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 마감모드 돌입.

또 다시 돌아온 새벽 귀가.

오늘은 편집장이 모범타고 가라고 당부하길래 모범을 콜로 불러서 타고 왔다.

덕분에 브레이크 밞아서 몸이 앞으로 열 번 가량 쏠리는 일은 겪지 않았고

승차감도 좋았으며 아저씨는 졸지 않았다.

편집장은 평소 출근시에도 택시를 탄다. -.,-

 

새벽 귀가에서 내가 유일하게 좋아하는 것이 있다면 그건 한강의 야경이다.

오늘 본 달은 가슴이 서늘해지도록 슬퍼보였다.

 

영등포 사창가를 지나는데 여전히 그녀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난로를 피우고

아무도 지나지 않는 어둑한 길을 밝히고 있었다.

 

내 머리통을 후려치는 끔찍한 일들은 심장을 쿵쾅거리게 만들고

자칫하다가는 불면의 밤을 맞을 것 같아서

아예 일찍 자기를 포기하고 컴퓨터를 켰다.

 

인간의 이기심이란 참 뻔뻔하기 그지 없다는 것을 오늘 또 한 번 느꼈다.

그건 지독한 수치심을 동반했다.

때론 본능이 아름답지만 대체로 본능은 추악하게 보인다.

이기심이 본능일지라도 추악해 보이는 건 그 때문일지도 모른다.

 

갑자기, 18차선 대로에 서서 어쩔 줄 모르는 사람 같이 되어버렸다.

차들은 나 때문에 뒤엉켰는데 한 발자국도 떼어 놓을 수 없는

귀에는 위잉~ 하는 소리만이 들려오고 눈 앞의 아스팔트만 보이는 그런..

 

그냥, 나

외롭더라도, 쓸쓸할지라도 고개 숙이지 말아야겠다.

영원히 그 숙인 머리를 들지 못하게 될지도 모른다. 

굴욕은 그만두자.

 
- 위의 글은 2003년 3월에 당시 나의 사이버 공간에 올렸던 글이다. 우연히 예전 공간에 들어가보니 주인도 찾지 않는 쓸쓸한 공간에 고스란히 글들이 남아 있어 묘한 기분이었다. 몇몇 글을 읽다보니 이때가 확실히 조금이나마 더 솔직했던 것 같다. 덜 비겁했던 것 같고. 그 당시의 힘겨움들이 묻어나는 글을 보니 명치가 아파와서 읽다가 관뒀다.

그리고, 굴욕을 그만두자던 6년전의 나는 여전히 굴욕속에서 견디고 있다.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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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3-15 0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딴 거 있습니까. 가수 장기하가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달이 차오른다~~~~ 가자!

이리스 2009-03-15 21:59   좋아요 0 | URL
갈까요? ㅎㅎㅎ

시비돌이 2009-03-15 03: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 글들을 읽으면서 '아, 상황이 하나도 바뀌지 않았군. 그런데 지금은 그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할 수도 없게 됐네' 하는 생각을 할때가 더러 있더군요.

이리스 2009-03-15 22:00   좋아요 0 | URL
그럼 저랑 동지이신가요? -_-;;
 

지구 반대편의 A에게 안부를 물었다. 세상이 편리해져서 지구 그 어디라도 그 곳이 도시라면 안부를 묻는 일 자체는 그리 어렵지 않게 된 덕분이다. A가 전하길, 자신은 지금 악랄한 연애를 하는 중이라고 했다. 악랄한 연애.

A.의 설명에 따르면 책임의식을 최소화 하며 미래를 함께 한다거나 하는 발상 자체가 없는 그저 온기만을 나누는데 충실한 연애라고 했다. 그 부분에 있어서 상호 합의가 되었다면 그것이 굳이 ‘악랄한’이라는 표현을 달고 가야 하는 연애일까 싶어 더 물으려다 말았다. 즉, 합의가 안되었을 거라는 가정하에.

