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작가 하이타니 겐지로의 강연회가 토요일에 세종문화회관에서 있었다.  금요일에도 학교 엄마들과 새벽두시까지 놀고(아예 10시 반에 아이들 다 재워놓고 만났으니), 토요일 아침 내내 자다가, 또 오후에 아이 셋을 남편에게 맡기고 나가려니 뒷통수가 좀 가렵기는 했다. 그래도 좋았다.

'미나상 곤니찌와'라고 밝게 웃으면서 시작한 강연은 두시간 내내 감동이었다. 통역을 통해서 들어야 해서 흐름이 조금씩 끊기기는 했지만, 그는 70이 넘은 나이에 건강이 별로 좋지 않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참 넘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무려 12페이지나 메모를 했는데, 그걸 다 쓰려니 어렵다. 정리는 후로 미루고, 몇 마디 인상적인 메모만 옮기려고 한다.

생명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는 것은 인류의 이상이다.

아무리 이윤추구가 선이 되어버린 시대지만, 그래도 사람의 생명을 담보로 돈을 벌면 안 된다.

아이들의 문화는 어른들이 보호해주고 지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이들이 잘 자란다.

요즘 아이들이 물질적으로 풍요롭지만 행복하지는 않다는 것을 직시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능력을 신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즉 어느 아이나 다 가능성이 있다. 이것은 점수로 판단할 수 없는 능력이다.

'나는 사람을 밀치고 경쟁해서 앞으로 나아가기 싫다. 특급열차가 싫다. 다소 늦게 가더라도 모든 과정을 아는 완행열차가 좋다. 늦게 가더라도 모든 것을 알고싶고, 나처럼 상대방의 의견도 알고 싶다.' - 한 아이가 완행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면서 느꼈던 점을 적은 글.

'선생님은 타인이다. 정말 아이들을 좋아해서 선생님을 하는지 돈을 벌기 위해 하는지 나는 그것이 가장 알고싶다' - 대안학교를 다니는 한 아이가 자신의 선생님에게 던진 쪽지

교사에는 두 종류가 있다. 마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사와 점수를 소중하게 생각하는 교사. 물론 아이를 점수로 평가하는 걸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 안에 사람의 마음이 없는 지도라면 아이들 속에 들어갈 수 없다.

여러분은 자신의 능력만으로 살아왔는가! 주위에서 보호하고 사랑해준 부모, 교사, 친구들 덕분으로 여기까지 오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도 누군가의 생명을 받쳐주어야 한다. 내 목숨이라고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 것은 안 된다.

생명과 마음은 동일하다. 마음은 생명만큼 중요한 것이다. 물질도 돈도 중요하지만 생명이 더 중요하고 마음이 더 중요한 것이다. 그렇게 소중한 마음을 나누어주어야 한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아이의 현재 행복을 포기해야 하는가!(한 언론과의 인터뷰중 했다는 말씀)

선생님들께 한마디 - 선생님으로서부다는 짧게라도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할 수 있는 교육을 해 주세요!

토막토막 한마디씩으로 어떻게 다른분들께 그 느낌을 전할 수 있을까만, 혹시 내가 잊어버릴까봐 메모만 해 둔다.

나는 학교의 아이들을, 내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점수로 대하는가, 마음으로 대하는가.

늘 눈에 보이는 곳에 적어두고 스스로를 되돌아봐야겠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4-05-25 12: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하이타니 겐지로의 책을 읽고 깊이 감명 받았는데....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 할 수 있는 교육...많은 것을 던지는 화두입니다.

2004-05-26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죄지은 아이에게 이유를 물을 수 있는 것이 어른의 애정이라는 말씀도 와닿았어요. 어른은 아이에게 어떤 존재인가..생각하게도 했구요. 학교 도서관에 계신가 봐요. 우리 학교 도서관은 이제 막 학교를 졸업한 젊은 분이라 아이들 얘기로 수다떨기가 안되는데..그 학굔 그게 가능할 것 같네요...반갑습니다. 아 그리구 우는 아이에게 다가가서 너 왜우니 라고 묻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뭐 이런 말, 당연한 말인데도 가슴에 새기게 되네요.

