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 - 알프스에서 만난 차라투스트라 클래식 클라우드 2
이진우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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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옛날 옛적에 니체를 읽었던 적이 있었다.

그 때 읽었던 책이 입문을 위해 이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이야? 아 자서전이란게 있네?

이래서 본게 <이 사람을 보라>

처음에는 키득거렸던 것 같다. 제목도 어찌나 잘 써주셨는지....

이 책 속 소제목이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뭐 이런식이었다.

아! 이 무슨 자뻑 대마왕이란 말인가?

지금의 나보다는 훨씬 위선적으로 겸손했던 - 지금은 아주 절절하게 진심으로 겸손하다. 인생의 쓴맛을 제법 본 덕분에....

젊은 시절의 나는 저 제목들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더 감당할 수 없는 게 있었으니 바로 내용이었다.

아 도대체 무슨 말이야.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책이 정녕 한글 번역본이 맞단 말인가?

그래 한 줄 한줄은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근데 문단을 읽었는데 왜 머리속에 아무것도 안 떠오르지? 왜? 왜? 왜?

아 나는 바보인가봐....ㅠ.ㅠ

 

그래도 그 때는 시간도 많고 인내심도 있어서 어쨌든 보기는 다봤다.

다 보고 나니 뭔가 니체가 말하려는게 여태까지의 통념적인 상식과는 다르다는 그냥 느낌만 느껴졌었다.

그냥 느낌이다. 내용은 모르겠다.

 

지금보다 훨씬 용감했던 나는 다음 책으로 <도덕의 계보>를 집어들었다.

보다 보면 언젠가는 알 수 있을거야라는 별로 신빙성도 없는 느낌만으로...

그래도 <도덕의 계보>는 <이 사람을 보라>보다는 좀 나았다.

일단 뭘 말하려는지 큰 줄기는 알 것도 같았다.(여기서 알 것도 같다는 말은 중요하다. 왜냐? 안다는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알 것같다는 것과 안다는 것은 전혀 다르다. 나는 여전히 니체를 모른다.)

 

<도덕의 계보>에서 말하는 건 결국 현재의 도덕, 도덕적 기준, 선악의 기준 이런 것들이 절대적인 진리가 아니라는 것을 설파하는 듯했다.

그래서 말 그대로 계보, 즉 도덕의 기원까지 따라 올라가면서 현재의 선악 이분법의 도덕이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이것이 어떻게 인간의 본성을 억압하는지,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따른 삶이 왜 중요한지 등등을 얘기하고 있었다.

근데 이건 내가 이렇게 이해한 바가 이렇다는 거지, 이 책의 서술과 논리 전개 과정은 전혀 논리적이지 않고 친절하지도 않으며 요약정리도 거의 불가능한 것이었다.

어쩌면 나는 니체의 책에서 글을 읽은게 아니라 행간과 행간을 띄엄띄엄 읽었던 느낌이다.

그리고 내 맘대로 아 이건 이런 뜻인가봐라고 생각했던 듯하다.

 

원래는 마지막 책으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읽으면서 니체의 생각을 1차 정리해보려고 했었다.

그러나 나의 용기는 딱 2권째 <도덕의 계보>까지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니체를 잊고 살았다.

차라투스트라까지 읽으면 나도 춤을 출 수 있을까 싶었지만, 뭐 춤을 못춰도 사는데 별 지장은 없었다.

 

지금 저 오래된 기억을 소환시킨 이 책은 니체 전문가이면서 니체의 삶의 궤적을 따라 가며 니체에 대한 이야기 또는 해설서이다. 또 한편으로는 니체처럼 생각하기를 실천하는 학자의 여행기이기도 하다.(오래전에 질린 니체를 지금 내가 읽은 건 이게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2권이기 때문이다. 숫자나 순서에 일종의 강박이 있는 나는 1권 셰익스피어가 좋았기 때문에 이 시리즈를 완독하기로 결심했고, 완독은 당연히 한권도 빼지 않고 순서대로 읽어야 한다는 강박에 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

 

이 책 역시 참으로 니체적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다는 뜻이기도 하고, 니체가 생각했던 방식대로 책의 쓰여졌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이게 읽다보니까 뭔가 아! 하는게 있다.

