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중국집 (안도현)
지나가다 허기를 자장면 냄새한테 그대로 들켜버린 건
시골 중국집 앞에서였다 우리 일행은 목단인 듯 작약인
듯 사방연속 꽃무늬 벽지로 도배한 내실로 들어갔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주인은 혼자서 오차도 따
르고 주문도 받고 단무지도 양파도 내왔는데, 그릇에 그
득히 담겨온 뜨끈한 자장면을 허겁지겁 먹다가 나는 어
쩌다가 자개장롱 위에 일렬횡대로 도열해 있는 술병들을
보게 되었다
인삼주 다래주 더덕주에다 그 밖에 이름도 모를 열매
로 담근 술이 예닐곱 술병마다 가득하였는데, 그 우러날
대로 우러난 슬픔 같은 게 발그스레할 대로 발그스레해
진 것을 보면서 나는 문득 싸하게 목이 메어왔는데,
그 까닭은 장롱 맞은편 벽에 넥타이를 매고 벌써 다른
데로 가기에는 누가 봐도 좀 이르다 싶게 안쓰러운 중년
남자의 흑백 영정 사진 하나가 삐뚜름히 유리 액자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 술을 좋아했던 것일까 생전에도 저렇게 천연
덕스런 목숨의 빛깔이 우러나온 담근 술을 물끄러미 바
라보는 일을 사랑했던 것일까 밀가루 반죽을 탕탕 치고
면발을 흔들다가 그 남자 어느날 어떻게 미련 없이 등을
보인 것일까 그 남자 생각이 툭툭 입가에서 이어지다 끊
어지다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혼자된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꾸만 담근 술을
권하던 날들은 서러웠다 나는 한번도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주지 못하였고, 거 참 술이 다네 한잔만 더 해야지,
흐뭇하게 잔을 내밀지 못하였고, 모로 누워 자는 척하며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