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와 낭비가 허용되지 않는 나이듦은 참 피곤하고 서글프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낮잠을 좀 자도 낭비를 좀 해도 시간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여 괜찮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의 지평선이 보이기 때문에 심히 죄책감이 든다는 것. 스무 살의 하루는 길고 또 길어 하루 종일 자고 종일 친구를 만나 아무 의미 없는 동어반복적인 수다를 떨어도 다 용서가 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도 소비도 시간도 모두 딱딱한 경계로 나뉘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편짜기가 있고 따라서 가치 평가가 항상 따라온다는 것. 너무 피곤하다. 낭비하고 싶지 않고 무의미하고 싶지 않다는 그 달성할 수 없는 목표 안에서 일상의 따뜻한 평안함은 멀다. 갑자기 김연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물가물하지만 청춘의 특권이 시간이라는 말. 종일 책을 읽고 쓰고 또 써도 무한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에 관련한 단상이었던 것 같다. 시인 김연수는 시를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그래도 시간은 또 남고 남았다지.
분명 스무 살의 시간과 마흔 살의 시간의 양적 실체는 다를 바 없을 텐데 이렇게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참 선뜩하다. 김연수가 사십 대가 가지는 무게에 관련해 했던 이야기도 다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오십 대는 어떤 건지 슬슬 쓰기 시작할 때가 됐는데 왜 신간 소식은 없는 것인지... 예습할 수 있게 반드시 먼저 살아보고 얘기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나는 귀가 얇고 삶은 닮기 마련이기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