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숙의 자연 치유 - 진정한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자연건강식과 치유식, 요가, 명상
문숙 지음 / 이미지박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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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간소하고 청빈한 삶을 권장하는 글이 지나치게 화려한 편집 디자인을 거치는 바람에 다소 부조리한 책이 되고 말았지만, 그럼에도 감동을 주는 글이다. 산문이나 수필이 글쓴이의 삶을 얼마나 반영한다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장르의 글 역시도 삶에 대한 일종의 훼이크 같은 거 아닐까. 자기 이야기를 하는 글은 많은 경우 삶을 윤색하거나 아니면 결정적인 곳에서 기만하고 심지어는 배반한다. 장르가 어찌 되었든 글은 그저 그 자체로 독자적일 뿐이다. 이것이 여태까지의 생각이었는데, 이 책을 읽고선 그래도 글에서 풍기는 향 만큼은 예외적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담백하고 소박한 식사, 명상과 산책 정도는 하와이에서 대자연과 더불어 살아가지 않아도 마음만 먹으면 실천에 옮길 수 있는 활동이겠다. 건어물녀 생활을 이제 그만 청산하고자 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 강한 의욕을 심어주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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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ptrash 2010-09-29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은 읽지 않았지만, 자기 삶을 전시하는 글의 가장 윤리적인 방식은 위악이 아닐까 생각했던 적이 있어요.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수양 2010-09-29 20: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역시 잘 모르겠지만 다만 위악적인 글이 흔하지 않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책을 읽고 나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혹은 일기처럼 무어라 끄적거리고 있으면, 마치 '나'라고 하는 정당하고 확고한 무언가가 일시적으로나마 뚜렷하게 존재하는 듯한 환상에 빠지게 된다. 써놓은 글쪼가리의 질과는 상관없이 그냥 그런 과정 속에서 단단한 자기존재감 같은 게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구축되고 인식되는 '나'라고 하는 것은 대단히 환상적이다. 마치 상상계의 아이가 거울을 보고 홀로 즐거워하는 것처럼 서글픈 촌극이다. 그러나 실은, 텍스트로서 존재하는 '나' 따위는, 그러니까 텍스트를 통한 자기확인이라는 것은, 애당초 아무 것도 아니라는 생각... 지극히 무의미한 유희라는 생각... 그것은 마치 신기루 같다. 무언가를 읽는 일이 나에게는 진리를 구하는 일도 앎에의 의지도 아니라 그저 도피하는 일인 것만 같다. 도피하여 혼자만의 신기루를 지어내는 일만 같다. 아무 것도 읽지 않고 아무 것도 적지 않으면서도 오히려 나보다 훨씬 더 하루를 충직하고 유의미하게 보내는 내 주위 사람들을 보면서 이런 혐의가 점점 더 뚜렷해져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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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 - Grey's Anatom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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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오랫동안 세상의 모든 방면의 테크니션들에게 존경보다는 차라리 경멸과 거부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지적 기형에 대해 냉소하고 연민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 직업의 어떤 부분에서 오는 자괴감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했고,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개인적인 허영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을 조금은 고쳐 먹게 된 것 같다. 어떤 한 분야에서 능숙한 처신과 유능한 기술을 보여주는 사람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다. 다만, 그가 자신의 일이 세계의 모든 가치로운 것들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는 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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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8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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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면 뿐만 아니라 사유의 깊이나 정신성에 있어서도 확실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일관된 어떤 정신적 기조를 찾자면 아마도 '다위니즘'이 아니었을까. 철학이 부재한 사회에서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인간 본성이 굉장히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발휘된다. 당시 사회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잘 살아보겠다는 그악스런 의지, 그리고 바지런한 기질이다.