니체의 말을 다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니체를 읽는 방법이 보인다.

그러니까 니체를 읽을 때는 먼저 내 머리부터 비울 일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기본적으로 책을 읽을 때 나의 머리는 준비자세를 취한다.

특히 그 책이 인문 사회과학같은 이론서일 때는,

"자 너의 머리를 준비해! 지금부터 너의 머리를 풀가동해서 가장 합리적이고 가장 논리적으로 굴려. 그래야 너는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올바른 지식과 태도에 이를 수 있을거야." 딱 이 자세다.

그런데 딱 이 자세가 바로 니체가 격렬하게 비판하고 있는 바로 그 지점이었던 것이다.

 

논리적 합리적이란게 무엇인가?

이런 생각의 방법 역시 계보학적으로 따라가보면 결국 근대의 산물이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한 후에 이성과 이성의 작용인 합리성, 논리성은 모든 영역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져왔다. 사실 이건 소크라테스 이후 서양철학이 줄기차게 걸어왔던 길인데 데카르트에 이르러 한 획을 긋게 되는 것이다. 데카르트 이후 이런 이성과 합리주의의 전통은 근대의 위대한 너무도 유명한 철학자들, 우리가 안 읽어도 이름은 다 아는 헤겔, 칸트, 마르크스 이런 이들에 의해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 것이다.

 

가만히 상상해본다.

여기 홀로 칼을 빼들고 춤추는 이가 있다.

이성이 아니라 디오니소스적인 감성과 본능, 이성과 합리의 영역을 넘어선 자유, 인간이 만든 선악의 카테고리를 벗어나 자유의지대로 살아가는 삶을 꿈꾸고 주장하는 이.

근대철학의 한가운데서 근대철학의 한계를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가 바로 니체다.

니체가 결국 정신분열을 일으킬 수 밖에 없지 않았을까?

너무 일찍 태어난 천재였던 것이다.

포스터 모던 - 근대 너머를 너무 일찍 기획했던 니체의 마지막 삶이 광인이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이 가버린다.

 

그런데 이런 상황은 지금이라고 크게 다르지는 않은 듯하다.

내가 니체의 책이 그렇게 어려웠던 이유는 여러가지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를 생각해보았다.

앞에 말했듯이 나의 사고습관은 논리성과 합리성을 찾도록 자동 방향설정이 되어 있다.

그렇게 모던 - 근대를 뛰어넘자고 포스터모던 어쩌고 하지만 사실상 근대를 뛰어넘는건 쉽지 않다.

우리의 뇌의 작용방향은 아주 질기게도 근대의 이성을 향해 있다.

사실 이것의 가장 큰 이유는 학교교육에 있다.

답을 찾지 않는 학교 교육? 판단하지 않는 학교교육? 상상이 가는가?

제도권 학교교육이 너무 잘 되어 있어 국민 대부분이 이 과정을 거치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니체의 사고를 따라가는건 정말 어렵지 않을까?

 

그래도 참으로 다행스럽게도 우리 세상에는 내가 잘 못하고 모르는 분야가 있으면 꼭 먼저 가서 해보고 알려주는 이가 있다.

어디나 선생님들이 있고, 또 인터넷의 발달로 그런 선생님을 찾아가는 것이 너무 쉬워졌으니 이것만은 복받은게 틀림없는듯하다.

이 책의 저자 역시 그런 분인듯하다.

그 어려운 니체를 먼저 공부하고 니체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면서 니체가 사고했던 방식대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주면서

"자 어렵죠? 여러분! 하지만 불가능한건 아니예요. 그리고 완벽하려 애쓰지 말고요. 나도 지금 잘하고 있는 건지 확신은 없어요. 하지만 이렇게 니체의 말을 음미해보고 이렇게 생각해보고 살아보면 불가능한건 아니예요. 니체의 말을 잘 음미해보면 우리의 삶을 좀 다른 각도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지 않나요?"

니체가 위대한 것은 그의 사상의 내용이 아니라 그의 사고의 방법이었음을 이제는 알 것 같다.