호랑녀 2004-05-26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학교도서관... 이거 계속 있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이것두 제 화둡니다.
강연회에 가서 저는 참 감동받았어요. 물론 돌아서면 또 잊어버리지만...
아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혹시 울면 왜 우는지 궁금해하는... 그게 정말 당연한데, 갈수록 어렵더군요. 욕심을 버려야겠죠?
 

* 3학년 아들이 선생님께 드린 선물

               (보여드리지 못해 아쉽습니다)

예쁜 색깔의 A4 용지 다섯장을 준비하더군요.

첫째장 : 미란 선생님은 인이시고 초처럼 아름다우십니다

                           김미란 선생님 사랑해요

                                                                                                   *** 올림

둘쨰장 : 선생님 얼굴을 예쁘게 그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였더군요.(앗, 실패! 선생님이 훨씬 더 예쁘셔요)

셋째장 : 내가 선생님이 좋은 다섯 가지 이유

               (뭐 정확히 생각은 안 나는데, 대충 예쁘고 사탕도 주시고 목소리도 크고... 뭐 그런 거였습니다)

넷째장 : 다시 삼행시(거의 우상화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이번엔 국어사전 찾아가면서 짓더군요)

               김 : 김종서 장군처럼 용감하시고, 김유신 장군처럼 씩씩하시고, 김춘추 왕처럼 훌륭하시고...

               미 : 미켈란젤로처럼 그림도 잘 그리시는 선생님

               란 : 난생처음이에요, 선생님처럼 예쁘신 분은!

다섯번째 장 : 하트모양 쿠폰 4장을 색종이로 붙였습니다.

                          네 장의 내용은, 5분동안 말 한 마디도 안하기, 선생님이 해달라는 건 뭐든지 해드리기(단,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한해서), 선생님 안마해드리기, 선생님 심부름하기

꽃을 사가는 건, 좀 낭비라는 생각이 들어서, 편지에 마음을 담아보라고 했더니, 아침에 지각까지 해가면서(제가 먼저 출근했기 때문에 이놈이 몇시에 갔는지 모릅니다) 만든 편지랍니다. 선생님께 드릴 쿠폰 중에 제일 자신 없는 건 5분 동안 말 안하기구요. ^^

기특해서, 꼬옥~ 안아줬습니다.

이에 반해서, 2학년짜리 딸내미는...

자기 반 아이들에게 색색의 색지를 미리 나누어주고 각각 삼행시나 동시, 편지 같은 걸 적어오게 했답니다(반장이냐구요? 아니요, 분단장이래요). 그래서 그걸 그냥 리본으로 묶어서 가볍게 끝내더만요. 제딸이 한 일은, 나눠주고 걷고, 자기것 한장 쓰고, 그리고 겉표지를 만든 게 전부였습니다.

그래도 선생님께서는 무지 감격스러우시겠다, 2학년 아이들이 스스로 생각해서 한 선물치고는 참 멋지다! 생각되더군요.

우리 아이들 학교는 내일, 스승의 날 쉽니다. 그냥 귀찮으니 스승의날 쉬는 모양입니다. 그런데 그럼 스승의날이 없어지나요? 14일이 스승의 날이 되었지요.

작년엔 이사온지 얼마 안 되어서 다른 엄마들이 어떻게들 하는지 잘 몰랐습니다. 올해 보니, 선생님 댁으로 꽃바구니와 케잌을 들고 찾아가고... 난리가 아니더군요.

각종 감사기관에서는 몰래 감사를 다니고, 현장을 잡고, 뒤지고...

1학년이라면 모르겠지만, 2학년 이상이면 아이들끼리 충분히 준비해서 나름대로 멋진 선물을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제 딸에게 한수 배웠지요.

