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그림 같다 - 미술에 홀린, 손철주 미셀러니
손철주 지음 / 생각의나무 / 2005년 9월
절판


풍속화는 삶의 풍경을 그린다. 아니, 풍경이 된 삶을 그린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 그것은 살아가는 삶이 아니라 바라보는 삶이다. 감상용 삶을 풍속화는 그린다. 누구에게나 삶은 절실한 고통과 짜릿한 쾌감이 동반하는 사이다 그러나 삶이 풍경화될 때, 그 삶은 애환을 지워버리는 객체가 된다. 풍경 속의 삶이 개인의 삶의 거죽을 뚫고 들어오기가 지난하다. 실감하는 풍속화가 드물다. 풍속화는 풍경으로서의 삶을 그리되 기록에 머물지 않고, 삶의 피돌기를 자극함으로써 생명을 얻는 것이다. -39쪽

조선의 초상화는 꾸미지 않는다. 오로지 맨얼굴 맨정신이 초상화의 목표다. 신분을 과시하고 자기현시적인 중국 초상화나 바림기법에 의지해 회화적 효과를 드러내는 일본 초상화와 다른 점이 거기에 있다. 겉을 보되 속을 꿰뚫는 조선 초상화가의 관찰력은 그들이 갈고 닦은 붓의 기량과 오차가 없다. 오로지 정신의 전달에 매달리는 장인 의식은 형식이 내용을 장악하는 귀한 작례를 펼쳐 보였다. 성형 수술 하지 않는 얼굴, 그것이 피카소와 조선초상화가의 차이다.-62쪽

멋을 아는 소인묵객들의 애간장을 녹이는 것은 무릎연적이다. 수식이나 분단장 하나 없이 그저 옴팡지게 솟은 언덕모양으로 생긴 연적이다. 이 연적이 왜 사내 맘을 사로잡는가. 조선 백자 달항아리가 종갓집 며느리의 심덕을 닮았다면 무릎 연적은 규중 새악시의 부끄러운 무릎을 모방했다. 그러나 젖가슴이라 부르기 차마 민망하여 무릎으로 둘러댔을 뿐, 자태는 여축 없는 여인의 봉긋한 그것이다. 밑구린 옛 시인 하나가 이름을 숨기고 쓴 무릎연적에 대한 시에 사내의 심중이 고스란하다.

어느해 선녀가 한쪽 젖가슴을 잃었는데(天女何年一乳亡)
어쩌다 오늘 문방구점에 떨어졌네(今日遇然落文房)
나이어린 서생들이 손 다투어 어루만지니(少年書生爭手撫)
부끄러움 참지 못해 눈물만 주루룩(不勝羞愧淚滂滂)-117-118쪽

고갱의 작품 중에 <눈덮인 퐁타벤>이란게 있습니다. 경매에 출품됐는데, 무식한 경매인이 위 아래를 모르고 옆으로 든 채 값을 불러나갔다는군요. 아무래도 이상하기에 그 작품 제목이 뭐냐고 누가 물었대요. 그랬더니 경매인이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답했답니다. 옆으로 보니 폭포처럼 생겼던 거죠. 잘도 끌어다 붙였지만, 값은 겨우 7프랑에 낙찰됐답니다.

******** 칸딘스키는 옆으로 놓인 자기 그림을 잘 못봐서 추상회화를 열었다지만 저 경매인은 그림값을 확 낮춰버렸군! 근데 그림이 제대로 놓여있었어도 고갱이 당시 화단에서 받던 대접을 생각하면 저 이상 받을 수 있었을지는 의문이다. 그래도 저 경매인 나름대로 순발력은 있구만....생각하기에 따라선 나름의 멋도.... ^^-17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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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경을넘어 2006-05-19 16: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철주의 글이군요. 그 양반 참 글발이 끝내 주던데...

바람돌이 2006-05-20 0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양반 정말 글발 끝내주더군요. 특히 앞 머리말이요.
이 책 아직 보는 중인데 중간 중간 필요한 부분 메모하는 식으로 그냥 적는 글입니다. ^^

비로그인 2006-05-24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작년에 이 책 재미있게 읽었어요..좋은문구가 많죠.

바람돌이 2006-05-24 1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뽀뽀님 안녕하세요.
이 분이 글을 참 잘쓴다는게 느껴지는데가 참 많더라구요. 그냥 하는 말 같은데 묘하게 설득력을 가지기도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