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처음으로 유명 피아니스트의 리사이틀을 보러 가게 됐다. 클래식 공연 관람이 처음이라 며칠 전부터 긴장됐다. 겨울이 채 안 끝난 시점이라 감기에 걸려 공연 중 기침이라도 나올까 봐 이만저만 신경 쓰이는 게 아니었다. 패딩 부스럭거리는 소리도 내면 안된다, 갑자기 재채기가 나와도 안된다, 는 등 내가 조심해야 할 규율들은 점점 더 자가증식했다. 그냥 편안히 앉아 음악 감상을 하는 것만이 클래식 관람의 전부가 아님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날 실제 공연장에 가보니 피아니스트 자리와 생각보다 더 가까워 심지어 침 삼키는 소리까지 신경 쓰일 정도였다. 아, 그러나 사고는 엉뚱한 곳에서 터졌다.


연주자의 연주 사이의 그 잠깐의 정적을 깨고 뭔가 엄청난 것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났다. 정작 나를 놀라게 한 건 그 소음이 아니었다. 그 소리와 함께 동시에 앞자리 사람들이 약속이나 한듯 다 같이 그 소리의 진원지를 향해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비난과 분노의 눈길을 보낸 것이다. 정말, 다 한 마음으로 그 무언가를 떨어뜨린 사람을 향해 성토하고 있었다. 관크가 되는 일은 생각보다 더 끔찍한 대가를 치뤄야 하는 일이었다. 






에이모 토울스의 단편집 <테이블 포 투>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 중 하나인 '밀주인'에 이러한 관크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전투 같은 어린 아이 육아의 터널을 통과한 토미 부부는 드디어 카네기홀에서 키신 같은 거장들의 연주를 들을 수 있는 귀한 시간을 얻게 된다. 당연히 우아하고 편안하게 그 시간을 음미하고 향유하기를 바랐던 남편 토미는 역시나 그 시간을 산산조각 내고 마는 노인 관크를 하필 옆자리에서 만나게 된다. 놀랍게도 그는 관크 중에서도 가장 지탄 받는 최악의 행동을 하고 있었으니, 바로 연주자의 연주를 몰래 녹음하고 있었던 거다. 숫자의 정확성을 사랑하는 금융인이었던 토미는 도저히 그 행동을 묵과할 수 없다. 아내의 눈으로 본 남편 토미의 분노는 아무래도 좀 선을 넘은 감이 있다. 토미는 망설이지 않고 그를 공연장측과 경찰에 고자질한다. 


노인에게는 언제나 그렇듯 눈물 없이는 차마 듣기 힘든 이 연주를 녹음할 수밖에 없는 파란만장한 사연이 따라온다. 그 사연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토미에게 좀 너무하다,는 시선을 보낸다. 자책감이 든  토미는 공연 중간에 도망치듯 사라진 그 노인을 직접 찾아 나선다. 토미가 마침내 대면하게 되는 그 불편한 진실은 토미의 남은 인생에 클래식 공연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에 하나의 트라우마를 남기고 만다. 


클래식 공연의 묘미를 정작 맛보고 알게 된 사람은 이 모든 일들의 전면에 나섰던 토미가 아니라 화자인 아내라는 아이러니는 작가 에이모 토울스가 인생을 이야기하며 항상 등장시키는 반전의 묘미다. 


비행기 연착으로 인연을 맺게 된 너무나 매력적인 낯선 한 남자의 인생에 의도치 않게 개입하게 됨으로써 그 매력 뒤의 취약점을 알게 된 주인공의 기억에 남은 사람이 바로 그 남자가 아니라 그 남자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아내의 끈기과 사랑이라는 결론이 감동적인 <아스타 루에고>처럼.


그날의 공연에서 공공의 적이 됐던 그 사람은 사실 졸다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린 것이 아닐까 하는 어떤 사람의 추측 글을 내가 온라인에서 보게 된 것처럼. 


언제나 일어난 일의 민낯은 생의 아이러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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