그런데 왜 엄마들이 이렇게들 나서시는지 모르겠습니다. 아이들이 어리다구요? 안 어립니다. 엄마들 머릿속에서만 어립니다. 혹시 미처 생각 못하면 옆에서 약간 코치만 해주면 됩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스승의날 엄마들이 오시는 걸 별로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제가 아는 대부분의 엄마들은 스승의날을 부담스러워 합니다.

스승의날, 선생님은 난처하고, 학부모는 부담되는 그런 일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렌초의시종 2004-05-15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어리다구요? 안 어립니다. 엄마들 머릿속에서만 어립니다.' 가슴에 남는 말씀이네요. 제가 저희 어머니께서도 그리 생각해주셨다면 조금은 덜 힘들었으리란 생각도 해보구요. 그나저나 행복하시겠어요. 그렇게 귀여운 아이들고 함께 계셔서. 그리구 선생님들이 스승의날 엄마들 오는 거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거 맞아요, 저희 아버지께서도 중학교 선생님이신데, 예나 지금이나 엄마들만나는 게 어려운 일중 하나시래요.(실제로 보면 별로 그런것 같지도 않던데 말이죠^^:)

호랑녀 2004-05-15 1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시종님 ^^ 그래도 좋은(?) 대학 가야하는데, 여행간다 하고, 수능시험에 안 나오는 책만 잡고 있고... 그럼 엄마 입장에서 걱정은 될 듯합니다 (나도 너무 싫은 이중성!)
저도 서울로 대학 가서, 부모님 그늘을 벗어났던 게 참 좋았습니다.

로렌초의시종 2004-05-15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그래서 저도 어머니께 아쉬움이상의 나쁜 감정은 갖지 않으려고 노력하지요. 하지만 제일 서운했던건 '네가 그 여행만 안 갔더라면 더 좋은 대학에......' 하시는 내 희망에 대한 지나친 경시(輕視)였어요......^^;

진/우맘 2004-05-15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아~~~ 김미란 선생님은 얼마나 좋을까요.^^
하긴, 저도 오늘 편지를 보고 끌끌 웃었습니다. 울 반 놈 하나가 편지에 이렇게 썼더군요. "앞으로는 변태짓 안 하겠습니다." ㅋㅋㅋㅋ

호랑녀 2004-05-16 0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렌초의 시종님, 알겠습니다 ^^ 저도 앞으로 아이의 꿈을, 희망을 엄마의 눈으로 판단하고 얘기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진우맘님, 변태짓이라구요? 푸하하하~ (오늘, 아니 어제, 씁쓸하지 않고 즐거운 날이셨기를 바랍니다)
 

1학년 아이가 그림책을 반납하러 왔다.

그런데 이 책, 4월 16일까지 반납해야 할 책이었다. 연체 28일! 1일 늦었을 때마다 1일씩 대출 정지가 도서실 규정이다. 비인간적이라고는 생각하지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책 두 권을 빌리고 싶다고 한다.

'어떡하지? 책을 늦게 가지고 와서 못 빌리겠는데?'

아이는 놓고 돌아섰다. 그랬더니 뒤에 있던 너무나 예쁘고 우아하게 생긴 엄마, 선글라스를 벗으면서

무슨 소리예요? 한다.

나: **가 책을 늦게 갖고와서 못 빌리겠네요. 하루 늦으면 하루 못 빌리는 게 규정이거든요.

엄마 : 아니, 1학년인데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고 책을 못 빌리게 하면 어떻게 해요? (순간, 도서실의 수십 개 눈이 나를 향해 쏟아진다.)

나 : 책을 늦게 갖고 오면 빌릴 수 없다는 것도 교육이예요. 28일이나 못 빌리는 것이 가혹하다면 며칠 지나고 다시 오세요.

