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질 10년을 훌쩍 넘어서면서도 정말 이런반은 처음이었다. 이렇게 활달하고 맹랑하고 시끄럽고 기죽지 않는 반. 1년동안 지난 10여년간 들은 양보다도 더 많이 다른 선생님들로부터 "참 고생많습니다" 소리를 들어야 했던 반.... 그런 봉숭아 학당과의 생활도 이제 끝났다. 그래도 나는 참 감사할게 많은 한해였고, 그래도 참 행복한 한해였다. 이녀석들과의 시간은....

뭘 감사할까?

1. 전교 유리창 깨진 것 합친것 보다도 더 많은 유리창이 우리반에서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큰 사고 한번 나지 않았던 것 - 감사하다.(마지막날에도 2장이나 깨먹었다.) 세보진 않았지만 20장이 넘는건 분명하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깨대더군.... K양의 어머니는 학교로 전화를 걸었다. 도대체 애가 어쩌길래 유리창을 그렇게 많이 깨냐고.... 낸들 아남유...ㅠ.ㅠ

2. 우리반 K군 - 유리창 앞에서 다른 녀석을 놀려먹다가 열받은 그 친구 유리창을 손으로 퍽 깼다. 결과는 눈이 아프단다. 유리조각이 눈에 들어간것 갔다나.... 놀래서 병원에 데려갔더니 눈안에서 유리 파편을 7개나 꺼냈다. 그래도 천만다행히도 시신경을 안건드려서 일주일 치료로 끝낼수 있었다.(진짜 감사할 따름이다.)

3. 우리반 P군 - 40kg도 채 안되는 몸무게와 작은 키와 달리 깡다구가 보통이 아닌 녀석. 애들과 교실에서 말뚝박기 하다가 지 몸에 60kg이 넘는 세녀석을 얹고는 쓰러져서 보건실에 들려왔다. 허리 아프대서 걱정이 많이 됐는데 그래도 찜질 한번으로 끝났다. (그날 말뚝박기를 했던 열몇명의 녀석들 몽땅 남아서 벌섰다. 아픈 녀석 빼고.... 그 전해에 교실 말뚝박기 때문에 큰 사고가 두번이나 났던지라 학교에서 늘 못하게 했는데, 그게 못하게 한다고 되는게 아니더만....) 이녀석들은 벌서면서도 어찌나 시끄러운지....

4.  L군과 J양 - 둘이서 칼갖고 장난치고 놀다가 J양이 L군의 손을 무지막지하게 벰. 너무 깊이 베여서 걱정이었는데 신경 직전에서 칼날이 멈췄단다. 이것도 다행. 

5. 학년 시작할때부터 왕따였던 Y군과 Y양 - 둘다 성이 다른데도 이니셜은 같군. 특히 Y군은 1년 내내 나를 긴장시켰던 녀석이다. 정서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어 담임인 나의 능력을 완전히 벗어나있어 더 안타까웠고, 철딱서니 없는 녀석들은 그런 Y군을 이해하지 못해 장난이라고 한게 녀석한테는 괴롭힘이었고... 그래도 둘다 막판엔 어느정도 안정이 돼서 정말 다행이었다. 같이 노력해준 반의 몇몇 녀석들에겐 정말 정말 고마울 따름이다.

6. 그래도 봉숭아학당은 어떤 특정의 무리들이 반분위기를 주도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남녀를 가리지 않고 열심히 서로 싸워대는 반. 누군가 하나 잘못하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서로 고자질 하지 못해 안달인 반. 하지만 그 고자질이 은밀한게 아니라 서로 놀려먹으며 재밌어하는거라 뭐 별로 심각한 일은 없었지... 그래도 몇몇 녀석들은 좀 심각한 일이 있다 싶을때는 당장 내려와서 담임인 나에게 의논해주기도 했었다. "선생님 Y가 자꾸 죽고싶다고 공책에 쓰고 화장실 창틀위에 올라가서 멍하니 하늘보고 그래요"라든가... "요즘 남자애들 몇이 한 애를 좀 집적거려요"라든가....어쨌든 내가 알아야 할 일 중에서 모르고 넘어가는건 없었던 것같으니 애들과의 관계는 성공적이었던 듯.... 그럼에도 이녀석들이 나를 별로 좋아하지는 않는것 같다는게 나의 아쉬움이랄까? ^^

