blanca 2020-09-15 08:19   좋아요 1 | URL
아, 그렇네요. ˝쾅 쾅 문을 두드릴 수 있는 집˝ 상상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네요.

scott 2020-09-17 21: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성회롱과 성추행이 자행되었던 출판계라니,,,
루시아벌린 작품들은 막연히 카슨 매컬러스와 분위기가 비슷하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었는데 죽기전 마지막 까지 글쓰기를 포기 하지 않았다는건 독자들에게 결국 살아간다는것이 어떤의미 일까?라는 질문을 던지는것 같네요.

blanca 2020-09-18 08:14   좋아요 1 | URL
자신의 어린 시절을 연대기적으로 묘사한 글이 마치 성장소설 같아요. 갑자기 죽음을 앞두고 회상이 딱 끊겨 아쉬웠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