엄마 : 너무 비합리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세요? 1학년이 뭘 안다고 책이 늦을 수도 있지. 그리고 아이한테 제대로 말을 했어야죠. 몰랐잖아요. *&^%^$&$%

나 : (열받아서) 어머니, 다른 1학년들 다 제때 책 가져와요. 그리고 책 빌려갈 때 제가 분명히 말해줘요. 언제까지 가져오라구요.

엄마 : 그럼 제 잘못이라는 말이네요?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오는 게 숙제인데, 아니 숙제를 못하면 어떻게 해요?

나 : (하고싶은 말, 무지 참고 있는 말) 아니, 난 니 잘못이 아니라 니네 딸 잘못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니 잘못 맞다. 너 니네 딸 담임선생님한테도 이렇게 말하니? 그리고 이 멍청한 여자야, 다른 애들 없는 데서 부드럽게, 이게 숙제인데 어떻게 하겠냐고, 담부턴 늦지 않겠다고 말하면 어떻게든 해줄 거 아니냐. 그런데 애들 다 보는 데서, 엄마가 해달라고 떼쓰면 내가 해줄 수 있겠냐?

그래서, 결국, 숙제라니까, 책 한 권을 빌려주겠다고, 내 이름으로 빌려주겠다고 했는데, 두 권을 들고 왔다. 한 권은 그림책, 또 한 권은 좀 글씨 많은 책. 한 권만 빌려주겠다고 고르라고 했더니 애가 못 고르고 있다. 그림책을 권했더니 아이는 알았다고 하는데, 그 엄마 냉큼 나서서,

'아냐 **야, 니가 보고 싶은 책 골라' 이런다.

결국 그 아이는 엄마 눈치를 보면서 그 책을 골라서 가지고 갔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잘못한 것 같다. 절대로 책을 빌려주지 않았어야지. 그리고 계속 떼를 쓰면, 내가 담임선생님께 **는 이러저러한 이유로 숙제를 못 하게 되었다고 말씀드리겠다고 했어야 했는데...

아, 아무리 생각해도 실수했다.

그 아줌마, 돌아가서 자기가 비합리적이어서 따져가지고 책 빌려왔다고 얘기할 것 아닌가.

머리를 쥐어뜯는다. 정말 실수했다...


댓글(5)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렌초의시종 2004-05-14 2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목 보고 대충 어떤 내용이리라 짐작은 했는데 역시 맞네요. 힘드시겠어요. 하지만 실수하셨다고는 생각하지 않아요. 그런데 저는요. 잘잘못을 떠나서 그냥 책을 읽고 싶어하는 그 아이의 마음까지 무시할 수는 없는 것 같거든요. 그 몰상식한 어머니야 포기한다고 해도 일단 책을 읽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까지 버리는 건 좀 야속한 것 같아서요......

가을산 2004-05-14 17: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몇년 전 학교 도서실에서 도와준 적이 있는데, 거기서도 책을 가져오지 않으면 책을 빌려가지 못하게 되어 있었어요.
학교에서 책빌리기는 그냥 책만 빌리는 것이 아니라 공공물품을 빌리고 사용하는 첫 훈련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호랑녀님의 역할이 참 큰거네요. ^^
그래도... 책 빌려준건 잘 하셨어요. 앞으로는 그 애나 엄마도 잘 챙기겠죠.

호랑녀 2004-05-14 2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깐 엄청 흥분해서 썼는데 ^^ 지금 생각해보니, 그 엄마가 좀 경우가 없는 거지, 그 애가 뭔 죄냐 싶네요. 그리고... 글이 너무 흥분상태로군요. 이성을 찾았어요, 이제 ^^

진/우맘 2004-05-14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저는 때 아닌 호빵 얘긴가 했네요. 정말 그런 학부모가 있긴 있군요....한 수 배웁니다. 나중에 나는 저얼때 안 그래야지....-.-

다연엉가 2004-05-15 08: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그 엄마와 같은 엄마를 저는 무지 많이 상대했습니다.(무식중에 쌍무식)..이제는 도가 트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지요.^^^^ 처음에는 스팀이 올라 죽겠더니만 그렇게 하면은 제 마음만 안 좋더라구요... 그냥 적당히 하세요... 그리고 다음에는 꼭 체크하고요^^^^
엄마들의 18번이 우리 자식은 절대 안 그런다입니다. 그말에 전 속으로 웃죠^^^^^
 

우리 도서실, 누워서 침뱉기지만 흉을 좀 보자면...