명분으로 내걸 철학조차 필요없는 야만적 정치 체제, 원칙과 정의 따위는 실종된, 흡사 정글과도 같은 이전투구식 사회 분위기... 이 책을 통해 엿본 60년대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 새삼스레 치를 떨게 되지만, 실상은 그 비루한 과거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존재케 한 토대인 것이다. 저자는 6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으로 기회주의를 꼽고 있지만, 시대정신이라는 게 결코 십여 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게다. 어쩌면 기회주의는 강국들로 둘러싸인 불안정한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급격한 역사적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한국인이 체화한 뿌리깊은 습속 같은 것인지도. 

높은 인문학적 소양과 뛰어난 철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유럽의 역사 역시 야만적이고 추잡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대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확실히, 진창 속에서도 무언가 정신적으로 반짝이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정치사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이라든가 하는 그런 부분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에서는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만한 인물들이 모조리 고문당하거나 처형되거나 암살당한다. 한국현대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오욕과 슬픔이다. 대단히 자학적인 심정에 빠지게 된다. 소국의 역사라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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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역사책방 5
역사학연구소 지음 / 서해문집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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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북한을 괴뢰정권이라고 할 처지도 못 된다. 지금은 국제사회의 계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북한 정권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창대했던 것 같다. 자주정신에 입각해서 건립된 나라는 정작 오늘날 국제질서에서 고립된 채 자주력을 상실한 국가가 되어버렸고, 식민근성에 젖어있던 쪽은 반대로 자주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역사의 블랙유머일까.   

북한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유일지도체계가 공고화되기 전에, 그러니까 50년대에 종파사건이라는 게 일어나서 김일성 개인숭배에 저항했던 정치세력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남한에서는 진보진영을 이끌었던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했고. 북한이나 남한이나 이념전쟁이 낳은 비극을 똑같이 경험했던 셈이다. 또 이 책에서는 60-70년대에 북한이 먼저 남한 체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연방제를 제안했던 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당시 북한이 경제 정치 여러 부문에서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책은 남북한이 원래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민족이념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80년대생인 나에게는 솔직히 그닥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 현재 남한사회만 하더라도 순수 혈통의 한민족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만 해도 북한 사람보다 베트남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남한 사회부터 다민족 국가로 재편되어가는 판국에 한민족 운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국 명분에 불과한 게 아닐까. 통일은 결국은 철저히 자본주의적 논리로 실익을 따져가면서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북한이 과연 브라질이나 인도보다 더 시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궁금하다: 남북 적대 상황에서 지출되는 군사비 부담 vs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경제적 부담 둘 중에 어느 게 더 클까 하는.        

이 책에서는 80년대 이후 여성, 환경,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대두된 시민운동에 대해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시민 일반의 이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탈계급적이며 소시민적인 성격에 얽매일 수도 있다"면서 야박하게 평가하는데, 이런 대목에서는 내가 옛날에 김규항 씨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뭔가 꽉 막힌 기분과 똑같은 걸 어쩔 수 없이 또 느끼게 된다. 왜 꽉 막힌 기분이 드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겠다. 그냥 감각이나 정서로 와닿는 거라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구판(1995)으로 읽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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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0-09-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말씀하신 '미래의 생존을 위한 조건'이라는 게 저로서는 약간 모호하게 들리는데요. 혹시 북한의 생존 위기를 염려하신 거라면, 냉정한 걸 수도 있지만 제가 봤을 때는 그런 염려 자체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동정론적 접근 같거든요. 이념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당위적인 통일론 말고, 실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통일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회의적인 입장이 되는 거 같아요. 게다가 위에서 말씀하신 거처럼 군사비 지출의 증감 여부가 통일과 무관하다면 더더욱요...

이 책에선 북한이 한참 잘 나갈 때 세 가지 종류의 연방제를 우리쪽에 먼저 제안했다고 나오는데, 그때 북한에선 연방제를 통일의 과도기적 상태로 인식한 게 아니라, 연방제 자체를 두 체제가 독립적으로 공존하는 최적의 상태로 상정하고 있었다고 해요. 벌써 3-40년 전에 나온 얘기긴 하지만, 통일문제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저로서는 북한의 이런 제안이 흥미롭게 읽히더군요.

수양 2010-09-02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왜 지워버리셨지-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