 

내가 나를 학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닌 이상 니체를 또다시 찾아 읽을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니체의 생각의 방식, 사고의 방식을 어렴풋이라도 알게 된 것은 큰 기쁨이다.

오래된 열등감 - 책을 읽고도 이해하지 못한-을 이제 살짝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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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아베 내각의 혐한정책을 지지하는 일본 국민들의 의식 속에는 1990년대 중반 이후일본사회에 축적되어온 국내외적인 안전보장의 위기의식이 있다.
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또한 그것은 패전 이후 일본의 평화운동과혁신운동, 진보적 시민운동이 실패하고 패배한 결과라는 점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사실 일본회의를 중심으로 하는 아베의 극우보수주의는 결코 일본사회의 대안세력이 될 수 없다. 그럼에도 그들이 장기 집권하는 것은 미디어 여론전에서 주도권을 쥐고 음울한일본사회의 패배주의적 국민의식을 전전의 강한 군국주의 일본에대한 향수와 식민지배 의식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기 때문이다.
- P15

1965년에 역사문제는 청산하지 못했고, 1998년 체제에서도 문화개방은 했지만 역사문제는 봉합을 했는데, 2018년에 다시 제기된강제징용 문제에 대해 법원이 처음으로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인정했습니다.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을 위시한 연합국과 한일 양국 정부가 덮어둔 역사문제가 공식적으로 대두된 것이지요. 이는이제 한국과 일본의 정부가 식민지 지배의 불합리성 문제를 공식적으로 직면해야 된다는, 그러지 않고서는 한일관계가 진전할 수없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 P45

이렇게 본다면 북미 및 남북 평화 프로세스는 한반도와 동아시아가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일지 모릅니다. 만약에 이프로세스가 실패하면 일본의 극우보수세력은 두 번 다시 한반도에서 남북 공존 및 북미 평화 프로세스가 진행되지 못하도록 미국을 등에 업고 북한과 국지전을 감행할 것입니다. 여기에 한국에 또다시 보수정권이 들어선다면 그들 또한 일본의 보수세력과 이해관계가 일치할 것입니다. 우리가 현재 한국전쟁의 출구에 서 있는지,
아니면 제2차 한국전쟁의 입구에 서 있는지, 우리의 미래를 가늠할수 있는 시야를 가지고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 P50

다음 사진은 ‘도미다 메모‘라는 것입니다. 도미다 아사히코(富田朝彦)는 천황을 보좌하는 국내청장관으로 천황의 비서였지요. 이메모에는 A급 전범이 합사된 이후 천황이 한 번도 참배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1989년에 죽은 히로히토(쇼와) 천황과생전 퇴임을 한 현재의 상황(上皇) 아키히토 천황은 1978년 이후 한번도 야스쿠니에 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키히토 천황이 평화주의자이고 아버지의 전쟁에 대해서 반성을 했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안 갔다는 평가도 있지만, 야스쿠니에 전범이 합사된 것에 불만을 품었던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 P58

일본이 진정한 군국주의 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런 쇼만으로는부족했습니다. 절대천황제가 되어 군통수권을 천황에게 주는 것도필요하지만, 현재 일반종교시설인 야스쿠니를 국가시설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장래 벌어질 전쟁에 일본인들이 천황의 명령으로 참전하고, 전몰 장병은 야스쿠니에 합사되어야만 완벽하게 전전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전쟁을 할 수 있게끔 안보법을 추진하는 동시에 수상들이 야스쿠니를 참배해서 야스쿠니를상징화하고 국가시설화하는 작업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 P67

야스쿠니는 명부 하나만으로, 수많은 이들이 잠든 미국 알링턴국립묘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는 유골이 올 때마다 묘지가 하얀 십자가로 덮이고 갈수록 면적이 넓어지고 있는데, 일본에는 그런 국립시설이 필요 없는 것이지요. 야스쿠니는 명부 하나로 수없이 많은 이들이 죽은 전쟁을 소화해버렸습니다. 그런 식으로 끔찍한 전쟁을 잊어버리게 했지요. - P70