잡지를 한 권도 구독하지 않는다. 일년 도서구입비가 천만원인데(아, 근로계약서에 업무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던데, 나 짤리는 거 아냐?), 잡지를 1종도 구독하지 않는 도서실은 드물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나 혼자 내 돈 주고, 본다. 때로는 괜찮은 책을 집에서 갖다놓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이 와서 그 책 없느냐고 찾으면 다른 곳에서 구해서라도 빌려드린다.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선생님들이 그저 고맙다.

올해는 <초등 우리교육>을 본다. 올해 나의 목표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선생님을 도서실에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서실에 선생님들이 오셔야 무슨 책이 있는지 아시지, 몇몇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영 안 오신다. 물론 우리 도서실에는 교사 학부모용 도서가 드물긴 하다. 어쩔 수 없다. 아직 아이들 책도 많이 부족하니...

그래서, 우리교육 책 중 괜찮은 기사를 복사해서 선생님들께 뿌리기로 했다. 마침 5월에 나온 기획기사 중 <원작 동화를 가르치자>가 딱이다.

기사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어느 교사, 안도현의 '증기기관차 미카'를 엄청 재미있게 읽었단다. 그런데 4-2 교과서에 딱 나왔더란다. 문제는... 내용은 분명히 그것인데, 비슷한 구석이 없더란다. 아이들도 교사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청 헤맸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원본 책을 조금씩 읽어주었다. 한 권을 다 읽어주었더니, 그제서야 '아! 이제야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알 수 있겠어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에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을 왜 책에서는 재미없게 써 놓았지요?' 등등의 반응이 나왔단다.

그 다음 기사는 몇몇 선생님들이 직접 원작으로 수업을 했던 방법들이었고, 그 다음 기사는 읽기 교과서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들에 대한 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년별 읽기교과서 동화 제재와 원작동화 리스트가 있었다.

가서 학년별로 한부씩 연구실에 갖다드려야지 하고 복사하고, 리스트 중 우리 도서실에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찾아 표시하다가 갑자기 걱정이 된다.

이걸 월권행위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계시면 어쩌지? 오지랍도 넓다고 책하는 선생님이 계시면 어쩌지? 책 정리나 잘 하고, 청소나 깨끗이 하라고 하시면 어쩌지?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시면 어쩌지? ....... 어쩌지? ........어쩌지?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냥 갖다 놓고, 읽든 말든, 수업에 참고를 하시든 마시든, 싫어하시든 좋아하시든... 모르겠다. 사서교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뒷일은 신경 끄기로 했다.

나는 내멋에 산다.

 


댓글(3)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달아이 2004-05-1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같은 사서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도 오시면 좋겠습니다. 올해 중으로 아이들 학교에 도서실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예산을 5천만원 마련했다나. 도서실이 생기는 건 좋은데,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전집만 잔뜩 넣어두는 건 아닌지... 작년 바자회때 책 판매한다고 했는데,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모른답니다. 좋은 책이라고 골라 놓은게 정말...
어떻게 하면 도서실이 제대로 운영될까요? 도서실이 생기면 열일 젖혀두고 달려와서 도와드린다고 큰애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아시죠? 그런 문제는 쉽게 개입하기 힘들다는 것. 제발 도서실만은 어머니회 개입없이, 선생님들 입김없이, 정 안되면 시립도서관에 문의해서라도 좋은 책이 들어오길 모든 신들께 빌어봅니다.

