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밤 다시 맨덜리로 가는 꿈을 꾸었다."로 시작하는 <레베카>는 놀라운 작품이다. 동명의 뮤지컬로 유명한 대프니 듀 모리에의 서스펜스 소설은 섣불리 장르작품이라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문학적 완성도가 높다. 특히나 이야기의 배경인 영국의 대저택 '맨덜리'의 묘사는 당장 눈앞에 아름답고 비밀스러운 경관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촘촘하고 생생하다. 인간의 내밀한 욕망, 복잡다단한 중층적 심리, 각자의 필요가 상충할 때 빚어지는 우연한 사건들의 파고에 대한 정묘한 표현들은 서사의 상상력의 진폭과 언어의 표현력이 맞춤하게 결합할 때의 최상의 지점을 나타내어준다. 한 마디로 경이로운 작품이다.
속물에 교양 없는 귀부인의 수행원으로 심부름꾼 역할을 하던 소녀가 영지의 화려한 대저택의 소유주인 맥시밀리언 드윈터를 우연히 휴양지의 호텔에서 만나 드윈터 부인이 되는 이야기는 언뜻 진부한 신데렐라 스토리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레베카>는 오히려 그것의 대척점에 있는 이야기다. 그녀를 맞이한 '맨덜리'에는 이미 죽었지만 그 존재감을 하인들조차 떨쳐내지 못하는 전처 '레베카'의 환영이 떠돌고 있다. 모두가 그녀를 추억하고 추앙하고 그녀의 취향들을 고수하며 '나'를 은근히 소외시킨다. 심지어 남편 맥시밀리언조차 그러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곁을 주지 않는 사람들, 무언가 나는 공유할 수 없는 레베카와의 순간들에 대한 집착은 그녀의 죽음을 둘러싼 비밀을 둘러싸며 점차 그 민낯을 드러내게 된다.
레베카에 대한 환상이 벗겨지는 과정은 '나'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미덕은 여기에서 비롯된다. 단지 이야기의 서스펜스와 흡인력에 몰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인물들이 어떤 내면적 갈등을 겪고 그것을 해결하고 나름의 방법으로 삶에서 성장을 이루어내는지에 대한 사려깊은 통찰은 <레베카>가 다양한 층위에서 해석되고 읽힐 수 있는 여지를 확장한다. 소극적이고 소심하던 나는 당차고 야무진 어른으로 나아간다. 핑크빛 환상에만 매달리지 않고 냉엄한 현실에도 두눈을 똑바로 뜨고 나아갈 수 있는 삶의 기본 자세를 배워나간다.
나는 고통을 겪은 인간이 더 강하고 좋아진다고, 그리하여 세상에서 살아남으려면 불의 시련을 이겨내야 한다고 믿는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우리는 바로 그 불의 시련을 최대한 겪어낸 셈이었다. 우리는 공포와 고독, 그리고 대단히 큰 좌절을 알게 되었다. 모든 사람은 살면서 고난의 순간을 맞게 된다. 자기를 괴롭히는 악마를 만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맞서 싸워야 한다.
-대프니 듀 모리에 <레베카> 중
'불의 시련'을 통과하는 소녀의 시선은 독자와 함께한다. 그 누구나 그녀의 우유부단함과 공포와 두려움에 동참하여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레베카를 상대로 한판 승을 벌이는 느낌이다. 그 '불의 시련'은 우리가 살며 겪는 위기와 고난의 시간들을 소환한다. 내가 내 자신을 믿지 못하고, 상대의 저의를 의심하게 되고, 내일을 두려워하게 되는 시간들. 그것을 통과하고 남는 평온한 내일들. 그 틈에서 결국 잃어버리고 포기해야 하는 것들에 대한 아련한 그리움의 시간들. 그리고 그것을 다시 기억해 내는 일. <레베카>를 읽는 일은 그러한 시간들을 다시 사는 듯한 느낌을 준다.
대프니 듀 모리에의 "우리는 두 번 다시 돌아갈 수 없을 것이다."라는 말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순진하고 어리석었던 그래서 막무가내로 믿고 두려워하고 부서졌던 시간들을 여전히 그리워한다. 이 역설이 성장기를 관통하여 마침내 오늘날의 우리를 만들어낸다. 그러고보면 '레베카'의 환영은 우리 모두에게 나타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