생각해보니 A는 지난 몇 년간 항상 2~3명의 이성을 주변에 달고 지냈던 것 같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다’는 말에 충실한 연애를 하겠노라 공언한 A로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한번은 A와 같이 있는데 전화가 걸려왔다. A는 발신 번호를 보고 별로 받고 싶어 하지 않는 듯한 눈치였으나 망설이다가 이내 전화를 받았다. 그리고 좀 전의 태도는 온데 간데 없이 매우 상냥하고 또 부드러운 목소리로 상대의 전화를 받았다. 짐작컨대 전화를 걸어온 상대는 취중에 전화를 한 듯 했고, 다음날이면 기억 못할 이야기나 혹은 기억해봐야 민망할 이야기를 읊어대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A는 시종일관 따뜻했다.

전화를 끊고 나서 그런 A의 의중이 궁금해 뭐라 물어보려 입술을 달싹거리자 그 모습을 본 A가 먼저 말문을 열었다. “이제 슬슬 연락 안 올 때도 된 거 같은데 의외로 좀 오래 가네. 그렇지만 1~2주 뒤면 아마 연락 오지 않을 거야. 지금 전화한 것도 내일 휴대폰 발신 목록 보고 알게 될걸? 나랑 꼭 통화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이 시간에 통화할 그 누군가가 필요한 것 뿐이야.”
그 설명을 듣고 난 뒤에도 여전히 A의 좀 전 모습은 낯설었다,

“외로워서 그러는 거 이해하거든. 외로워서 그래, 다들. 전화 받는 게 뭐 돈 드는 일도 아니고 거긴 새벽이지만 여긴 낮이라 잠자다 깬 것도 아닌데 뭘. 게다가 취기에 중얼대는 사랑타령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고 A는 정오의 날카로운 햇살에 살짝 눈을 찌푸리다가 이내 웃었다.

악랄한 연애라는 표현에 나는 그 날의 A를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제 A는 그 만큼의 친절과 부드러움을 싹 거둬들였다는 뜻인가 보다. A는 조금 더 외로워진 것 같았다. 다시, 안부를 물을 때쯤에는 A의 외로움이 더 두터워질지, 아니면 사라질지 모르겠다. 다만, A의 안녕을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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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03 15: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3-03 18: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무해한모리군 2009-03-05 13: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악랄하든 말든 뭔가 하고픈 마음이 들지를 않는 요즘입니다.

이리스 2009-03-05 16:49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러네요. 감정 토하기, 에 지치는 날들입니다. --;;
 

살아오던 방식을 바꾸는 일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변화를 꾀하려면 계기가 필요하기 마련이고 그것은 삶의 방향성을 틀어도 괜찮을 만한 근거여야 한다. 사람이 갑자기 바뀌면 갈 때가 된거라는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것 처럼 두려워질만큼 나는 굉장히 다른 삶을 시작하게 되었다. 내게 있어 그 근거는 상실이다.  

상실을 자각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보니 윈드서핑을 하던 사람이 사고로 배의 스크류에 한 팔 전체가  잘려나가게 되었을 때 자신의 팔이 잘렸다는 사실을 즉각 알아차리지 못했다고 했다. 주변이 붉게 물들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했다는 것이다.  

팔이 잘리는 엄청난 고통을 자각하지 못한 것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한 고통이라서였을지도 모른다. 어깨 아래 달려 있어야 할 팔이 눈 앞 몇미터에서 붉은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보고서도 저것이 내 팔이라는 것을 인지하는 데 시간이 필요한 까닭은 실로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힘들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 상황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데는 그 상황의 심각성과 고통의 깊이 만큼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만화를 보다가 문득 팔이 잘린 그 윈드 서퍼가 생각났다. 내게서 잘려나간 소중한 것이 마치 신체의 일부를 상실한 것처럼 지독하게 아프고 그 상실이 불편해서 견딜 수 없어지면서 내 삶의 방식이 달라지게 된 것이 아닐까. 고통이 극대화 되어 온몸을 뒤흔들면서 동시에 치유가 시작되고 있다. 