다연엉가 2004-05-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호랑녀님이 계신 학교가 부럽네요. 여기에 오시니 그래도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는 기본적으로 아실것이고^^^^

호랑녀 2004-05-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아이님>
몇번 말씀드렸지만, 저는 실천력이 없는, 입만 살아있는... 좋지 못한 사서랍니다. 게을러서 좋은 사서가 되기는 애초에 글렀습니다. 예산 5천이... 어디에 쓰이는지 잘 생각해얄 것 같은데, 어떤 학교는 전자도서관을 만든다고(요즘 전자도서관이 유행이예요) 전자책을 잔뜩 구비한 모양인데, 아이들이 어디 컴퓨터로 책을 봅니까? 호시탐탐 게임하고 인터넷하는 통에 그 학교 사서 못살겠다고 하소연입니다. 시설에 먼저 투자할지 자료에 투자할지도 결정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교장선생님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교장선생님이 가장 무서워(?)하시는 건 엄마들이더라구요. 생각 맞는 분들끼리 뭉쳐보심이 어떠실지요.

책울님>
예전엔 알라딘을 드나들면서 좋은 책에 관해 생각도 좀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온통 잡담 서재질이라... 좋은 책... 잘 모릅니다요 -.-;;
 

대학때 함께 하숙을 하던 후배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남녀공학, 것두 남자가 특히 많은 대학의 남자가 특히 많은 과를 다녔다.  여자라는 티를 내지 않으려고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데모했다. 그리고 골수 운동권이었던 한 남자를 무척 좋아하고 있었다.

나와 살 때는 상황이 거기까지였다. 

대학을 졸업하고, 그를 뒷바라지하기 위해 그녀는 다국적기업에 취직을 했다. 그의 집안은 상황이 좋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은 늘 편찮으셨고, 형들도 많았지만 변변한 직장을 다니는 사람은 없었다.  취직하자마자 결혼을 했던 것은 어쩌면 그의 집 뒷바라지가 급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직장생활만으로는 돈이 빠듯했던 그녀는 결국 직장을 그만 두고 과외선생님이 되었고, 꽤 잘 나갔던 모양이다. 매달 고정적으로 시부모님의 병원비를 부쳐야 했고, 집안의 생활비를 대야 했고, 그리고 아들도 키워야 했는데, 게다가 아파트도 샀다. 우연히 다시 만났을 때, 그녀는 여전히 운동권인 남편을 자랑스러워하고 있었다. 모두들 변심하고 옛날을 노래할 때, 오직 그만이 계속 현장에 남아 있는 것이 그녀의 자부심이었다.

그리고 또 몇 년이 흘렀을까.

그녀가 이혼을 했다는 소문을 들었다. 남편은 드디어 취직을 했고, 취직을 하자마자 첫번째로 한 일이 이혼이었단다. 그리고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단다.

그동안 네 돈을 받으면서 늘 부담스러웠어.

허, 참.

머리로 짚신을 삼아줘도 모자랄 판에, 10년 이상을 그녀에게서 우려낼 대로 우려내고, 그리고 찼다!

시댁으로 아이까지 보내고(그 아이는 그 집안의 제사를 모실 유일한 아들이었다), 그녀는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고 한다. 한 친구가 물어물어 그녀를 찾아갔다. 그런데 냉장고는 텅 비어있고, 그녀의 눈은 촛점을 잃었더라고 했다. 그녀는 억울하다고 힘없이 얘기하더란다.

진심으로 남편을 자랑스러워 했고, 진정으로 시어른께 병원비며 생활비를 드렸단다. 자기 혼자 감당해야 할 짐이 너무 무거웠던 건 사실이지만, 혹시 부담스러워할까봐 내색하지 않고 혼자서 끙끙 앓았던 그 세월이 억울하단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한 번만이라도 자기 힘들다고 얘기할 걸 그랬단다. 밤마다 과외를 가느라고 어릴 때부터 밤이면 혼자 잠자리에 들어야 했던 아들을 데리고 어디 여행이라도 한 번 해볼 걸 그랬단다.

