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마스 이브에는 교보문고, 크리스마스에는 영풍문고에 갔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모양인지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크리스마스를 보내기 위해 평소에는 자주 오지 않던 서점 방문을 결심한 것인지 사람들로 인산인해였고 무언가 조용히 책을 고르거나 서점 특유의 착 가라앉은 하지만 너무 무겁지 않은 그 느낌은 절대 가질 수 없을 정도로 거의 호떡집 불난 수준의 분위기였다. 제대로 책을 보려면 아주 오래 전에 나왔거나 인기가 없는 책들이 모여 있는 서가를 공략해야 할 정도였다. 그런데 의외의 수확은 거의 재고가 없는 메리 올리버의 <휘바람 부는 사람>과 원서로 한번 읽어보려다 미루어 둔 토마스 린치의 <죽음을 묻는 자, 삶을 묻다>가 비슷한 곳에 꽂혀 있었다는 것. 

















김연수로 알게 된 시인 메리 올리버는 산문집도 시 못지 않게 좋다. 문장 하나 하나가 시인의 그것이니 만큼 참 농밀하고 덜할 것도 더할 것도 없다. 토마스 린치는 시인이자 장의사란다. 죽음을 보필하는 시인이 하는 얘기가 궁금하다. 


문학동네 북클럽에서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인 <최단경로>를 보내주었다. 궁금하다. 이력을 보니 나이가 내 막내 동생과 동갑이다. 지하철 안 책을 보는 사람은 거의 본 적이 없다. 크리스마스 서점의 폭발적인 인기를 보면 재미있는 현상이다. 좋은 이야기는 여전히 귀 기울여 들을 사람이 있다고 믿는다. 책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는다. 점점 이북이 싫어지는 것을 보면 더욱 그렇고. 아. 난 종이책이 여전히 좋아 큰일이다. 
















올 한 해를 마무리하는 책은 이 정도가 될 것 같다. 하루키의 신간은, 생각보다 실물이 너무 얇아 솔직히 내키지 않는다. 마음 같아서는 진지한 노년의 에세이를 한 삼백 페이지 이상되는 분량으로 내주었으면 좋겠다. 그가 몸에 대해 했던 이야기들을 나이가 들수록 공감하게 된다. 정말 잘 갈고 닦으며 관리해야 이 생의 과업을 완수할 수 있을 텐데. 쉽지 않다. 아무리 철학과 영혼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는 일은 반드시 몸을 담보로 전제로 한다. 그건 정말 완강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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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19-12-26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메리 올리버는 저도 김연수의 소설 서문에서 알게 되어 좋아하게 되었어요. 그녀는 올해 1월 저세상으로 가기 전, 산문이 어찌 좋은지요. 맑고 밝은 영혼의 소유자였어요. 저 책을 크리스마스 시즌 서점에서 발견하다니 완전 인연인 거죠. 왠지 럭키 예감 블랑카 님.

blanca 2019-12-27 09:26   좋아요 0 | URL
저도 너무 좋았어요. 정말 시인 같다고나 할까요. 이 책 검색해 보니 세상에 제가 외출 나온 근처 영풍문고에 한 권 재고라고 뜨는 거예요. 찾아보니 정말 딱 꽂혀 있었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moonnight 2019-12-27 0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블랑카님과 프레이야님이 함께 좋아하시는 책 저도 보관함에 담습니다. 올해의 마무리 책이군요. 어느새ㅜㅜ 하루키가 좀 두꺼운 분량의 진지한 노년에 관한 에세이를 내 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씀에 격한 공감을. 제발♡

blanca 2019-12-27 09:29   좋아요 0 | URL
하루키. 저는 그의 용감한 역사관도 좋아요. 한국에 몰래 몇 번 왔었다는 소문을... 쿨럭쿨럭. 그 독자들 만나는 자리를 하루키가 크게 좋아하지 않는다고. 저는 정말 신간 내면서 온다고만 한다면 달려갈 용의가 되어 있는데 말이에요. 올리버 색스, 필립 로스를 두고 그런 꿈을 꿨었는데 두 분 다 한국땅도 밟지 못하고 가셨잖아요. 좋아하는 작가 실물을 보고 사인도 받고 좀 그러고 싶은데...이제 노년에 관한 글을 쓸 때가 되지 않았을까 기대만 가져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