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올해가 시작되던 1월 4일에 포르투갈 간다고 자랑질 하는 글 하나 써 놓고는 내내 서재를 비웠다.
포르투갈 가서는 나의 사랑하는 가족 말고 나의 사랑하는 술친구들이랑 갔더니 진짜 낮이고 밤이고 술 마신다고 핸드폰 꺼내서 뭘 끼적거릴 시간이 하나도 없었다.
다녀와서는 구구절절 얘기할 건 없고 그냥 좀 많이 바빴고, 중간 중간 짧게 바쁘지 않은 시기에는 관성으로 그냥 쭈욱 서재를 방치했고, 그리고 4월부터는 술술 넘어가는 소설들로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5월이 되니 서재에 풀 뽑아야겠다 뭐 그런 생각이 든다는 거다.
포르투갈 여행기는 천천히 정리하기로 하고...
그래도 알라딘 서재인데 읽은 책 정리부터 하는 게 도리일 듯하지만 앞에 읽은 책들을 다 쓸수는 없고, 그냥 내 맘대로 써보자.
사랑하는 김초엽 작가님의 <파견자들>
이 책은 사실 리뷰도 반 정도 썼었는데 서재 방치하다가 날렸다.
외계 생명체에 의해 지구인들은 이제 더 이상 지상에서 살 수 없게 된 시대, 살아남은 지구인들은 지하세계에서 근근히 생존을 이어간다.
지구인들의 꿈은 당연히 외계 생명체들을 물리치고 지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이다.
이 지구가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지구인들의 생각이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구를 정말 지구인의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구도 지구에게 그런걸 물어볼 생각도 안한건 아닌가?
외계 생명체가 지구의 입장에서도 과연 침입자인가?
김초엽작가가 일관되게 써오는건 다름에 대한 태도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하고 그 극단까지 질문을 던지는 것 - 그래서 나는 김초엽 작가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이다.
지하세계의 주류 인간들에게 대항해 외계 생명체와 공존할 방법을 찾아낸 다른 인간들이 등장하고 그 공존의 방식은 파격적이다. 또한 아름답다. 단편들이 아름다운 작가로만 남아있던 - 첫 장편이었던 <지구 끝의 온실>은 단편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많았기 때문에 - 내게 장편에서도 아름다운 작가가 되었다.
가부장의 반대 가녀장인가?
아니면 가난한 집안의 기둥으로 고군분투하는 여성의 각성기인가?
가녀장이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궁금해서 읽었는데 이슬아 작가에게 매혹되었다.
아 요즘 우리나라엔 왜 이렇게 훌륭한 여성작가님들이 많은 것인가?
가녀장은 집안의 생계를 책임지는 그 가녀장이 맞다.
그런데 흔히 예상하는 것과 비슷한듯 또 많이 다르다.
작가자신의 이야기를 픽션과 논픽션을 적절하게 섞어 놓아 이 책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구분하기 힘들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이 독특한 가족 - 1인 출판사를 운영하는 가녀장과 이 출판사의 직원으로 일하는 아버지와 어머니라는 소재도 독특했지만 그들이 새롭게 만들어가는 가족 모델이 흥미진진하다.
사랑과 애정으로 맺어지는 것이 가족이라는 것은 허상이다.
그것이 사랑과 애정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희생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노력이 있어야 하고, 각자의 공간과 삶의 방식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 그 때에 가족은 애증이 아니라 애정으로 맺어진 관계가 된다.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을지도 모를 새로운 가족의 모델이야기 웃다가 뭉클하다가 그렇게 아름다웠다.
아! 오랫만에 그림책을 읽었다.
어린이를 위한 그림책은 아니고 모든 성별과 모든 연령의 그저 사람들을 위한 그런 그림책.
모든 장면이 아름다운데 그 모든 장면들은 모든 우리들의 삶의 장면들이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내 삶이 지나온 날들이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던 듯 미소짓게 되고, 남아있는 날들도 그리 두렵지 않게 된다.
가격이 사악하지만 모든 페이지가 소장하고 싶은 그림들이다.
중간쯤에 사랑에 빠졌던 시절의 그림은 세 페이지나 되는데 그건 성적 균형을 위한 페이지다.
연인은 남녀, 여여, 남남이 각각 서로 서로 껴안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있다.
노르웨이의 성인식이 우리보다 앞서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준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그림책이라면 여여 또는 남남이 부둥켜 안고 사랑하는 모습을 그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너무 뻔한 모습들이 예상되어서 슬펐다.
잭 리처 시리즈도 이제 몇권 남지 않았는데 이번 책에 나는 무려 별 5개를 주었다.
왜?
그건 리처가 드디어 2번째가 가장 좋다는 주술에서 벗어난게 첫 번째 이유다.
2번째보다 3번째, 아니 4번째 회수를 거듭할 수록 더 좋다는걸 깨닫고야 만다.
이거야말로 찐사랑인 것인가?
우리 리처가 드디어 사랑에 빠졌다.
하지만 우리는 알지.
다음 편에서는 리처는 또 혼자일거고, 다른 여성을 만나겠지만..... ㅎㅎ
별 5개를 준 두 번째 이유는 이번 편이 내게는 가장 소름돋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리처 시리즈가 끔직한 사건들을 다루지만 그간이 사건들은 우리 나라같은 땅에서는 사실 현실감이 떨어지는 그저 픽션으로 즐기면 되었는데 이번 편의 사건은 이제는 어디서나 이런 범죄가 생기고 있어 더 끔찍했달까?
오랫만에 로맨스 소설을 읽었다.
로맨스는 이제 좀 식상하다 싶었는데 아 이 책 너무 재밌는거다.
다락방님이 재밌다 할 때 좀 더 빨리 새겨들을 것을.....
톡톡 튀는 유머코드도 좋고 감정표현에 진짜 젬병인 남자의 짝사랑도 살짝 두근거린다.
또한 이 인물들의 직장이 무려 나사(미국의 우주항공국 그 나사 말이다.)인데 여기서도 여성들은 차별을 이야기하는걸 보며 아 정말 세상이 아름다워지기 힘들구나하며 여성들의 투쟁에 무한 응원을 보내게 되기도 한다.
가볍게 읽기 좋으니까 이 작가 책 다 찾아봐야지 했더니 번역된게 달랑 2권이네....
아쉽다.
지금은 헝가리 작가 서보 머그더의 <도어>를 읽고 있는데 3분의 1쯤 읽었다.
아직도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고 프롤로그만 계속되는 느낌인데....
많은 분들이 추천했던 책이니 프롤로그는 언제 끝나는거야하면서 읽고 있는 상태
확실한건 여기 알라딘 서재에 들어와서 열심히 쓰고 서재 지인들의 글도 열심히 읽고 해야 책읽기도 힘이 붙는다는 거다.
안 읽어서 안 쓰는게 아니라 안 쓰기 때문에 안 읽게 되는게 맞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자랑질 겸 서비스 사진
포르투갈 아우구스타 개선문에서 바라본 코메르시우 광장이다.
전면에 보이는 거 바다 아니다. 테주 강. 엄청 넓어서 아무리 봐도 바다 같지만 강이란다.
이 강의 하구에서 바르톨로뮤 디아스나 바스코 다 가마가 대서양으로 나아가 인도로 가는 길을 찾아 출항했다.
포르투갈 여행기는 꼭 써야지 다짐하는 사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