욕망에 지배 당하지 않고, 욕망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지점에 올라서고 보니 한결 여유로워졌다. 그리고 이것은 상당한 희열을 맛보게 한다. 욕망에 사로잡혀 끌려다닌 삶을 자유로운 삶과 치환해 놓고 스스로를 방기하는 어리석음에 조의를.  

 

이제, 가벼워지는 것만 남았다.  

가볍고도 가벼운 존재가 되어 미세한 떨림만으로도 전율을 느낄 수 있고 

그 언제라도 가뿐히 떠날 수 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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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8 12: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열반에 들으셨으니 이제 남은 건 공중부양 뿐입니다.

이리스 2009-02-28 15:37   좋아요 0 | URL
아직 번뇌가 너무 많아서 공중부양이 안되고 있;;;

Mephistopheles 2009-02-28 17:01   좋아요 0 | URL
그렇다고 헬륨을 들이키진 마십시요..어용입니다 그건.

이리스 2009-03-01 20:29   좋아요 0 | URL
요상스런 목소리로 메피님 귓가에 꽥꽥거리진 않을게요. ㅎㅎ
 

술 취해 전화하고 다음날 쥐구멍 찾는 한심한 반복적 추태를 스스로 제어해볼 요량으로 금주 중인 바, 다섯 시간 동안 참이슬 네 병과 매화수 두 병이 비워지는 사이 오로지 물만 마셨다. 물도 소주잔에 따라 탁 털어넣듯 마시면 은근히 취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아무튼, 담배도 끊은 독한 인간이 뭘 못 하겠냐마는..

평소 위나 아래로 나이 서너 살 차이 나는 사람들과 동년배 보다 더 친하게 지내곤 했는데 어제의 술 자리는 그 차이가 평소보다 더 했다. 어제의 멤버는 연애한지 갓 100일 정도 된 풋풋한 커플(네살 차이)와 '86이라도 괜찮은' A와 나였다. 우리는 가식따위는 홀랑당 발라당 시원스레 벗어던지고 맨살같은 속내를 탈탈 털어내 보이며 술잔과 물잔을 비워나갔다. 한 자리에 모인 넷은 각자의 너덜거리고 찌질한 부분들을 자기만의 방식대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 용쓰는 모습들에 깊이 공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각자의 나이 차이 만큼 상황의 차이도 커서 그 부분에 대한 존중이나 배려 또한 필요했다. 

내가 좀 더 살았답시고 살아온 경험을 바탕으로 뭔가 이야기를 해대고 있었으나 따지고 보니 내가 A보다 뭐 하나 나은 구석이 없었다. 단순히 나이 차이가 제법 난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나는 이미 A에게 편견을 갖고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A보다 나은 구석이 아니라 다른 구석이 있다면 어떻게 해서든 난처한 상황을 빠져 나가는 술수를 부리는 능력이 조금 더 있다는 것 뿐이었다. 내가 이미 정서적으로 늙어가고 있구나 싶어 부끄러워졌다.  

그런 나를 더 머쓱하게 만든 것은 A의 배려였다. 허물없는 사이라 해도 1:1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경우의 자리에 따라 충고의 수위가 조절되어야 한다는 것을 A는 잘 알고 있었고, 그렇게 했다. 왁자지껄 소란스러운 주점에서 넷 중 누군가 전화를 받으러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생리현상 해결하러 자리를 비운 사이에 A는 1:1이 될때 할 수 있는 수위의 충고를 했다.

나이 서른 넘어서 진정한 의미의 친구라 할 수 있는 이의 수가 늘어나는 일은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일에 견줄만큼 어려운 일이다. 같이 어울려 시간을 보내며 즐거움을 나누고 힘든 일 있을때 푸념 들어주는 정도의 사람들 수야 늘리면 늘릴 수 있겠지만 말이다.

