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의 그림책 - 부모에게 상처받은 아이들의 호소문 에듀세이 3
이희경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00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아이를 키우다 보니, 내가 얼마나 상대 못할 족속인지, 내가 얼마나 나쁜 인간인지 스스로 깨닫는다.

나보다 약하다는 이유로, 감히 나에게 덤비지 못한다는 이유로 나는 얼마나 아이들을 내 마음대로, 내 기분대로 막대하는가. 어떤 날은 내가 짜증이 난다는 이유로 아이에게 짜증을 내며, 똑같은 일을 저지르고 잔뜩 움추려든 아이에게 또 어떤 날은 내 기분이 괜찮으니 그냥 웃으며 지나간다. 성질 더러운 내 뱃속에서 태어나서 내 아이들은 얼마나 힘들겠는가.

내가 어릴 때도 그랬다. 내가 한 일에 따라서가 아니라 엄마의 기분에 따라 나는 좌우되었다. 내가 왜 당하는 줄도 모르고 당해야 했으며(그건 정말 야단을 맞는 게 아니라 당한다는 느낌이었다), 그러므로 가끔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요행수를 바랬다. 엄마의 기분이 괜찮은 날은 또 그냥 넘어갈 수 있었으니.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내내 마음이 답답해진다. 모든 케이스가 모두 내 아이들에게 해당되는 것 같고, 모든 케이스의 부모가 다 나인 듯하다. 늘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 앞에서는 둘도 없는 내 아이들인 양 웃고 있지만, 그 탈 뒤에는 고슴도치가 가시를 잔뜩 세우고 있다. 아무리 고슴도치라도 제 자식은 예쁘다는데 나는 그저 내 아이들이 내 맘대로 해도 되는 유일한 것들인양 그렇게 몰아댄다.

아이를 쥐잡듯이 잡은 밤, 이 책을 잡고 내내 우울해진다. 늘 열번만 세고 행동해야겠다. 아이들과 함께 살면서 나에게 필요한 건, 호랑이같은 순발력이 아니라 곰 같은 미련함이다. 둔하고 미련해서 그저 제 자식들을 믿어주는...


댓글(5)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태우스 2005-04-19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랑녀님, 아이를 쥐잡듯이 잡으셨습니까^^ 울적해하지 마세요. 자식 키우는 데는 왕도가 없다고 생각해요. 꼭 열까지 세는 것만이 훌륭한 건 아니지 않나요?

책읽는나무 2005-04-19 18: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태우스님은 아이를 키워보신 것처럼 말씀을 참 잘 하시네요!..ㅡ.ㅡ;;
정작 아이를 키우고 있는 저또한 호랑녀님처럼 괜스레 울적해지네요!
요즘 저도 아이를 쥐잡듯이 잡고 나서 매번 후회하면서 또 상황이 반복되면 스팀이 팍팍~~~ㅠ.ㅠ
머리속에 차곡 차곡 세워놓은 이론적인 것은 실제상황에 접하게 되면 와르르 다 무너져버리더라구요!
그리고 또 후회하고.....이것이 삶이지 않을까? 싶어요!
후회의 연속속에 조금은 정말 아주 아주 아주 아주 조금은 한계단을 밟고 올라서고 있지 않을까? 란 생각에 조금이나마 위안을 가져보면 어떨까? 싶습니다..^^

호랑녀 2005-04-19 22: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흐흐... 아이랑 놀아주는 거랑 키우는 건 몹시! 다르답니다, 마태우스님. 저도 우리 애들에게 마태우스님같은 큰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위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책읽는나무님... 나만 그러는 게 아니겠죠...? 나아지기는 하는 걸까요? 에휴... 모르겠어요... 요즘은 인류의 발전을 위해 걍 혼자 살 걸 그랬다 싶기도 해요. 부모자격시험 봤으면 저는 엄마 못됐을 거에요. ㅜㅜ

진주 2005-05-13 2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우리같은 엄마들은 애들을 쥐잡듯이(흐흐) 잡더라도, 마태님같은 큰아빠가 있으면 애들이 얼마나 좋을까요...큰아빠!
호랑녀님, 솔직하게 쓰셨네요. 님 뿐만 아니라 우린 가끔 애들을 우리 맘대로 좌지우지 하려고 덤비는 적이 꽤 많아요 그쵸? 반성합니다....

호랑녀 2005-05-16 19: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주님은... 안 그러실 것 같은데...요?
혹시 진주님도 가면이셨을라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