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 아나토미 시즌 1 - Grey's Anatomy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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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종료


오랫동안 세상의 모든 방면의 테크니션들에게 존경보다는 차라리 경멸과 거부감을 품고 있었다. 나는 그들의 지적 기형에 대해 냉소하고 연민했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내 직업의 어떤 부분에서 오는 자괴감에서 비롯한 것이기도 했고, 제너럴리스트가 되고 싶다는 개인적인 허영심 때문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 드라마를 보고 마음을 조금은 고쳐 먹게 된 것 같다. 어떤 한 분야에서 능숙한 처신과 유능한 기술을 보여주는 사람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멋지고 아름답다. 다만, 그가 자신의 일이 세계의 모든 가치로운 것들의 전부라고 착각하지 않는 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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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 1960년대편 3 - 4.19 혁명에서 3선 개헌까지 한국 현대사 산책 8
강준만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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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어보면, 60년대 우리나라는 경제적인 면 뿐만 아니라 사유의 깊이나 정신성에 있어서도 확실히 후진국 수준을 면치 못했던 것 같다. 그 시절 한국사회에서 그나마 일관된 어떤 정신적 기조를 찾자면 아마도 '다위니즘'이 아니었을까. 철학이 부재한 사회에서는 약육강식의 동물적 인간 본성이 굉장히 솔직하고 적나라하게 발휘된다. 당시 사회에서 유일하게 긍정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은 잘 살아보겠다는 그악스런 의지, 그리고 바지런한 기질이다.

명분으로 내걸 철학조차 필요없는 야만적 정치 체제, 원칙과 정의 따위는 실종된, 흡사 정글과도 같은 이전투구식 사회 분위기... 이 책을 통해 엿본 60년대 한국사회의 풍경이다.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인 듯 새삼스레 치를 떨게 되지만, 실상은 그 비루한 과거가 오늘날 우리 사회를 존재케 한 토대인 것이다. 저자는 6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정신으로 기회주의를 꼽고 있지만, 시대정신이라는 게 결코 십여 년을 주기로 변화하는 성질의 것은 아닐 게다. 어쩌면 기회주의는 강국들로 둘러싸인 불안정한 지정학적 위치 속에서 급격한 역사적 정치적 변동을 겪으면서 한국인이 체화한 뿌리깊은 습속 같은 것인지도. 

높은 인문학적 소양과 뛰어난 철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유럽의 역사 역시 야만적이고 추잡하기는 매한가지라고 한다면, 그리고 그것이 인간성의 본질이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그러나 대국의 역사를 살펴보면 확실히, 진창 속에서도 무언가 정신적으로 반짝이는 부분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영국 정치사에서 의회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의 과정이라든가 하는 그런 부분들... 그러나 우리의 현대사에서는 반짝이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낼 만한 인물들이 모조리 고문당하거나 처형되거나 암살당한다. 한국현대사에서 느껴지는 것은 오로지 오욕과 슬픔이다. 대단히 자학적인 심정에 빠지게 된다. 소국의 역사라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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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보는 한국근현대사 서해역사책방 5
역사학연구소 지음 / 서해문집 / 200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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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이 책을 읽어보면 우리가 북한을 괴뢰정권이라고 할 처지도 못 된다. 지금은 국제사회의 계륵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북한 정권의 시작은 역사적으로 충분히 의의를 부여할 수 있을 만큼 창대했던 것 같다. 자주정신에 입각해서 건립된 나라는 정작 오늘날 국제질서에서 고립된 채 자주력을 상실한 국가가 되어버렸고, 식민근성에 젖어있던 쪽은 반대로 자주력을 갖춘 나라로 성장했다는 게 아이러니하다. 역사의 블랙유머일까.   

북한에서는 김일성 중심의 유일지도체계가 공고화되기 전에, 그러니까 50년대에 종파사건이라는 게 일어나서 김일성 개인숭배에 저항했던 정치세력들이 모조리 숙청당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남한에서는 진보진영을 이끌었던 조봉암 선생이 사형당했고. 북한이나 남한이나 이념전쟁이 낳은 비극을 똑같이 경험했던 셈이다. 또 이 책에서는 60-70년대에 북한이 먼저 남한 체제를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연방제를 제안했던 것으로 나와있다. 물론 당시 북한이 경제 정치 여러 부문에서 남한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겠지만.

