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 중국집 (안도현)


지나가다 허기를 자장면 냄새한테 그대로 들켜버린 건

시골 중국집 앞에서였다 우리 일행은 목단인 듯 작약인

듯 사방연속 꽃무늬 벽지로 도배한 내실로 들어갔다


40대 후반쯤 되어 보이는 여주인은 혼자서 오차도 따

르고 주문도 받고 단무지도 양파도 내왔는데, 그릇에 그

득히 담겨온 뜨끈한 자장면을 허겁지겁 먹다가 나는 어

쩌다가 자개장롱 위에 일렬횡대로 도열해 있는 술병들을

보게 되었다


인삼주 다래주 더덕주에다 그 밖에 이름도 모를 열매

로 담근 술이 예닐곱 술병마다 가득하였는데, 그 우러날

대로 우러난 슬픔 같은 게 발그스레할 대로 발그스레해

진 것을 보면서 나는 문득 싸하게 목이 메어왔는데,


그 까닭은 장롱 맞은편 벽에 넥타이를 매고 벌써 다른

데로 가기에는 누가 봐도 좀 이르다 싶게 안쓰러운 중년

남자의 흑백 영정 사진 하나가 삐뚜름히 유리 액자 속에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 술을 좋아했던 것일까 생전에도 저렇게 천연

덕스런 목숨의 빛깔이 우러나온 담근 술을 물끄러미 바

라보는 일을 사랑했던 것일까 밀가루 반죽을 탕탕 치고

면발을 흔들다가 그 남자 어느날 어떻게 미련 없이 등을

보인 것일까 그 남자 생각이 툭툭 입가에서 이어지다 끊

어지다 하는 것이었다


그랬다 혼자된 어머니가 아들에게 자꾸만 담근 술을

권하던 날들은 서러웠다 나는 한번도 어머니의 남편이

되어주지 못하였고, 거 참 술이 다네 한잔만 더 해야지,

흐뭇하게 잔을 내밀지 못하였고, 모로 누워 자는 척하며

귀찮은 듯 손사래를 치기만 하던 날들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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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드무비 2005-11-21 18: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에 선합니다.
중국집 실내 풍경.
남자 여자 구두가 나란히 한 켤레씩 있고 문이 닫겨 있어
좀 은밀해 보였던 방들......
그리고 숙제하다가 손님들에게 방을 내주고 어디론가 나가던 그집 아이들도
안쓰러웠죠.^^

검둥개 2005-11-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예전에 남도 여행할 때 우연히 지나가던 시골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은 적이 있어요. 주인이 그 자리에서 국수를 뽑아서 만들어줬는데 얼마나 맛있었던지! 그런데 국수를 또 뽑으려면 번거롭겠다는 생각에 차마 한 그릇을 더 시키지 못했더랍니다. 두고두고 그 때 한 그릇 더 못 먹지 않은 것이 안타까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