다카하시 교수의 의견은 결국 국가나 민중이 죽음을 주도하고미화하며 계승하는 것 자체가 야스쿠니의 희생의 논리와 연결될수 있다고 원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국가나 민중이희생자들을 일절 추도하지 않는다면 국가폭력에 의해서 사망한 희생자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가릴 수가 없을 것입니다. 한국의 과거사 청산에서 국가폭력이 저지른 일들의 진상을 규명하고, 국가가 그에 대해 사죄와 보상을 하는 것은 두 번 다시 국가가 동일한폭력을 행사하지 않도록 하는 과도적 조치로서 필요한 일일지도모릅니다.
-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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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람들에게 받는 질문 중 약간 난감해지는 게 딱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람돌이씨는 집에 가면 뭐해?"란 질문이다.

 

이 질문이 나오는 건 항상 전날의 TV프로그램 얘기를 하는 중일 경우인데, 문제는 내가 TV를 보지 않는다는 거다.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같이 점심을 먹거나, 잠시 틈을 내어 수다를 떨 때 화제의 90% 이상은 항상 TV 드라마거나, 예능이거나, 뉴스거나, 스포츠거나 어쨌든 TV다. 역시 제일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건 당연히 드라마고.....

매일 얼굴 보고 사는 사람들한테 매일 아 못봤어요. 안봤어요라고 하다보면

결국 저 질문 "넌 집에 가서 도대체 뭐하고 노냐"라는 질문이 나오는거다.

 

대답이야 "저는 집에 가면 쉬는 시간에 책봐요."인데........

문제는 이렇게 대답할 때 사람들의 대응이 참 묘하다는 거다.

"하루종일 일하고 피곤한데 집에 가서 책이 봐지니?", "tv드라마 그 재밌는걸 어떻게 안보니?" "너 참 훌륭하구나." "우와! 대단하다" 등등 여기까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고, 가끔은 "집에 가서까지 책 읽으려면 머리 안아파?" 내지는 약간은 아니꼽다는 표정도 있다. 진짜로..... ㅎㅎ

 

여기서 긍정이든 부정이든 저  모든 반응들이 전제하고 있는 것은 퇴근 후 책을 읽는 행위가 휴식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내가 tv드라마를 안 보는 것은 뭔가 대단한 생각이 있어서가 아니다.

나도 한 때는 tv드라마 빠순이였다. 한국 드라마 뿐만 아니라 일드와 미드까지 손을 뻗친 적도 있었다.

다만 어느 날 그 드라마와 예능 프로들이 그냥 재미없어진 것 뿐이다.

 tv가 시시해진 순간, 이전 tv와 책이 나눠가지던 나의 시간을 온통 책이 차지한 것 뿐이다.

 

 

 드라마보다 재밌는 책은 너무 많다.

책을 읽는 것은 특별히 고상한 행위가 아니며, 뭔가를 결심하고 각잡고 해야 하는 행위도 아니다.

공부가 아니라 그냥 재미있고 즐거워서 책을 읽는 일이 내게는 훨씬 많다.

책을 통해  판타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좋고, 내 주변의 인물을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는 이야기도 좋고, 나에게 다른 생각과 시선을 알려주는 것도 신선해서 좋다.

재미없는 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건 앞부분 30여페이지만 보면 판가름 난다. 그냥 구석으로 슬쩍 밀쳐놓으면 된다.

아무도 나에게 그 책을 읽지 않는다고 뭐라 하지 않는다.

 

최근에 읽은 책 중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잠을 못자고 새벽까지 나를 붙잡고 있었던 이야기들.

결국 이 글은 이 책들을 이야기하기 위한 거였는데 하다보니 쓸데없는 서론만 잔뜩인 글이 되어 버렸다.

 

 

 

 

 

 

 

 

 

 

 

 

 

 

 

스티븐 킹의 신작 <인스티튜트 1, 2>

킹 아저씨는 정말 재미난 이야기꾼이다.

내가 하는 말이 아니라 전 세계가 인정하는게 맞을 거다.

그렇지 않다면 이 아저씨가 이렇게 오랫동안 나오는 책마다 화제가 될 리가 없을테니까....