이 책은 남북한이 원래 한민족이기 때문에 통일이 당연히 그리고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하는데, 민족이념으로 통일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80년대생인 나에게는 솔직히 그닥 와닿지는 않는 것 같다. 현재 남한사회만 하더라도 순수 혈통의 한민족이라고 할 수도 없지 않은가. 나만 해도 북한 사람보다 베트남 사람이 더 친근하게 느껴지는데... 남한 사회부터 다민족 국가로 재편되어가는 판국에 한민족 운운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결국 명분에 불과한 게 아닐까. 통일은 결국은 철저히 자본주의적 논리로 실익을 따져가면서 접근할 수밖에 없지 않을까. 그럼 자본주의적 관점에서 접근했을 때 북한이 과연 브라질이나 인도보다 더 시장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 한편으로는 이런 것도 궁금하다: 남북 적대 상황에서 지출되는 군사비 부담 vs 통일 과정에서 우리가 치러야 할 경제적 부담 둘 중에 어느 게 더 클까 하는.        

이 책에서는 80년대 이후 여성, 환경, 교육 등 사회 각 분야에서 대두된 시민운동에 대해서 "합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시민 일반의 이익 실현을 목표로 하는 탈계급적이며 소시민적인 성격에 얽매일 수도 있다"면서 야박하게 평가하는데, 이런 대목에서는 내가 옛날에 김규항 씨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뭔가 꽉 막힌 기분과 똑같은 걸 어쩔 수 없이 또 느끼게 된다. 왜 꽉 막힌 기분이 드는지 논리적으로 설명은 못하겠다. 그냥 감각이나 정서로 와닿는 거라서 그런 것 같다. (내가 이 책을 구판(1995)으로 읽어서 그런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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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양 2010-09-02 23: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통일이 되어야 한다는 이유로 말씀하신 '미래의 생존을 위한 조건'이라는 게 저로서는 약간 모호하게 들리는데요. 혹시 북한의 생존 위기를 염려하신 거라면, 냉정한 걸 수도 있지만 제가 봤을 때는 그런 염려 자체가 민족주의에 바탕을 둔 동정론적 접근 같거든요. 이념이나 감성에 호소하는 당위적인 통일론 말고, 실리적으로 생각해보면 통일에 대해서는 저로서는 어쩔 수 없이 회의적인 입장이 되는 거 같아요. 게다가 위에서 말씀하신 거처럼 군사비 지출의 증감 여부가 통일과 무관하다면 더더욱요...

이 책에선 북한이 한참 잘 나갈 때 세 가지 종류의 연방제를 우리쪽에 먼저 제안했다고 나오는데, 그때 북한에선 연방제를 통일의 과도기적 상태로 인식한 게 아니라, 연방제 자체를 두 체제가 독립적으로 공존하는 최적의 상태로 상정하고 있었다고 해요. 벌써 3-40년 전에 나온 얘기긴 하지만, 통일문제에 관해 별로 아는 게 없는 저로서는 북한의 이런 제안이 흥미롭게 읽히더군요.

수양 2010-09-02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헉 왜 지워버리셨지-_-
 
대화 - 한 지식인의 삶과 사상
리영희, 임헌영 대담 / 한길사 / 200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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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도 나오는 얘기지만, 선생의 지식인으로서의 태도는 여러 가지로 루쉰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독재 정권에 우호적이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맹목적으로 민중계급을 지지하지도 않는다. 책장에 꽂힌 책(가족 중 누가 구입한 것인지는 모르겠다)을 우연히 읽어본 건데 아무래도 독서의 순서가 잘못 된 듯. 리영희 선생의 저작들을 읽어보고 나서야 이 책에 대해 무어라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

이런 상황에서 ‘친미 반공 군부 독재’ 체제 수립을 위해 나온 이데올로기가 바로 ‘로스토 독재개발이론’입니다. (...) 케네디 대통령의 후진 동맹국가 운영정책의 기둥으로 채택된 거요. 이는 바로 후진 미개발 사회에서의 민주주의를 부정하고, 친미국적 군부의 강력한 독재체제로 우선 사회적 통합과 안정을 실현한 후, 그 바탕 위에서 후진 사회적 부정 부패들을 척결 개혁하면서 경제건설과 정치적 안정을 달성하는 개발이론이지. 이 이론이 그때 남한에 적용되어, 박정희어 5.16 쿠테타가 표방한 강력한 반공이념 아래에서 경제개발이라는 국가정책으로 채택된 것이지요. (...) 케네디가 채택한 이 로스토 독재개발이론은 그 집행주체를 군대로 설정한 것이 특징이에요. (...) 박정희 정권의 일정한 물질적 성과를 마치 박정희 대통령의 뛰어난 정치적 지도력처럼 착각하는 사람들도 꽤 많은데, 사실은 이상과 같은 미국의 세계적 체제경쟁 배경 때문이었다는 국제정치를 알 필요가 있어요.(295)

