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도서실, 누워서 침뱉기지만 흉을 좀 보자면...

잡지를 한 권도 구독하지 않는다. 일년 도서구입비가 천만원인데(아, 근로계약서에 업무중 알게 된 비밀을 누설하면 안 된다는 조항이 있던데, 나 짤리는 거 아냐?), 잡지를 1종도 구독하지 않는 도서실은 드물 것이다.

어쨌든, 그래서 나 혼자 내 돈 주고, 본다. 때로는 괜찮은 책을 집에서 갖다놓기도 하고, 어떤 선생님이 와서 그 책 없느냐고 찾으면 다른 곳에서 구해서라도 빌려드린다. 그렇게라도 관심을 가져주시는 선생님들이 그저 고맙다.

올해는 <초등 우리교육>을 본다. 올해 나의 목표는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선생님을 도서실에 끌어들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서실에 선생님들이 오셔야 무슨 책이 있는지 아시지, 몇몇 선생님들을 제외하면 영 안 오신다. 물론 우리 도서실에는 교사 학부모용 도서가 드물긴 하다. 어쩔 수 없다. 아직 아이들 책도 많이 부족하니...

그래서, 우리교육 책 중 괜찮은 기사를 복사해서 선생님들께 뿌리기로 했다. 마침 5월에 나온 기획기사 중 <원작 동화를 가르치자>가 딱이다.

기사의 요지는 이것이었다.

어느 교사, 안도현의 '증기기관차 미카'를 엄청 재미있게 읽었단다. 그런데 4-2 교과서에 딱 나왔더란다. 문제는... 내용은 분명히 그것인데, 비슷한 구석이 없더란다. 아이들도 교사가 원하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엄청 헤맸다.

그러다 아이들에게 아침마다 원본 책을 조금씩 읽어주었다. 한 권을 다 읽어주었더니, 그제서야 '아! 이제야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알 수 있겠어요' '정말 감동적인 이야기에요' '이렇게 재미있는 내용을 왜 책에서는 재미없게 써 놓았지요?' 등등의 반응이 나왔단다.

그 다음 기사는 몇몇 선생님들이 직접 원작으로 수업을 했던 방법들이었고, 그 다음 기사는 읽기 교과서가 가질 수밖에 없는 한계들에 대한 기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학년별 읽기교과서 동화 제재와 원작동화 리스트가 있었다.

가서 학년별로 한부씩 연구실에 갖다드려야지 하고 복사하고, 리스트 중 우리 도서실에 있는 책들을 하나하나 찾아 표시하다가 갑자기 걱정이 된다.

이걸 월권행위라고 생각하는 선생님이 계시면 어쩌지? 오지랍도 넓다고 책하는 선생님이 계시면 어쩌지? 책 정리나 잘 하고, 청소나 깨끗이 하라고 하시면 어쩌지? 선생님들이 부담스러워 하시면 어쩌지? ....... 어쩌지? ........어쩌지?

에이 나도 모르겠다. 그냥 갖다 놓고, 읽든 말든, 수업에 참고를 하시든 마시든, 싫어하시든 좋아하시든... 모르겠다. 사서교사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그 뒷일은 신경 끄기로 했다.

나는 내멋에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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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이 2004-05-12 15: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같은 사서 선생님이 우리 학교에도 오시면 좋겠습니다. 올해 중으로 아이들 학교에 도서실이 생긴다고 하더군요. 예산을 5천만원 마련했다나. 도서실이 생기는 건 좋은데, 걱정거리가 있습니다. 이런 저런 전집만 잔뜩 넣어두는 건 아닌지... 작년 바자회때 책 판매한다고 했는데, 보면서 얼마나 가슴을 쳤는지 모른답니다. 좋은 책이라고 골라 놓은게 정말...
어떻게 하면 도서실이 제대로 운영될까요? 도서실이 생기면 열일 젖혀두고 달려와서 도와드린다고 큰애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하기는 했는데, 아시죠? 그런 문제는 쉽게 개입하기 힘들다는 것. 제발 도서실만은 어머니회 개입없이, 선생님들 입김없이, 정 안되면 시립도서관에 문의해서라도 좋은 책이 들어오길 모든 신들께 빌어봅니다.

다연엉가 2004-05-12 16: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호랑녀님이 계신 학교가 부럽네요. 여기에 오시니 그래도 좋은 책이 어떤 책인지는 기본적으로 아실것이고^^^^

호랑녀 2004-05-13 0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달아이님>
몇번 말씀드렸지만, 저는 실천력이 없는, 입만 살아있는... 좋지 못한 사서랍니다. 게을러서 좋은 사서가 되기는 애초에 글렀습니다. 예산 5천이... 어디에 쓰이는지 잘 생각해얄 것 같은데, 어떤 학교는 전자도서관을 만든다고(요즘 전자도서관이 유행이예요) 전자책을 잔뜩 구비한 모양인데, 아이들이 어디 컴퓨터로 책을 봅니까? 호시탐탐 게임하고 인터넷하는 통에 그 학교 사서 못살겠다고 하소연입니다. 시설에 먼저 투자할지 자료에 투자할지도 결정해야 하고... 제일 중요한 건 교장선생님 마인드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 교장선생님이 가장 무서워(?)하시는 건 엄마들이더라구요. 생각 맞는 분들끼리 뭉쳐보심이 어떠실지요.

책울님>
예전엔 알라딘을 드나들면서 좋은 책에 관해 생각도 좀 하고 그랬는데, 요즘은 온통 잡담 서재질이라... 좋은 책... 잘 모릅니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