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퉁이 (안도현)

모퉁이가 없다면
그리운 게 뭐가 있겠어
비행기 활주로, 고속도로, 그리고 모든 막대기들과
모퉁이 없는 남자들만 있다면
뭐가 그립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계집애들의 고무줄 끊고 숨을 일도 없었겠지
빨간 사과처럼 팔딱이는 심장을 쓸어내릴 일도 없었을 테고
하교 길에 그 계집애네 집을 힐끔거리며 바라볼 일도 없었겠지

인생이 운동장처럼 막막했을 거야

모퉁이가 없다면,
자전거 핸들을 어떻게 멋지게 꺾었겠어
너하고 어떻게 담벼락에서 키스를 할 수 있었겠어
예비군 훈련 가서 어떻게 맘대로 오줌을 내갈겼겠어
먼 훈날, 내가 너를 배반해볼 꿈을 꾸기나 하겠어
모퉁이가 없다면 말이야

골목이 아냐 그리움이 모퉁이를 만든 거야
남자가 아냐 여자들이 모퉁이를 만든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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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크냄새 2005-07-24 19: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골목길이라는 노래가 생각나네요.
시인들의 시각은 참 근사해요. 모퉁이에서 저런 모습을 찾아내는것 보라지요.^^

검둥개 2005-07-24 2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잉크냄새님 이하동문입니다 ^^
시인들 눈에는 특별한 것들이 보이는 거 같아요.
 

내 청춘의 영원한 (최승자)

 

이것이 아닌 다른 것을 갖고 싶다

여기가 아닌 다른 곳으로 가고 싶다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내 청춘의 영원한 트라이앵글

-------------------------------------------

이 시를 읽으면서 떠오른 트라이앵글은 이런 것.

괴로움, 외로움, 그리움, 삼면으로 막힌 텐트같은 것.

목을 조르는 영원한 불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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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 2005-07-23 17: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삼각텐트(인디언 텐트라고 하죠) 안에 들어가 여유롭게 뒹굴거리고 싶어요. 그리고 이 시와 함께 항상떠오르는 시가 또 있죠. '사랑한다고 말할 때 열 손가락에 걸리는 존재의 쓸쓸함'

검둥개 2005-07-24 03: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노드랍님도 최승자 시인을 좋아하시나봐요 :)
"사랑하는 손"이죠 그 시?
아래 보시면 제가 올린 걸 볼 수 있으실 거에요 ~~ ^^*
 

쥐가 꼬리로 계단을 끌고 갑니다. 쥐가 꼬리로 병 속에

든 들기름을 빨아먹습니다. 쥐가 꼬리로 유격 훈련처럼

전깃줄에 매달려 허공을 횡단합니다. 쥐가 꼬리의 탄력

으로 점프하여 선반에 뛰어오릅니다. 쥐가 꼬리로 해안

가 조개에 물려 아픔을 끌고 산에 올라가 조갯살을 먹

습니다. 쥐가 물동이에 빠져 수영할 힘이 떨어지면 꼬

리로 바닥을 짚고 견딥니다. 삼십 분 육십 분 구십 분 -

쥐독합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월급으로 살아가는 삶

은 눈동자가 산초열매처럼 까맣고 슬프게 빛납니다.

 

 

함민복 - 뭐 이런 사람이 다 있노.

불편시러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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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둥개 2005-07-21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 서재에서 이 시를 읽고 저는 이 시랑 최승자의 "악순환"이랑 너무 햇갈렸다는... 쥐가 나오는 바람에. :) 그래서 "악순환" 이랑 같이 올리려고 퍼왔습니다. ^^*
 

악순환 (최승자)


근본적으로 세계는 나에겐 공포였다.

나는 독 안에 든 쥐였고,

독 안에 든 쥐라고 생각하는 쥐였고,

그래서 그 공포가 나를 잡아먹기 전에

지레 질려 먼저 앙앙대고 위협하는 쥐였다.

어쩌면 그 때문에 세계가 나를

잡아먹지 않을는지도 모른다는 기대에서......

 

오 한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문 쥐의 꼬리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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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5-07-21 1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시엔 무진장 약합니다. 어제 그 시도 얼떨결에 올렸다는^^;;;
최승자 시인의 시는 좀 겁나는군요.

돌바람 2005-07-21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저 시인은 제 우상이었다죠. 불문과를 당연히 가야하는 건 줄 알았죠. 최승자선생 땜시. 물론 틀어졌지만 몇 년 뒤 옆방에서 수업하시는 선생의 목소리에 온몸이 곤두서던 기억이 짜안하네요.^^

검둥개 2005-07-21 11: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별사탕님, 시에 약하다는 ㅎㅎ 그에 대해서는 저도 이하동문~~ ^^* 겁이 많아서 아예 첨부터 손톱을 세우고 과잉방어로 나가는 이 시인의 시들이 저는 좋더라구요.

와 시인의 목소리는 어떨지 궁금해요. 돌바람님 상당히 부럽군요... ^^ 저도 김윤식 선생을 한 번 우연히 본 적이 있었는데, 저 선생님이 젊었을 적에 전혜린을 좋아했다며~~, 이런 유치찬란한 생각밖에 안 했다는... (부끄 ^^;;;)

릴케 현상 2005-07-21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승자씨 요즘 뭐하시나

물만두 2005-07-21 11: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때 저도 무지 좋아했죠. 무죄추정을 이 양반이 번역했단 이유로 더 좋았으니까요...

검둥개 2005-07-22 11: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쎄 뭐하시는지 산책님이 좀 갈쳐 주세요 ^^

아 그랬군요, 만두님, 그건 몰랐더랬어요 ^^
 

마음이 세상을 꽃피운다 (김광렬)


나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네가 끝없이 미워졌다
나를 사랑하기 시작하자
네가 한없이 사랑스러워졌다
너를 미워하기 시작하자
내 마음에 가시가 돋아났다
너를 사랑하기 시작하자
내 마음에 꽃이 피어났다
가시에 찔려 너는 허덕인다
꽃이 너를 아름답게 물들인다
내 마음은 늘 이렇게
끝과 끝을 오고간다
늘 나를 사랑하는 마음을
늘 너를 사랑하는 마음을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인가
내가 나를 사랑하자
세상이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다.




돼지감자꽃 (일명 뚱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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