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학교에서 프린트 용지가 하나 담임들에게 쭉 돌았다.
3학년 학생 하나가 익명으로 교장선생님에게 졸업여행에 대한 불만과 건의의 내용을 적은 것.

내용은 졸업여행을 왜 전라도 쪽으로 가느냐?
제주도를 가고싶다.
들으니 돈때문에 제주도를 안간다는데 애들 전체가 5천원씩 더내면 되는거 아니냐?
그래서 돈이 안되는 아이들을 보조해주면 안되나? 뭐 이런 내용이었다.

사실 졸업여행지를 선정하는데는 여러가지 논란이 많았었다.
3학년 담임들이 처음에 제주도를 추진했지만 교장선생님이 아무래도 어려운 아이들이 많은데 비용이 많이 부담스럽지 않겠느냐는 말에 담임들도 수긍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한 반의 3분의 1정도는 졸업여행이 많이 부담스러운 아이들이다.
졸업여행이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겠지만 보다 많은 아이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게 더 중요하지 않겠느냐는 교장선생님의 말에도 일리는 있었기에 결국 늘 가던 전라도 쪽으로 결정을 봤었다.
그 외에도 후보지가 있었지만 결국 400명이 넘는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묵을 숙박지의 문제는 또 큰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데 이런 결정에 대해서 아이들에게 대충 얘기를 했었는데
오늘 이 사건이 터진거다.
요즘이야 이런 일이 생긴다고 해서 해당 아이들을 잡아내서 어쩌고 하는 일은 없다.
다만 아이들이 이런 생각을 많이 하는것 같으니 담임들이 알아서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라는 얘기였다.

근데 이런 얘기를 받아들이는 교사들의 태도가 참 안바뀐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에 이 편지를 읽고 내가 보인 반응은
그래도 지 나름대로 논리를 펴서 이런 얘기를 하는걸 보니 뭐 나름대로는 기특하네요 정도였다.
그런데 나의 그런 의견은 많은 이의 분노를 사더구만....
사실상 아이의 논리가 엉성한 것은 분명하지만 학교의 결정에 대해서 이런 일종의 투서형식으로 글을 보낸다는 자체를 용납을 못하고,
또 아이의 입장에서 논리를 이해하기보다는 어른인 교사의 입장에서 말도 안되는 논리라고 묵살하는 태도가 많이 나타났다.
이건 좀 서글프다.
학교에서 학생들에 대한 교사의 많은 생각들이 변하긴 했지만 아직도 참 멀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어쨌든 이런 생각이 있는데 묵살하는건 옳지 않다 싶어서 종례시간에 아이들에게 이 이야기를 꺼냈다.
뭐 대충 너네가 생각하고 있는거처럼 학부모에게 돈을 더 걷는다는건 선생님들이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졸업여행이라는 것의 의미와 선생님들의 논의과정에서 어떤 문제들이 주로 얘기되었는지 과정등을 얘기해줬는데....

어라??? 이거 분위기가 묘한 것이 딱 짚이는 것이 있다.
이 투서!!! 우리 반 녀석의 짓이다.
누굴까??? 갑자기 궁금해 죽겠네...

마지막 확인 사살차 청소시간에 지나가는 말로 한 녀석에게
" 야 그 편지 우리반에서 쓴 거지?"라니
씩 웃으며 "아무래도 그런것 같지요?"라고 지나간다.

뭐 차라리 우리반이라 그거 쓴 녀석이 별다른 상처받지 않고 넘어갈 수 있을 것 같아 다행이다.  ^^


댓글(11)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하늘바람 2006-09-28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용감하고 멋진 학생을 두셨네요.
밝혀지면 혼날 각오를 하고 썼을 테니까요.
어떻게 해도 늘 학교에 불만이었던 시기가 바로 중고등학교같아요. 하다못해 소풍가는 날까지도 맘에 안들어 하죠.
많이 힘드시겠어요.
바람돌이니미 화이팅입니다

바람돌이 2006-09-28 1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들이 그렇죠. 사실 자기 논리에 한 번 갇히면 그것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하는건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 상황에 대해서 교사들이 어른으로서 조금만 더 너그러워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호인 2006-09-28 14: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젊은이들의 합리적인 생각이 필요한 사회입니다. 기성세대의 틀안에 합리적인 사고를 묻으려고 하면 시대를 역행하는 것일 것입니다. 가정이든 회사든 또한 학교까지도...

바람돌이 2006-09-28 14: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요즘 젊은이들이 더 합리적이다 뭐 이런 생각은 별로 안듭니다. 저 글을 썼던 아이의 생각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고요. 다만 인간간의 소통에 대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나보다 어리기때문에 간단히 무시해버리거나 하는 태도들 말이죠.... 소통이 단절되면 결국 어느쪽이든 균형감각을 잃기쉽겠다는 생각을 하고 제대로 된 판단능력을 가지지 못하지 않을까 뭐 그런 생각입니다.

BRINY 2006-09-28 15: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그나마 다행이었네요.

날개 2006-09-28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우리애가 바람돌이님같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 다닐때 다른 의견이 있어도, 혼날까 무서워 제대로 말도 못하고 보냈던게 참 잘못됐었다는걸 많이 느껴요..

바람돌이 2006-09-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BRINY님/고녀석도 그렇게 생각해줄줄은 모르겠네요. ^^
날개님/사실 지금도 말하기 어려운건 마찬가지죠. 그러니까 우리반 녀석도 아마 투서형식으로 얘기했을거고.... 게다가 어차피 담임인 저한테는 말해봤자 아무 소용없다는걸 일치감치 캐치한 면도 있을거구요. 근데 저는 별로 좋은 담임은 아녜요. 그냥 나쁜 사람만 되지말자 정도? 사실 애들한테 미안하고 제대로 못챙겨주는 면도 많거든요. ^^;;

반딧불,, 2006-09-29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흠.생각이 많으셨겠어요.

2006-09-29 08: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반딧불,, 2006-09-29 1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댓글 달다가 장대씨한테 쫓겨났어요. 자라고..흑흑.
중학생때 논리적이기 보다는 비약으로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 경우가 제법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저런 것들을 쓴 것을 보면 그래도 사고가 자유로운 아이겠군요. 조금더 먼저 님께 상의를 했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바람돌이 2006-09-29 15: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속삭인님/뭐 요즘은 밖에서 하는 욕들에 그냥 그러려니 합니다. 처음에는 정말 열 많이 받았거든요. 그리 쉬워보이면 니가 와서 해봐라 하고싶은..... 그놈의 월급도 니가 그거 받고 혼자서 벌어 가족 먹여살려봐라 싶은 생각도 많이 들고요.
감기 빨리 나으세요. 저도 지금 갑자기 감기가 심해지는게 오늘 병원에 가봐야 할듯하네요. ^^
반딧불님/그렇다고 후속편까지.... ㅎㅎㅎ 아이들이란 원래 어른들보다 자기 중심적이고 직관적인 사고를 하는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어요. 사실 우리도 어릴때 다 그랬던 것 같은데 왜 어른들은 그 때 생각들을 다 잊어버리는지 모르겟어요. ^^ 근데 우리반 그 녀석이 제게 먼저 상의를 했으면 하는 생각은 별로 안합니다. 그전에도 이런 얘기들이 나왔었는데 제가 애들보고 "야 힘없는 내보고 백날 얘기해봤자 소용없다. " 뭐 이런 얘기를 농담삼아 했었거든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