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여와 낭비가 허용되지 않는 나이듦은 참 피곤하고 서글프다. 이를테면 이런 거다. 예전에는 낮잠을 좀 자도 낭비를 좀 해도 시간이 무한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보여 괜찮다,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시간의 지평선이 보이기 때문에 심히 죄책감이 든다는 것. 스무 살의 하루는 길고 또 길어 하루 종일 자고 종일 친구를 만나 아무 의미 없는 동어반복적인 수다를 떨어도 다 용서가 되는 느낌이었다면 이제는 사람도 소비도 시간도 모두 딱딱한 경계로 나뉘어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편짜기가 있고 따라서 가치 평가가 항상 따라온다는 것. 너무 피곤하다. 낭비하고 싶지 않고 무의미하고 싶지 않다는 그 달성할 수 없는 목표 안에서 일상의 따뜻한 평안함은 멀다. 갑자기 김연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가물가물하지만 청춘의 특권이 시간이라는 말. 종일 책을 읽고 쓰고 또 써도 무한하게 남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던 시간에 관련한 단상이었던 것 같다. 시인 김연수는 시를 쓰고 또 쓰고 또 썼다. 그래도 시간은 또 남고 남았다지.















분명 스무 살의 시간과 마흔 살의 시간의 양적 실체는 다를 바 없을 텐데 이렇게나 질감이 다르게 느껴진다는 게 참 선뜩하다. 김연수가 사십 대가 가지는 무게에 관련해 했던 이야기도 다 맞아 떨어진다. 그렇다면 이제 오십 대는 어떤 건지 슬슬 쓰기 시작할 때가 됐는데 왜 신간 소식은 없는 것인지... 예습할 수 있게 반드시 먼저 살아보고 얘기해 주시기를 부탁한다. 나는 귀가 얇고 삶은 닮기 마련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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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8-05-04 09: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친구 중에 김연수 선생님도 이름과 얼굴을 다 아는 김연수 빠가 있습니다. 김연수 선생님 일본 일정에 맞춰서 일본 놀러가는 무시무시한 친구인데요.

한참 작품이 안 나온다고 탈덕을 입에 올리고 있습니다. 그 친구야 안 그럴 거 뻔히 알지만, 어쨌든 팬들의 공분(?)이 하늘을 찌르고 있네요...

blanca 2018-05-04 09:10   좋아요 1 | URL
맞아요. 제가 분명 신부와 관련한 역사 소설 집필 중이라는 말을 몇 년 전에 들었는데 소식이 없네요. 친구분 대단하시네요. 다시 돌아오셔야 할 텐데요. ^^

프레이야 2018-05-04 17: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몇 달 전 김연수 강의를 들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이야기의 내용도 태도도요. 백석 관련한 소설도 구상 중이라고 하던데요.
달라진 시간의 질감, 실감해요 ^^

blanca 2018-05-05 03:55   좋아요 0 | URL
프레이야님! 아, 저는 실제 강연을 들어보거나 작가를 만난 적은 없어 부럽습니다. 생각보다 더 매력적이라니... 백석 관련된 이야기를 김연수의 문장으로 읽는 맛도 색다르겠네요.

페크pek0501 2018-05-05 11:3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작가, 라는 직업을 갖고 싶은 사람들에겐 좋은 것이 선배 작가들이 자신이 밟아 온 길에 대해 쓴 책이 있다는 거래요.
그래서 참고할 수 있다는 거예요.
다른 직업은 그런 책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죠.

blanca 2018-05-06 23:42   좋아요 0 | URL
아, 정말 그렇네요. 언어로 무언가를 기록하고 전수할 수 있다는 건 공력이 드는 만큼 그 점에서는 또 의미 있는 일인 것 같아요.

transient-guest 2018-05-19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상하게 김연수작가는 그 명성에도 불구하고 저에겐 잘 다가와주지 않네요. 뭔가 저하고 안 맞는건지..-_-: 제가 나이를 느끼는 건 다른 요소도 많지만 술마실 때입니다. 20대 초반엔 무한대로 들어갔는데 이젠 딱 정량이 있어서 거기서 끝나네요. 마신 다음 날 회복도 오래 걸리구요...-_-

blanca 2018-05-19 02:05   좋아요 1 | URL
호불호가 갈리지요. 저도 김연수 작가의 어떤 책은 좋고 어떤 책은 좀 안 맞고 그렇더라고요. 술은... 그렇죠. 이십 대에는 아무리 마셔도 다음날 일어나면 술냄새만 났던 기억이 나네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