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있었던 일.
방학을 맞아 교사연수라는 명목으로 먹고 마시고 했다.
학기말이라 무지하게 바빴던 관계로 사실 몸은 뻗기 일보직전.
정말 오랫만에 아이들을 할머니집에 맡기고 저녁 9시쯤 집에 들어왔다.
그랬더니 세상에....
옆지기가 갑자기 머리가 빠개질 듯이 아프다면서 헤롱거리는 거다.
일단 진통제는 먹었는데 아파 죽을려고 한다.
소주 한병과 기타 등등 먹고 약간 헤롱거리면서 들어왔는데 술이 반은 확 깨는 거다.

그런데 나의 나머지 술기운 바도 확 날아가게 하는 사건이....
갑자기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세상에 시어머니가 서 계신 것이다.
이게 무슨 일?
평소에 울 시어머니 왠만하면 우리집에 안오신다.
근데 오늘 시아버님이랑 부부싸움 하시고 너무 속상하다며 아들집에 오신거다.
오 마이 갓!!!!

집이라고는 엉망진창 쓰레기통이고, 보니 주무실 것 같은데 내일 아침 밥거리는 하나도 없고....
정말 술이 확 깨는 순간.
하지만 어떡하랴 오신걸.....
곧 옆지기는 어머니가 있든 말든 아프다고 엎어져 있더니 잠이 들고...
시어머니랑 나랑 달랑 둘만 남았다.
어머님 하소연을 좀 들어드리고....
하지만  영 어머님 불편하신 눈치다.

하기야 내가 그리 살가운 며느리도 아니고,
그나마 아이들이라도 있었다면 좀 나았을텐데...
게다가 아들은 뒤비져 자고....

내가 보기에도 어쩔줄 몰라하시는 게 보인다.
내 옷장 뒤져서 제일 그나마 커 보이는 옷을 잠옷으로 갖다 드렸더니,
그냥 가신단다.

솔직히 내 속마음
'휴 다행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들집에서조차 편하지 못하신 어머니가 애처롭다.
몇 번 이왕 나온거 그냥 주무시라고 얘기해봤지만 그예 나서신다.

돌아가시는 어머님 뒷모습을 보면서 저 나이대 대부분의 여자의 뒷모습을 문득 본다.
평생 자기거라고는 한 번도 제대로 가져보지 못한 삶.
이제 늙어 잠시라도 간절히 자신만의 공간이 필요할 때, 또는  피난처가 필요할 때 그마저도 만만치 않은 삶
시어머니나 친정어머니나.....

내가 좀 더 살가운 며느리였다면 좀 나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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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ninara 2006-07-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생각만 해도 머리가 지끈거리고 가슴이 벌렁거리고..
시어머님 오시는거야 겁이 안나는데..
평소에 청소를 잘 안하는지라..정말 놀랄것 같아요.
부모님이 화해하시길..

sooninara 2006-07-18 0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가..살가운 며느님이라 어머님이 여기서 머므신다면 두분의 전쟁이 더 오래갈듯..
시댁에 들어가시면 해결이 되셨겟죠? 맘 편하게 생각하세요^^

국경을넘어 2006-07-18 09: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들 땜에 더 속상하신 건 아닐 지... 방학해서 좋겠습니다. 저는 이번 주 토욜날인디요...

세실 2006-07-18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공 시어머니 뒷모습이 좀 처량해 보이십니다......그냥 집으로 들어가셨데요?
맞벌이 한다는 핑계로(?) 이래 저래 챙겨드리지 못하게 되는것 같습니다.
시엄니는 친정엄니랑 다르게 사소한 것에도 다소 서운해 하시는것 같아요. (바람돌이님이 서운하게 해드렸다는 말씀이 아니고 보편적인 이야기)
살갑게 해 드린다는것 나이가 들수록 더 힘들어요...전 처음엔 살가웠는데 점점 안 살가워져요....헤헤.
그저 어른이나, 자식이나 안싸우고 사는것이 최고!!!

바람돌이 2006-07-18 1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니나라님/ㅎㅎㅎ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의 차이! 집에 갑자기 오셨을때 청소에 신경이 쓰인다 안쓰인다정도? 뭐 시어른들 싸움이야 늘 투닥투닥인거죠. 사실 어떻게 보면 사랑싸움이기도 한 것이 얼마전에 아버님이 목의 종양 수술을 하셨거든요. 다행히 결과는 양성이라 괜찮았는데 결과가 나오자마자 조심하라는 의사의 말을 무시하고 친구분들과 놀러가신 아버님이 잘못하신거죠. ^^
폐인촌님/뭐 그래도 아들이니까요. 서운해도 금방 풀리시겠죠. 옆지기도 미안했는지 다음날 왠일로 자진해서 전화하더라구요. 거긴 방학이 늦게 시작하네요. 전 방학! 무지 좋아요. ^^
세실님/저는 시어머니한테 서운할 때가 많은데요. 아들하고 손자만 너무 사랑하세요. ㅠ.ㅠ

전호인 2006-07-18 17: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어머님과도 살갑게들 지내시구랴!!!!!
아유 불쌍하신 울 엄니들! ㅋㅋㅋ
어정쩡 하면 서로가 괴롭져. 어머니께서 탁월한 선택을 하셨네여.
그래도 아들 집이라고 찾아왔는뎅. 에고~~~

바람돌이 2006-07-18 22: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호인님/별로 안 살가워요. 어머님이나 저나 둘 다 좀 무뚝뚝해서....ㅎㅎㅎ
아들집인데 그냥 좀 무시하고 편하셨으면 좋겠는데 그건 또 안그런가 봐요. 며느리는 딸과는 다르겠죠.

치유 2006-07-19 0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 집안이 엉망일때 시어른들 오시면 정말 난감하더라구요..친정식구들 하곤 다르게..ㅠㅠ
시어머님 가깝게 사셔서 그렇게 들리셔도 님 불편한것 아시고 그렇게 그냥 가셨나 봐요..뒷모습이 울 엄마 모습은 아닐까..생각하네요..며느리는 그냥 좀 어렵다더라구요..
아참,
그래도 하소연 다 들어주셨으니 그걸로도 충분하지요..

바람돌이 2006-07-19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꽃님/저희집은 늘 엉망입니다. ㅎㅎㅎ 따라서 언제라도 난감하죠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