살갗을 뚫고 뼈마디 마다 스며들어 부르르 떨게 만드는 독하디 독한 충고, 그러나 흉터가 남지 않도록 두툼한 애정을 상처 위에 발라주는 그런 충고를 해 줄 수 있는 사람, 나는 그 사람을 친구라고 생각한다. 나이 같은 것은 중요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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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phistopheles 2009-02-20 0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 축!

이리스 2009-02-20 10:10   좋아요 0 | URL
경축 우리사랑! 아니 경축 우리 우정! 인거죠 ㅎㅎ

프레이야 2009-02-20 00: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뿌듯하시겠어요.^^

이리스 2009-02-20 10:12   좋아요 0 | URL
^_^;;

라로 2009-02-20 0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이 같은 것은 정말 중요하지 않은데,,,,
암튼 부럽사옵니다.^^;;;

이리스 2009-02-20 10:12   좋아요 0 | URL
그치만 나이 값을 하긴 해야해서 이것도 참 힘드네요. ㅎㅎ

무해한모리군 2009-02-20 0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벗과 행복한 술자리 정말 부럽습니다~~

이리스 2009-02-20 10:13   좋아요 0 | URL
네네, 물자리라도 상관없어서 다행이었죠. ^^;

울보 2009-02-20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으시겠어요
저에게는 언제 저런 친구가 생길까요
점점 나이가 들어가니 친구 사귀기가 더 힘들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ㅎㅎ

이리스 2009-02-20 10:13   좋아요 0 | URL
만날 수 있는 기회가 그만큼 줄어들어서 그런것 아닐까요?
울보님에게는 류가.. 좋은 친구!! ^_^
 

어제 엄마는 생각보다 일찍 동이 난 김장 김치 때문에 겨울이 가기 전에 부랴부랴 아홉포기 김치를 담그셨다. 엄마는 김치를 담그시느라 거의 밤을 새우다시피 하고 겨우 한 시간 남짓 눈을 붙이고 내 출근 시간에 맞춰 일어나셨다. 아침 한 끼 안먹어도 괜찮으니 그냥 주무시라는데도 엄마는 졸려서 떠지지 않는 눈을 부비며 기어이 아침을 챙겨주셨다.  

엄마는 내게 무엇 하나 차려주어도 항상 예쁘고 좋은 그릇에 가지런히 음식을 올려서 주신다. 내게 말 몇마디 건네시다가도 시계를 보며 출근 시간이 혹여 늦어질까 눈치를 살피신다. 야근하지 않는 날, 저녁식사를 집에서 하게될 날이면 미리 전화하셔서 내가 집에 도착해 식사할 시간에 맞춰 음식을 하신다. 바로 해서 먹어야 맛있다고 하시며.

엄마는 아빠가 음식쓰레기 버리는 것도 싫어하신다. 아빠가 음식쓰레기를 버리신다며 음식쓰레기 통을 들고 나가면 엄마는 부리나케 아빠를 막아선다. 음식쓰레기 통을 들고 버리러 나가는 남자들 보면 집에서 구박 받는 남자들 같아 보여서 싫다고 그만 두라고 말린다. 그런거 상관없다고 아빠가 음식쓰레기 통을 안 놓아도 끝내 아빠를 현관에서 거실로 뒷걸음질 하시게 만든다.  

올해 엄마는 환갑. 엄마의 60년이 어땠는지 그 중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절반 정도도 채 안된다. 엄마의 꿈이 무엇인지는 알아도 그걸 이룰 수 있게 도와드릴 능력도 현재로선 없다. 그렇지만 아무리 엄마가 '환갑이 대수냐, 어차피 돌아오는 생일인데 늙는게 무슨 자랑이라고 별스럽게'라고 하셔도 별스러운 생일날로 만들어드리고 싶다.  

디스크 때문에 곧지 않은 엄마의 허리마냥, 그 허리를 볼 때마다 내 마음도 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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