요 근래에는 킹아저씨의 책 중  탐정 빌호지스 시리즈와 느닷없는 휴먼 소설 <고도에서>를 봤는데, 약간은 아 이건 킹아저씨가 아니야?

왜  외도를 하세요. 제발 제일 잘하는걸 해주세요라고 빌기도 했었다.

그리고 드디어 이 책 <인스티튜트>가 나왔다.

기관 단체 학회의 뜻을 가지는 이 단어는 말 그대로 이 소설 속 악의 축인 어떤 기관을 가리킨다.

이 기관 또는 학회에서는 약간의 초능력을 가진 어린 아이들을 납치해서 그들을 훈련시키고 정치적 내지는 모종의 목적을 위해 아이들을 이용한다. 주인공격인 루크라는 소년도 그렇게 납치된 아이들 중 하나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그 뒤쪽이 미칠 정도로 궁금하다면 그 책은 훌륭하게 성공한 책이다.

 

도대체 루크를 잔혹하게 납치한 이 단체의 정체는 무엇이고 목적은 무엇이란 말인가?

아이들의 진짜 대단치 않은 초능력은 과연 어떻게 그들의 원하는 바를 충족시켜 줄 수 있는가?

(정말 대단치 않다. 주인공 루크의 초능력은 염동력인데 그 정도가 겨우 빈 피자팬을 떨어뜨릴 수 있을 만큼??? 피자가 있으면 안된다. 무거워서.... ^^ )

아이들이 수용소에서 다음으로 가는 저 뒷편의 시설에는 과연 무엇이 있으며 이후 아이들은 어떻게 되는가?

아 루크는 도대체 언제 탈출하며, 어떻게 탈출할 수 있을 것인가?

 

독자는 물론 주인공인 루크가 탈출할 것을 당연히 알고 있으며, 또 다른 등장인물인 팀과 만나 어떻게든 이 사건을 해결하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또한 이 소설에서 나오는 기본 전제가 허구임 또한 알고 있으며 말도 안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설의 힘은 바로 그 말도 안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보이는 것 아닌가?

이런 점에서 스티븐 킹은 가히 천재적이다.

 

책 전체에 비해 결말의 임팩트가 약간 떨어지는 감이 있다.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광기 또는 잘못된 신념이 습관적 관행이 되었을 때 그것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보여주는 나름의 현실적인 결말이었다는 생각도 든다.

 

드라마를 볼 시간이 없다.

너무 재밌는 책을 만나면.....

 

또 하나 요 며칠 째 나를 확 열광하게 한 책

 

 

 

 

 

 

 

 

 

 

 

 

 

 

 

 

 

<시녀 이야기>의 뒷편이 나와주었다. 무려 34년만에!!!!

34년이라니?

책 속의 시간도 겨우 15년 후인데, 실제 시간으로 34년 뒤라니.....

작가는 무슨 말을 더 하고 싶었던 걸까?

34년간 묵힌 이야기는 과연 무엇일까? 궁금즘만으로 후덜덜이라는 말이 안나올 수가 없다.

34년만의 후일담이라는 것만으로도 안 읽을 수가 없는 책이다.

그것도 <시녀이야기>의 후속편이잖아.

<시녀 이야기>를 읽은지 10년도 훨씬 넘은 것 같고, 책장에 있던 내 책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그럼에도 <시녀 이야기> 속 길리어드라는 가상국가의 충격만 머릿속에 남아있는 상태.

 

사실 나에게 <시녀 이야기>는 엄지 척 하고 싶은 최고의 작품은 아니었다.

옛 기억에 어렴풋하지만 뭔가 2% 부족한 듯한....

그래도 2%만 부족한게 어딘가? 98% 부족한 책도 천지에 널렸는데.

그렇게 <증언들>의 독서를 시작

근데 정말 <시녀 이야기>보다 훨씬 더더더 좋은거다.

작품은 15년후 각자 다른 입장의 3인 - 길리아드 공화국의 여성정책을 전담 집행하는 기구의 리디아 아주머니(여기서 아주머니는 계급), 길리아드에서 체제 순응적으로 귀한 꽃 - 그래봤자 아이를 낳을 도구에 불과하지만 -으로 자란 아그네스, 그리고 인접국가 캐나다에서 자라고 있는 소녀 데이지의 증언들을 모아놓았다.

