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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ㅣ 서해역사책방 5
역사학연구소 지음 / 서해문집 / 2004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북한을 괴뢰정권이라고 할 처지도 못 된다. 지금은 국제사회의 계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북한 정권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창대했던 것 같다. 자주정신에 입각해서 건립된 나라는 정작 오늘날 국제질서에서 고립된 채 자주력을 상실한 국가가 되어버렸고, 식민근성에 젖어있던 쪽은 반대로 자주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역사의 블랙유머일까.
북한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유일지도체계가 공고화되기 전에, 그러니까 50년대에 종파사건이라는 게 일어나서 김일성 개인숭배에 저항했던 정치세력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남한에서는 진보진영을 이끌었던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했고. 북한이나 남한이나 이념전쟁이 낳은 비극을 똑같이 경험했던 셈이다. 또 이 책에서는 60-70년대에 북한이 먼저 남한 체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연방제를 제안했던 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당시 북한이 경제 정치 여러 부문에서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책은 남북한이 원래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민족이념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80년대생인 나에게는 솔직히 그닥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 현재 남한사회만 하더라도 순수 혈통의 한민족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만 해도 북한 사람보다 베트남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남한 사회부터 다민족 국가로 재편되어가는 판국에 한민족 운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국 명분에 불과한 게 아닐까. 통일은 결국은 철저히 자본주의적 논리로 실익을 따져가면서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북한이 과연 브라질이나 인도보다 더 시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궁금하다: 남북 적대 상황에서 지출되는 군사비 부담 vs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경제적 부담 둘 중에 어느 게 더 클까 하는.
이 책에서는 80년대 이후 여성, 환경,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대두된 시민운동에 대해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시민 일반의 이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탈계급적이며 소시민적인 성격에 얽매일 수도 있다"면서 야박하게 평가하는데, 이런 대목에서는 내가 옛날에 김규항 씨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뭔가 꽉 막힌 기분과 똑같은 걸 어쩔 수 없이 또 느끼게 된다. 왜 꽉 막힌 기분이 드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겠다. 그냥 감각이나 정서로 와닿는 거라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구판(1995)으로 읽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