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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의 눈에 대한 감각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마음산책 / 2005년 8월
평점 :
오랫만에 참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났습니다. 그게 바로 스밀라 당신이죠. 당신을 줄거리만 대충 적어놓은 요약문 같은데서 봤다면 나는 아마 헐리웃 액션 영화에 흔히 나오는 그런 여자의 하나쯤으로 오해했겠죠. 툼레이더에 나오는 안젤리나 졸리 같은....내가 영화가 아닌 책으로 당신을 만난게 얼마나 다행인지요. 그리고 어줍잖은 줄거리에 대한 정보가 없어 결국 내가 책을 읽어야만 했다는 것도....
책은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습니다. 특히 책의 반을 넘어가기 전까지는 더 그랬죠. 하지만 그건 지겨워서라거나 어려워서라기보다는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사색을 따라가기 위한 시간들이 필요했기 때문인것 같군요. 추리소설이라고는 하지만 저는 추리보다는 당신의 생각이 더 궁금했습니다. 당신이 어떻게 느끼는가, 하나의 사건에서 어떤 감정과 사색들을 불러일으키는가 그리고 타인에 대해-적이든 친구든 어떻게 반응하는가... 꼭 연애하는듯한 기분으로 당신을 따라다닌 것 같군요.
'이사야'라고 하는 옆집 소년의 죽음에 당신은 의문을 품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데에는 이사야에 대한 당신의 애정, 그리고 눈에 대한 당신의 감각이 의문으로 당신을 이끌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여기서 더 나아가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나 역시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당신은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헐리웃 영화의 공식대로라면 당신은 복수심에 불타는 아이의 엄마쯤 되거나 아니면 세계평화를 위한 정의의 화신쯤 되어야되겠지만, 나는 그저 당신에게서 진정한 연민을 아는, 그저 왜 그애가 거기서 죽을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고 싶어하는 그 아이를 진정으로 애도하는 그저 한 여인을 볼 뿐입니다. 이런 걸 휴머니즘이라고 하겠지만 이런 도식화된 정의는 당신에게 어울리지 않는군요. 인간에 대한 사랑을 입으로 얘기하기는 쉽지만, 그리고 그걸 또 휴머니즘이라고 정의하기는 쉽지만 어려운 상황에서 내 옆의 사람에 대해 진정한 애정을 가지는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당신은 이사야를 정말로 사랑했나봅니다. 나는 한편으론 당신이 그토록 그 아이를 사랑한 건 그 아이의 모습에서 당신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어느 한쪽에도 완전히 발을 붙이지 못하고 떠도는 경계인으로 아슬아슬하게 살아가는 동지라고나 할까요.
그린란드인 어머니를 가졌고 덴마크인 아버지를 가진, 어렸을 때 강제로 덴마크에 오게 된 당신은 어느 사회에서도 이방인입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당신의 영혼은 그린란드에 속해있다고 믿습니다. 문명에 대한 당신의 통찰은 덴마크가 아니 서구가 지금까지 이룩했다고 믿는 문명의 발전이 얼마나 자기중심적인 것인지를 여지없이 까발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말하죠
다른 문화를 이해하는 한 가지 방법이 있다. 실제로 살아보는 것, 그 문화 속으로 이사하여, 손님으로 받아달라고 부탁해서 언어를 배운다. 어떤 순간이 되면 이해가 찾아온다. 이해는 언제나 비언어적이다. 무엇이 낯선 것인지 이해하게 되는 순간, 설명하려는 충동을 잃어버린다.(259페이지)
당신은 그저 생각만 하지 않습니다. 서구 사회가 문명의 이름으로 그린란드에 행하는 폭력과 온 힘을 다해 싸우죠. 그것이 당신을 당신이게 합니다.
흔히 이누이트들은 눈에 대한 수많은 다른 표현을 가지고 있다고 하죠. 그들의 눈덮인 빙원이 그들에게 그런 특출한 언어를 준것이겠죠. 당신 역시 여전히 그린란드인 이누이트입니다. 눈과 얼음의 땅, 북극에 대한 사랑과 감각이 당신을 그렇게 만듭니다. 결말마저도 얼마나 당신다운지....
요 며칠간 스밀라 당신을 만나서 참 행복했습니다. 당신은 이제 당신의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아니면 여전히 혼자서 덴마크 땅을 배회해야 할까요? 당신이 당신이 속한 곳에서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그럴 자격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