 

이 중 가장 흥미롭고 공감이 가는 인물은 리디아 아주머니였다.

길리어드 공화국이 만들어질 때 지식인 여성들이 어떻게 공격당하는지, 여성들을 어떤 식으로 모든 정치 사회적 행위에서 배재시키고 말 잘듣는 고분고분한 도구, 꽃으로 만드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다.

책의 서사는 리디아 아주머니의 서사만 따라가도 흥미진진하고 한편의 작품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무것도 없는 하층민 가정에서 태어나 스스로의 노력으로 판사까지 되었던 강한 자존감을 소유한 리디아라는 권력에 굴복하는 과정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책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자동적으로 나라면 어떨까를 생각하는데 절대로 무조건 무너질 수 밖에 없을거다 싶다.

예전에 본 책 중 어딘가에서 유대인 수용소에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이 어떤 사람인지 본 기억이 있는데, 그게 의외로 어떤 순간에도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자신을 가꾸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못먹고 굶으면 육체가 죽지만, 최소한의 물과 화장실 시설 등이 주어지지 않아 최소한의 위생이 유지될 수 없으면 인간의 자존감이 무너진다.

분비물의 냄새와 흔적을 온 몸에 묻히고 나와 타인이 모두 서로에게 악몽이 되는 순간 인간의 마음은 죽는 것이다.

그것을 교묘하게 이용하는 길리아드의 남자들을 보면서 이 체제가 만들어진 과정, 이유, 그리고 몰락의 이유까지 이해가 갔었다.

그런 인간의 바닥까지 치고 갔던 리디아가 끝내 복수를 생각할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왔을까?

나는 그것이 인간의 신비라고 항상 생각한다.

누구보다 비굴한 것이 인간이지만 누구보다 용감하고 고귀한 것이 또 인간이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의 밑바닥을 겪고도 일어설 수 있는 인간의 존재

<증언들>이라는 이 책을 한 순간도 손에서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은 바로 이 강력한 리디아 아주머니라는 캐릭터의 힘이었다.

 

이 책에서는 또 한명의 인상적이 여성이 나온다.

그 여성은 단역이다.

단 한장면, 단 한줄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나는 그 여성이 너무 인상적이었다.

인간으로서의 자존감을 지키기 위해 스스로 복수와 죽음을 택하는 여성이다.

스타티움에서 동료를 살해하라고 명령받았을 때 그 명령과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으려면 어느만큼의 용기가 필요할까?

그런데 참 역사를 보면 늘 그런 사람들이 있어왔다.

그 아름다운 사람들이 세상을 그래도 살만한 곳으로 만들어준다.

 

 

소설이 가지는 흡입력과 즐거움을 만끽하게 해주는 2권의 책으로

나는 역시 드라마보다는 책읽기가 더 즐겁다는 것을 한 번더 확신한다.

책 읽는게 뭔가 특별한 행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높여 알리고 싶다.

드라마만큼 아니 드라마보다 더 재밌어서 보는게 책이라고....

책을 읽는다는건 뭔가 그리 거창한 행위도 아니고,

책을 읽는다고 아주 똑똑한 것도 아니며,

그저 아주 많이 즐거운 행위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내 주변에 나와 같이 책을 읽어주는 사람이 좀 많아졌으면,

휴식시간에 드라마 얘기 말고 책이야기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좀 더 많아졌으면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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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0-09-24 15: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퇴근하면 티비 보는 대신 책을 보는데요, 책이 너무 재미있기도 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저에겐 휴식 시간이에요. 업무 모드, 근무 모드의 저에서 비로소 벗어날 수 있는 시간이요. 그래서 저는 책읽는 시간을 좋아합니다. 자기 전에 책을 한 장이라도 읽어야 뭔가 오늘 하루도 내가 좋아하는 일에 시간을 썼구나, 하고 마음이 편안해져요. 제겐 휴식입니다.

