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우리 반 녀석 넷이 사고를 쳤다.(무슨 사고인지는 짐작만 하시라....)
이런 일이 있을경우 아이들에 대한 대처는 상황과 아이에 따라 다르다.
달래야 할 경우, 감싸줘야 할 경우, 길길이 날뛸경우(사실 이런경우는 그다지 없지만), 아주 단호해야 할 경우 뭐 하여튼.....

하지만 원칙은 있다.
첫째, 아이들을 나무랄때는 반드시 그 사건에 대해서만 나무래야 한다는 것.
지난 일이나 평소의 느낀 거 이런거 구구절절이 달게되면 어느새 잔소리로 전락하게 되고 정말 잘못한 건 흐릿해져 버린다.
둘째, 되도록이면 말을 아껴야 한다는 것.
내가 지나치게 말이 많아지다보면 아이의 마음을 다치는 말까지 나도 모르게 나오게 되고, 따라서 아이들의 반발심이 자신의 잘못을 가려버릴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셋째, 하지만 잘못에 대한 책임과 해결은 아주 분명하게 스스로 지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책임과 해결의 방법을 제시하고 도울뿐 결국 아이 스스로가 감당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사고를 친 녀석들 넷을 불러 일단 사실 확인부터 하고...
아이들 모두를 모아놓고 내가 느낀 감정과 아이들이 한 일이 어떤 의미인지 이런 것들을 얘기했다.
그리고 책임을 질 방법까지...
근데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나 역시 울고있는 녀석들한테 원리 원칙 다 따져서 모질게는 안되더라...
최소한의 책임을 지는것도 아이들에게는 작은 문제가 아닌지라,
학생부에 넘기는건 관두고 내가 책임지는 선에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인정했고, 서로 좋게 헤어졌다.
토일 이틀동안 시간을 줘서 스스로 부모님께 얘기하도록 했으나,
오늘 전화확인을 한 결과 두녀석은 결국 말을 못했더군.....

그런데 오늘 부모님들께 모두 전화를 돌렸다.
원칙적으로 모두 학교호출을 해야 했으나 바쁜 부모들 오라가라 하는것도 힘들겠다 싶어 서로 이해가 이루어진다면 전화로만 상담을 해도 괜찮을 듯 싶었다.
부모님들의 반응은 가지가지다.
어떻게 그렇게 4명이 모두 다른지......

첫째, 가장 마음에 드는 인정형. - 우리 아이가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그 정도의 벌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이에게도 네가 책임을 지는건 당연하다고 얘기했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런 일이 없도록 아이를 잘 타이르겠습니다..... 구구절절.....

둘째, 읍소형 - 아이가 정말 잘못한 건 맞지만 그래도 어떻게 선처가 안될까요?
셋째,  망연자실형 - 우리 아이가 어떻게 그런 일을.... 정말 죽고만 싶습니다.(이런 이건 내가 되려 위로한다고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여기까진 상식적인 반응이다.
그런데....
넷째, 발뺌 + 협박형 - 아이 말 들어보니까 현장에서 바로 잡힌게 아니던데 어떻게 그런 처벌을 내릴수가 있나요? 고자질한 애가 우리 애를 미워해서 일부러 그런거 아닌가요? 진짠지 어떻게 알아요? (자기 애가 인정한걸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지 도저히 알수가 없다.) 이런 식의 처벌은 부당한거 아닌가요?

이건 교육관의 차이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선 문제다.
그냥 억지다. 그리고 아이를 망치는 길이다.
아이들은 언제든지 잘못을 할 수 있다. 그게 아이 아닌가?
하지만 어른은 잘못 자체로 아이를 매도하거나 또는 자기 아이만 무조건 감싸는 것이 아니라, 그 잘못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지는 법을 가르치는 것이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네번째 학부모에게는 길게 얘기하기도 싫었다.
내 선에서 계속 해결하기를 고집했다가는 나중에 무슨 말이 나올지도 모르고, 가끔 심지어는 촌지를 안줘서 우리 아이를 차별하느니 어쩌니 하는 경우도 많이 봤다.
그냥 내가 제시한 방법을 수긍하고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든지, 아니면 정식으로 학생부에 올려서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거기서 학보모님이 항의를 하든지 둘중에 하나 택일하하라고 하고 전화를 끊었다.

이 전화 이후 하루종일 찝찝하다.
정말 생각이 이렇게 다를 수도 있을까?
부모의 권위, 교사의 권위, 어른의 권위가 모두 사라지는 시대 - 아마도 아니 분명히 책임은 어른에게 있다.
우리가 우리 아이들을 망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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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2006-07-1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아~ 여러모로 힘드시겠군요....ㅡ.ㅜ
힘내시라는 의미에서 추천을....!

조선인 2006-07-11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무슨 사고인지 대략 간파해버린 뒤... 마지막 부모는 아마 치마바람도 극성인 유형일 듯. 아, 선생님에게 인정받는 부모가 되어야 할텐데요. 꺼이꺼이.

sooninara 2006-07-11 09: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몇번 부모일까 생각해 보고 있어요.
부모님이 아이들 앞에서 선생님을 존경해야 아이들도 학교 생활을 잘 할텐데..
우리때완 다르죠?
고생하셨구요. 저도 추천으로 힘을 실어드립니다.

바람돌이 2006-07-11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날개님/힘이 되어요. 좀 있다가 그 학부모님 만나야 되거든요. 아자 화이팅!!!
새벽별님/맞아요. 전화상으로 그런 경우는 차라리 낫죠. 가끔 교무실까지 와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들은 정말.... 뭐 오늘은 그러기야 하겠습니까? 그냥 의견차이라고 생각해야겠죠.
조선인님/글의 내용상 약간의 눈치만 있으면 간파가 될것같아요. 부모들이 저리 난리를 부리는 거야 사실 한가지 경우 뿐이잖아요. ^^ 근데 이 부모님은 치마바람은 잘 모르겠습니다. 학교에 오신 적이 한 번도 없으니....
수니나라님/저는 1번 적극 추천입니다. 수니나라님은 당연히 훌륭한 엄마이자 어른일것 같은데요. 힘내라고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세실 2006-07-16 21: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에궁 요즘 엄마들 무대뽀도 많죠...저는 아무래도 두번째 유형일거 같아요....
이런 네번째 유형때문에 선생님들이 참 힘드실것 같아요...
저두 바람돌이님 힘 내시라고 추천 눌러드립니다.

바람돌이 2006-07-18 00: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실님! 두번째요? ^^ 네번째 유형의 엄마는 그 다음날 만났습니다. 솔직히 만나고 나서 더 기분 나빠 졌어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