얼마 전, 그녀를 만났다. 한밤중에 바람을 쐬러 나왔다며 갑자기 연락을 해왔다.

그냥 모르는 척, 세상이야기만 했다. 비싼 집에 가서, 비싼 회를 먹었다. 내가 사주겠다고 했더니, 언니, 나 이제 돈 쓸 데도 없어! 한다. 말없이 그냥 안아주었다.

어쩌면 그는 그녀가 늘 부담스러웠을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이건 인간의 탈을 쓰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하긴, 인간의 탈을 쓰고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이 우리 주변엔 너무 많다.

연약하고 사악한 인간에 불과한 나는, 늘 그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데, 이번엔 정말 어렵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진/우맘 2004-05-1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동안 네 돈을 받으면서 늘 부담스러웠어.
------그러니 이제부턴 잘 해줄께...가 되어야지! 부부 사이의 자세한 사연은 모르겠습니다만...화가 나는군요. 뭡니까! 저게!!!!

진/우맘 2004-05-11 16: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나저나 지붕공사가 왜 안 될까...<설정 저장하기> 안 누르셨나?

진/우맘 2004-05-11 16: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되었네요!!! ^^ 가끔, 바뀐 이미지를 컴이 못 읽거든요. 호랑녀님, 지금도 안 보이시면, Ctrl + F5를 눌러보세요. 와~ 그림 조오타!

호랑녀 2004-05-11 16: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야호, 되네요.
고맙습니다 진우맘님. 그런데 어떻게 하신 거에요? 신데렐라 요정마냥 마술지팡이 한번 휘두르신 거예요? 안되던 게 진우맘님 다녀가시니 되네요 ^^
(근데 그 남자 진짜 나쁘죠? 물론 그 남자 얘긴 한 마디도 듣지 않았으니 그 속얘긴 잘 모르겠지만... 불쌍해서 혼났습니다)

가을산 2004-05-11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가끔 - 특히 80년대의 - 운동권이다 하는 사람들,
독재에 항거하니, 민주가 어떠니 하면서도 정작 자기 조직과 가정에서는 더 독단적인 경우가 있습니다. 이건 정치적으로는 민주적이 되어도 정서적으로 가부장제도는 못벗어나는 '줏대있는' 치들의 한계이기도 해서, 오히려 내놓고 '보수'인 자들보다 더 해법이 어렵습니다. (게다가 말빨도 더 세죠.)
친구분 말씀만 들어서는 '내색도 못했다' vs '부담스러웠다'로 드러나는데, 실상은 어떨지 제삼자가 말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둘 다 맞을 수도 있구요. --;;
어쨌든... 부부 한쪽의 성공 뒤에는 나머지 한쪽의 뒷받침과 성원이 중요한 것인데, 그 결실을 혼자만의 것으로 당연시하는 사람은 이제 없어야겠어요.

호랑녀 2004-05-11 2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연 이던가? 그 사람의 소설 [나도 한때는 자작나무를 탔다]라는 책이 생각났습니다. 한겨레문학상을 받은 작품이었던 것으로 생각되는데... 거기 80년대 운동권 사람들, 가정에서 더 독단적이고 가부장적이었던 사람의 얘기가 나오더군요.
그 책을 읽으면서, 후배의 남편을 떠올렸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그는 순결한 운동가였습니다. 적어도 제 머리 속에서는...

마립간 2004-05-11 2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실제 무슨 생각을 했는지 두 사람 모두 양말 뒤집어 보듯 머리 속을 들여다 보고 싶군요.

로렌초의시종 2004-05-12 17: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얄팍한 이해와 절대적인 분노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도대체 그 남자는 무엇을 위해 운동을 했던걸까요? 약한 자들을 위해서 운동권에 투신한 것이 아니라, 강자들의 비열함을 더 적나라하게 배우고 싶었던 걸까요? 결국 그 자신이 남들이 운동할 수 밖에 없게끔 하는 악의 근원이 되어버렸군요.용서받을 수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