증언들 갖춰놓기만 하고 안봤는데 얼른 보고 싶네요.
그리고 스티븐 킹이 이야기꾼이라는 말씀에는 동의합니다!

바람돌이 2020-09-24 16:03   좋아요 1 | URL
저도 마찬가지예요. 원래 좋아서 하는 일이 휴식이죠. 저는 좀 변화한거 같아요. 책이야 늘 좋아해서 옆에 두기는 하지만 열렬하게 좋아하는 것들은 조금씩 변화해왔어요. 영화에서 드라마로 여행으로..... 그리고 요즘에 이르러 그 열렬함이 책으로 좀 옮겨갔다는 느낌이 들어요. ㅎㅎ

증언들 빨리 보세요. 재밌어요. ㅎㅎ 제 생각에 다락방님도 리디아 아주머니를 아주 흥미진진하게 보실듯해요. ㅎㅎ

stella.K 2020-09-24 15:4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그렇죠. 드라마든 책이든 좋아서 빠져 들면 좋은 거죠.
둘 다를 좋아하기는 힘들 거라고 봅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저는 젊었을 땐 드라마가 시큰둥했습니다.
근데 나이들기 시작하면서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드라마도 괜찮은 게 많아요.
저는 드라마를 보느라 영화가 좀 멀어졌어요.
이러다 또 언젠가 책이 좋아지고, 영화가 좋아지는 날이 오겠죠.

저는 뭐하느라 킹 아저씨 책을 못 읽고 있나 모르겠습니다.
킹 아저씨의 색다른 도전이 저는 좀 궁금하네요.
암튼 글을 너무 잘 쓰셔서 소개해 주신 책 다 읽어 보고 싶군요.
그러고 보면 바람님은 책을 정말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아, 저는 요즘 ebs에서 하는 강연 프로 졸면서도 열심히 보고 있습니다.
어떤 강연은 내 분야가 아니라 좀 듣기 힘든 것도 있는데
자꾸 듣다 보면 어느 날 책 읽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머리에 들어 오든 안 들어 오든 그냥 듣고 있습니다.ㅋ

바람돌이 2020-09-24 16:24   좋아요 1 | URL
드라마 마지막 본게 김혜수 나오던 시그널이네요. ㅎㅎ
아 저 드라마 진짜 재밌었어요.
올 여름에는 네플릭스 드라마 막 추천받고 그랬는데, 한편을 보고 나도 뒷편이 안 궁금하더라구요. ㅎㅎ
그냥 이게 싸이클이 있는거 같아요. 돌고 도는게 인생이듯, 취향도 돌고도는듯... 아 유행가 가사같다. ㅎㅎ

제가 제일 못하는게 강연듣기예요. 귀가 모지리예요. ㅎㅎ
강연 듣고 있으면 최소 3분의 1은 못알아듣습니다. 딴 생각하다가요. ㅎㅎ

stella.K님도 언젠가 킹아저씨를 만나시기를요. 재밌어요. ㅎㅎ진짜루요. ㅎㅎ

파이버 2020-09-24 2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티비는 잘 안봅니다.... 집에 티비가 없기도 하지만 영상물은 정보가 귀와 눈으로 한꺼번에 들어오다 보니 피곤😪하더라구요ㅠㅠ

스티븐 킹은 영화로만 접했는데 항상 소재가 신선한 것 같아요 바람돌이님 리뷰 덕분에 언젠가 소설책도 도전해보고 싶어졌어요!

바람돌이 2020-09-24 22:49   좋아요 1 | URL
시실 우리들 대부분이 tv와 책을 다 즐길만큼 시간이 안되는게 문제인 것같아요. 전 나중에 퇴직하면 tv와 책을 다 껴안고 살지도 모르겠어요. ㅎㅎ

킹의 소설은 아 피곤하다 스트레스 쌓이네싶을 때 읽기 좋은 것 같아요. 읽다보면 책 말고는 다 잊어버리거든요. 그럼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들도 시간이 좀 흘러 거리를 가지고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지요. 어쨌든 결론은 재밌다입니다. ^^