우리가 경험했고, 또 경험하고 있는 온갖 성격과 형태의 사회에서, 오랜 체험과 그것으로 얻어진 예지로써 이제 내릴 수 있는 한 가지 결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자유와 평등은 동등하고 동격의 가치를 지닌 요소이지만, 집단적 인간의 행복 추구의 실천적 순서로서는 ‘자유’가 ‘평등’ 앞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 자유는 ‘인간’ 생명체의 원초적 본성이고, 평등은 개개인의 집단적 생존이 형성된 뒤에 생명이 요구하는 ‘추후적, 사회적 조건’이라고 생각해요.(523)

자기 나름의 문제의식이나 분석방식 없이 남의 이론을 빌려서 자기의 권위로 이용하는 작태를 나는 멸시해요. 내 글에는 누구는 이렇게 말했다는 식이 없어. 정치이론도 사회비평도 다각도로 교차검증한 다음에 일단 소화하고, 내 머릿속에서 내 것으로 만들고, 충분히 반죽해서 자신의 누룩을 가미해서 발효시켜서, 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 나는 현학적인 것을 제일 싫어하는데, 그런 현학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은 그 인용한 누구의 이름에 자기를 동일시하려는 허영에서 출발해요. 자기의 지식이 돼버린 것은 굳이 누구의 것이라고 할 수 없어요. 대신 뼈를 깎는 노력을 통한 철저한 ‘자기화’가 필요하지.(549)

1980년대 후반에 우리나라의 젊은 투사들 사이에서 드러났던 현실대응에 대해서는 내가 공감할 수 있는 영역이 별로 없었어. 나는 그쪽에 대해서, 어떤 의미에서는 냉담했다고 그럴까. 그것이 우리 전체가 직면하고 있는 역사적 단계에서 해결해야 할 구체적인 문제를 극복하는 데 오히려 전력을 분산, 소모하지 않을까 우려했어요. (...) 세계의 정치개혁운동사에서, 어느 나라의 경우에나 큰 공통점이 있어요. 즉, 우익은 이권으로 뭉치고 좌익은 이념으로 모이지만, 동시에 우익은 이권분배의 크기로 분열하고 좌익은 이념을 지나치게 정밀화, 세밀화하는 ‘작음’의 고질적 아집 때문에 망한다는 역사적 경험이에요.(625)

자본주의가 앓는 사회적 암을 치유하는 데 사회주의라는 항생제가 필수적입니다. (...) 사회주의가 없는 자본주의는 부패, 불법, 부정, 타락, 빈부격차, 폭력, 범죄, 잔인, 인간소외 등을 낳게 마련이에요. 그것들은 자본주의의 ‘본태성 질병’이에요. 어쩔 수 없어요. 사회주의의 인간중시적 가치관만이 그러한 자본주의의 반인간적 측면을 방지하고 보완하는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자본주의의 질병이 그 제도의 골수에까지 심화하여 제도 자체가 붕괴하는 위험을 어느 정도 선에서 예방하고 존속하기 위해서는, 또 그렇기를 원한다면 사회주의가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이지요. 나는 우선 지난 300~400년 사이에 인류의 발전을 이루어왔던 제도의 변화를 바라보면서, 그래도 상대적으로 바람직한 것이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적절한 배합이라고 생각합니다.(685)

나의 결론은 인간은 물질적 요소로 존재하는 동물이니까 자본주의적 요소로 말미암은 필연적인 비인간화적 결과를 5할 정도의 선에서 인정하고, 그러나 그것으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인간성 파괴의 측면을 보완하기 위해 게마인샤프트적 사회주의적 요소를 5할 정도 융합하는 방식으로 사회민주주의적 체제가 현실적으로는 결함과 약점이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인류사회의 현 발전단계에서는 가장 낫고, 사회주의 없는 미국식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확신해요. (...) 우리는 아무리 희구해도 이미 먼 옛날에 인류의 사회적 형태로 지나온 ‘게마인샤프트’(물질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인간적 유대가 기본원리인 공동체)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 ‘게젤샤프트’(서로의 이해관계의 계산을 매개로 이익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사회)와 적절히 배합한 인간 생활 형태를 미래의 상으로 그려볼 수밖에 없겠지요.(687)