7. 그래도 가끔은 이녀석들이 나를 감동시키기도 했었다. 아주 가끔이지만.... 여름방학때 월드비전에서 보내온 저금통을 내주며 몇마디 했는데 방학 끝나고는 대부분의 녀석들이 저금통을 채워와서 나를 뿌듯하게 해주었다. 그리고 어느 녀석하나 반항하거나 삐딱한 녀석이 없었다는 것. 별 이유없이 고의적으로 다른 녀석을 괴롭히는 녀석이 하나도 없었다는 것도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8. 아 그리고 올해는 학부모 운도 있었다. Y군의 경우 학부모와 지속적으로 상담이 필요한 경우였는데, 그래도 아버지가 관심이 많아서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내가 해대는 전화통화에도 늘 미안해하며 나의 얘기를 들어주었고 의견을 받아들여 주었다. 사실 문제가 있는 아이일수록 부모와 대화가 안돼는 경우가 많아 안타까운 일이 많은데.....(누가 자신의 아이가 문제가 많다느니 하는 말을 그리 오래 듣고 싶을까말이다.) 그 외 다른 일들때문에 전화통화나 방문을 받을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이 나의 말을 들어주고 이해해 주고 같이 고민해줘서 학부모와 언성 높이거나 얼굴 찌푸릴 일이 없었으니 정말 다행이지.  게다가 올해는 내게 늘 따뜻한 말이 담긴 메일을 보내 나를 감격케 했던 학부모들도 여럿 있었으니.... 이정도면 남들이 뭐라 하든 내게는 복받은 1년이었던게 분명하다.

사실 정이 많이 들어서 내년에 이녀석들을 달고 올라가고 싶었지만 아마 그렇게 안될 듯 싶다. 내일이면 결정이 날텐데 아마 3학년 담임이 되지 않을까 싶다.

1년간 내 교사생활에서 가장 즐거웠던 봉숭아학당과의 생활. 이제 끝이다. 이제 이런 글을 쓰게 할 아이들을 다시 만나기는 아마도 한동안 힘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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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인 2006-02-24 06: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선생님들이 말썽많았던 학급을 더 오래 기억한다는 말이 맞나봐요. 근데요, 그건 아이들도 마찬가지에요. 히히.

BRINY 2006-02-2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심하게 다친 아이가 없어서 다행이었네요. 새학년에는 어떤 아이들을 만나게 되실까요? 저는 오늘 신입생 예비소집~ 올해는 사물함 절반을 부숴먹는 일이 없도록 해야죠. 행정실에서 사물함 100개를 새로 신청했단 말을 듣고, 얼마나 찔리던지요.

urblue 2006-02-24 0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고하셨어요. 올해도 좋은 아이들과 학부모를 만나실 수 있을겁니다. ^^

날개 2006-02-24 1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고가 정말 많은 반이었군요..^^
기억에 안남을래야 안남을 수가 없을것 같습니다....ㅎㅎ
1년동안 수고하셨어요~ 아마 아이들도 오래도록 님과 반친구들을 기억할거예요..^^

진주 2006-02-24 15: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 수고 많으셨어요. 올해에 새로 맡는 반도 여전히 즐겁고 보람차시길...

아영엄마 2006-02-24 17: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와~ 정말 큰 일날뻔 한 사고들이 많았군요. 고생하셨으니 올해에는 좀 안정(?)적인 반을 맡으시길 바랍니다. ^^

2006-02-26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바람돌이 2006-02-2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며칠동안 잘 못들어왔습니다. 그동안 댓글이 이만큼이나 쌓였네요. ^^
조선인님/아이들도 그럴까요? 저는 즐겁고 행복한 날들이었는데 아이들도 나중에 되돌아볼때 그렇게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는게 제 욕심입니다. ^^
BRINY님/사물함 절반을 부숴먹다니.... 만만치 않습니다그려... 저는 학기초에 저 사물함이랑 책걸상 부수는놈은 무조건 물어내야 한다고 엄포를 놓았더니 그래도 좀 나아요. 의자 하나밖에 안부서졌어요. ^^
urblue님/올해는 3학년이니 작년처럼 귀여운 맛은 좀 없어지겠네요. 일단 사전 정보로는 아주 무난한 학급 구성이라는 평이 있었습니다. 근데 이게 제가 담임만 되면 애들이 갑자기 생기발랄해진다기 보다는 소란스러워진다는 문제가.... ^^;;
날개님/어떻게 기억될지는 뭐 아이들마다 다르겠지요. 모든 아이들이 저를 좋아하리라는 환상은 버린지 오래입니다.
새벽별님/가끔 그런 반이 있어요. 마치고 나도 별로 기억에 남는게 없고 그렇게 정이 쌓인 것 같지 않은 반이.... 저는 공부좀 못하고 사고좀 쳐도 정많고 마음이 가는 그런반이 좋아요. ^^(그러니 늘 시끄럽지....)
진주님/고맙습니다. 그래도 올해 애들같은 반은 다시 없을 것 같은데요. ^^
아영엄마님/정말 사고는 좀 안냈으면 좋겠습니다. 올해는 3학년이니 아마 훨씬 나을듯.... 아이들 머리가 크면 내는 사고의 종류도 달라지니...
속삭인님/제가 좋아하는 책을 님도 좋아해주시니 저야말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