문화향유자 2021-06-28 17:37   좋아요 1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ㅎㅎ 전 TV를 전혀 안 보는건 아니고, 본방사수는 안합니다. 보고 싶은거는 인터넷에서 다운을 받아서 봐요. 그게 항상 보는게 정해져 있어요. 영화는 많이 보지만 드라마는 잘 안 봅니다. (2시간이면 끝날이야기를 쭉쭉 늘려서 짧게는 10회, 길면 20회 넘게 봐야하는 시간이 아까움)
저도 TV프로그램 잘 모르고, 드라마도 잘 모르니까 이상한 사람 취급을 많이 당했어요. 안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모르는게 그렇게 이상한가? 그것말고도 할게 많은데, TV보는거 말고는 다 쓸데없는 일로 보이는거 같아서 의아하더라구요.

바람돌이 2021-06-29 09:15   좋아요 0 | URL
가끔은 tv를 안봐서 내가 부끄러워해야 하나? 이런 느낌 있죠. ㅎㅎ 근데 또 알고보면 그 사람들 대부분이 저한테 별 관심없더라구요. 그래서 이제는 그냥 가만 있습니다. ^^ 책 이야기를 맘껏 할 수 있는 모임이 딱히 많지 않다는게 가끔 좀 외롭기는 해요. 그래서 여기 서재에서 계속 놀고있는듯요. ^^
 

전작인 시녀 이야기보다 더 좋다.
시녀 이야기에서 모호하던 것들이 분명해지고,
길리어드라는 나라의 정체도 훨씬 명확해지면서 인물들의 현실감과 생동감도 더 살아나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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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은 기다리는 여자의 차지다. 시간이 흐르면 모든 뒷굽은닳는다. 인내심은 미덕이다. 복수는 나의 것이다.
이 고색창연한 지혜의 말들이 언제나 진실인 건 아니지만 가끔은맞는다. 여기 언제나 옳은 말이 하나 있다. 모든 건 타이밍에 있다.
농담이 그렇듯.
- P361

너무나 평화롭다. 거리들은, 너무나 고요하고, 너무나 정연하다. 그러나 기만적으로 평온한 표면 아래로, 전율이 흐른다. 고압선 근처에 있는것처럼, 우리 모두는, 가늘고 팽팽하게 당겨져 있다. 우리는 진동한다. 우리는 떨고 있다. 우리는 항상 경계를 놓지 않는다. 흔히 공포정치라고 말하곤 하지만, 정확히 말해 공포는 정치를 하지 않는다.
대신 공포는 마비시킨다. 그렇게 해서 부자연스러운 정적이 내려앉는다.
- P398

그때까지는 길리어드 신앙의 정당성을, 특히나 그 진실됨을 심각하게 회의한 적이 없었어요. 내가 완벽한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을수는 있으나, 그건 내 잘못이라고 치부하고 말았거든요. 그러나 길리어드의 손에 무엇이 변화되고, 무엇이 덧붙여지고, 무엇이 생략되었는지 알았을 때는, 자칫 믿음을 잃게 될까 봐 두려웠어요.
여러분은 믿음을 가져 본 적이 없으니까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실거예요. 그건 마치 가장 친한 친구가 죽어 가는 느낌이에요. 나를 규정하는 모든 것이 불타 사라지는 느낌, 이 세상에 덩그러니 혼자 남는 느낌이에요. 어두운 숲에서 길을 잃은 것 같은, 추방당한 느낌이에요. 타비사가 죽었을 때 내가 느꼈던 그런 감정이에요. 세상이 품고 있던 의미가 싹 비워지고 있었어요. - P433

그 경우, 나는 내가 이토록 힘겹게 쓴 이 페이지들을 파괴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그와 함께 당신도 파괴해야 할 것이다. 내 미래의 독자여, 성냥불을 화르르 붙이면 당신은 사라지리라. 한 번도 존재한적 없고, 영영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싹 지워지고 말 것이다. 내가당신의 존재를 부정하리라. 얼마나 신과 같은 기분인가! 절멸의 신이라 해도 말이다.
나는 흔들린다. 나는 흔들린다.
그러나 내일은 또 다른 날이다.
- P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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