198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이 나라와 사회에서 일정한 선구적 역할을 해온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광주민주항쟁 뒤에는 우리 대중의 의식이 급진전했고, 국민생활과 민족문제의 국가적 위기, 사회적 부조리 전반에 대한 지식인, 청년, 대학생, 노동자들의 문제의식과 인식능력의 수준이 나를 뛰어넘는 감이 있을 만큼 발전했어요. 60~80년대에 걸친 나의 글과 책과 말 그리고 나의 행동으로 계몽되고 ‘의식화’된 후배와 후학들의 역량이 놀라울 만큼 커졌어요. 내가 할 역할은 다 했고, 남은 역할은 내가 변치 않고 그 자리에 그 모습으로 있어주는 것뿐이라는 생각이 들었어. 이 나라, 사회의 변화와 진전을 지켜보면서, 혹시 요구가 있으면 몇 마디를 해주는 것으로 족하지. “족한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다”는 성현의 가르침은 지금 바로 나에게 한 말이라고 생각하게 됐어요.(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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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집회 때 일이다. 자정을 넘어서면서 명박산성 앞의 시위는 점점 더 과격해지고 있었다. 시위대 중 앞쪽에 포진해 있던 일부 무리가 산성을 넘어서 청와대로 돌격하자고 선동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선동과 동시에 마치 짜여진 각본처럼 어디선가 정체모를 대형 스티로폼 벽돌들이 속속 등장했다. 대체 누구의 아이디어로 동원된 것인지 명박산성 못지 않게 궁금해지는 스티로폼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시위대 앞의 무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스티로폼 벽돌을 하나 둘 쌓아올려 명박산성을 뛰어넘을 계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시위 행렬의 꽁무니에 있던 사람들은 반쯤은 시위를 즐기러 나온 방관적인 무리들이었기 때문에 시위가 과격해지는 것을 원치 않았다. 더군다나 청와대로 진입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이었다. 그들은 험악한 표정으로 스티로폼 벽돌을 치우라고 난리였다. 갑자기 나타난 스티로폼 벽돌로 인해 '산성을 뛰어넘을 것이냐, 말 것이냐', '스티로폼을 치워라, 말아라', '청와대로 돌진하자, 말자' 하는 의견 대립이 첨예해지면서 시위대는 돌연 난장판이 되어가고 있었다.

명박산성 앞의 시위 무리가 내분으로 아수라가 되어가는 동안, 시위대 뒤켠에서는 퍽 대조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었다. 긴 머리를 풀어헤친 청년들이 북치고 장구치며 노래를 불러댔고, 한쪽에선 통닭을 시켜먹는 아저씨들도 있었다. 차량 운행이 통제된 거리 곳곳에는 빈 소주병들이 심심찮게 굴러 다녔다. 열에 받쳐 악다구니를 질러대는 시위대 전방의 무리들에 비하면, 후방에 포진해 있던 사람들은 상당히 얼빠지고 심드렁한 상태였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은 내심 뭔가 즐거운 기색이었다. 나는 문득 명박산성 바로 앞의 과격한 시위대 무리가 후방의 아나키 사회를 수호하기 위해 정부와 격전을 벌이는 최전방의 투사들처럼 생각되었다. 

명박산성을 뛰어넘어 청와대로 진격하는 게 대체 미국산 쇠고기랑 무슨 상관이 있는지 나는 지금도 잘 모르겠다. 스티로폼까지 준비했던 그 과격한 정치 조직은 대체 청와대까지 쳐들어가서 뭘하려고 했던 걸까. 이명박 볼기라도 때리려는 계획이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당시에 어쨌든 산성을 넘자는 사람들을 지지하는 쪽이었다. 순전히 그건 아나키적 해방 공간이 좀더 확대 지속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이후로도 나는 무질서하고 방만한, 그러면서도 이유없이 달뜨게 되는 집회 특유의 이상야릇한 분위기를 만끽하러 촛불에 몇번 더 참여했었다. 촛불시위 때를 돌이켜보면, 나는 정치적으로 진보도 보수도 아니었다. 나는 그저 불순분자였다. 내가 좀 더 평화를 지향했다는 점만 빼면, 촛불을 핑계로 억눌린 생의 에너지를 분출하고자 닭장차를 때려부쉈던 사람들(분명 이런 자들도 있지 않았을까?)과 나는 심정적으로 완전히 한패였던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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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9-02 08: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9-02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수양 2010-09-02 2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기자들 월급은 나와야 하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