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43쪽


페미니즘과 몇가지 계기가 되는 역사적 사건들이 이룬 성취는 우리 사회에서 여성이 생물학적으로 지적으로 열등하다는 의식을 몰아냈고, 정치적 권리를 쟁취하게 했으며, 가부장적인 가정을 벗어나도록 했다.

그것이 비록 완벽하게 실현되었다고 하지는 못할지언정 시대적 흐름이고 대세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한다.

학교에서 만나는 여자 아이들은 더 이상 성차별적인 발언을 - 그것이 교사든 부모든, 또래 남자 아이든 - 용납하지 않도록 교육받고 있고, 실제로 그런 상황을 용납하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경우가 많다.

물론 지금의 학교교육을 통해 성차별의 구체적인 상황을 교육받은 여자아이들이 실제로 사회에 나갔을 때는 또 여전히 현실에 남아있는 무수히 많은 성차별적인 상황들과 맞닥뜨릴 것이다. 기득권을 가진 지배 이데올로기의 힘은 예상보다 언제나 훨씬 강하니 말이다.

그러나 1960년 4.19 혁명이 당시대 학교교육에서 민주주의를 처음 배웠던 세대들에 의해서 시작되었던 것처럼, 지금의 아이들은 바로 그 성차별적인 온갖 상황들에 맞서 싸울 것이다. 기성세대에 속하는 내가 어쩔 수 없지라고 체념하거나, 그것이 성차별임을 인지하고 못했거나 함으로써 온존시킨 그 체제와 말이다.

세상은 그렇게 바뀌어 간다고 믿는다.


그러나 한편으로 오늘의 여자 아이들의 외모강박은 정도가 심하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도 1년 내내 마스크를 끼고 다니는 아이들이 제법 있었다. 

그 때 왜 그러니? 안 갑갑하니? 라고 물어보면 나오는 대답이 나를 경악하게 했었는데, 풀메이크업을 하지 않은 얼굴을 드러낼 수 없어요. 너무 부끄러워요였다. 다른 대답은 얼굴이 너무 커서 가리고싶어요같은 대답들. 

당연히 실제 그 아이들의 얼굴은 그저 평균치였을 뿐이고, 풀메이크업으로 가리지 않아도 충분히 예쁜 얼굴이었다.

그러나 이미 자신의 기준이 연예인이거나 모델인 아이들에게는 어떤 말도 그 외모강박과 열등감을 지워주지 못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실제 중3교실에서 입시가 끝나면 3분의 1이상의 여자아이들이 쌍커풀 수술과 눈의 앞트임, 뒷트임등의 수술을 한다. 

다른 어떤 이데올로기보다 예쁘야 한다는 외모 강박은 지금 가장 힘이 센 이데올로기다.


이런 현실에 대해 여태까지 내가 생각했던 것은 사회 일반적인 통념과 다르지 않다. 

온갖 매체와 광고에서 아름다운 남성과 여성이 등장하고, 그들이 많은 돈을 벌고, 외모가 바로 돈과 직결되는 사회현실,

자본주의의 상품판매를 위한 기업들의 전략

이정도의 생각에 머물러있었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다른 견해를 제시한다.

가부장제가 "집안 살림을 숭고한 소명"으로 보는 이데올로기가 필요했듯이, 이제는 가부장제가 낡은 이데올로기로 점점 위력이 약해지는 것을 대신해, 계속 여성의 노동과 저임금구조를 존속하기 위한 이데올로기로서 "아름다움"이 의도적으로 확대재생산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많은 여성이 성별에 기초한 고용차별 대신 외모에 기초한 고용차별을 법적으로뿐만 아니라 여성의 은밀한 내면세계에서까지 받아들이게 하고, 여성이 더 많은 돈을 외모를 가꾸는데 쓰게 함으로써 그들을 더 가난하게 만들어 더 높은 자리를 원천적으로 박탈하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또한 신체적 기준에 따라 여성을 새로운 위계구조로 서열화시키는 작동기제이기도 하다.

이것은 내가 생각했던 광고와 매체의 문제, 기업의 판매전략 수준을 뛰어넘는 본질적인 통찰로 다가온다.

앞에서 인용했던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내가 스스로 탈피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 새로운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이 사무치게 인식되는 지점이다. 


이제 이 책은 서론에 이어 구체적으로 여성의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사회 문화 전반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펼쳐놓는다.

첫번째 지점은 직업세계 - 일에 관해서이다.

여성의 복장, 외모를 둘러싼 "아름다움"의 이데올로기는 어떤 식으로든 여성의 사회적 성취를 가로막는다.

어떤 직업을 수행하기에는 여성의 외모가 못나서, 또는 여성의 외모가 아름다우면 여성의 능력이 아니라 외모로 승진하다는 식의 편견과 비하, 때로는 아름답게 꾸민 여성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폭력을 정당화하는 구실 등등.....

여성이 아름다워야 한다는 이데올로기는 실제 세계에서는 어떤 경우든 여성의 노동을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고, 여성의 상위층으로의 진출을 억압하는 수단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나 하나의 예가 미국만이 아니라 조금만 관심을 둘러보면 한국사회에서도 비슷한 예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결국 남성중심의 지배 엘리트구조는 어떻게든 여성의 노동을 비하하고, 그들의 성취를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지배구조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2장까지 읽으면서 우리 사회의 외모지상주의가 보다 근원적인 지배이데올로에 근원함을 깨닫는다.

관점과 시선이 바뀌면 그것을 해결할 교육과 행동도 달라져야 한다.

카프카가 책은 우리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고 했던 말의 의미를 절감하게 하는 책이다.

남은 페이지들은 또 어떻게 나의 내면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줄지 두근거리며 읽게 되겠다.



오늘날 이렇게 반발이 거센 것은 아름다움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여성을 둘러싼 낡은 이데올로기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아 지금도 강력한통제력을 발휘하기 때문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페미니즘의 두 번째 물결로 여성을 지금처럼 통제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모성과 가정, 순결, 수동성에 관한 신화가 더는 하지 못하는 사회적 강요라는 임무를 떠맡을 정도로 강력해졌다. 그리고 지금 페미니즘이 여성을 위해 물질적 · 공개적으로 한 모든 좋은 것들을 심리적으로은밀하게 무력화하려고 한다.
- P31

"아름다움은 금본위제 같은 통화체계다. 모근 경제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정치에 의해 결정되며, 현대 서양에서는 그것이 남성의 지배를 온존시키는 마지막 남은 가장 좋은 신념 체계다. 문화석으로 강요된 신체 기준에 따라 여성의 가치를 매겨 수직으로 줄을 세운다는 점에서 이는 권력관계의 표현이며, 이러한 권력관계 속에서 여성은 그동안 남성이 전용해온 자원을놓고 싸워야 하는 기이한 상황이 벌어진다.
- P33

아름다움의 신화를 정당화하는 역사적 · 생물학적 근거는 없다. 오늘날 아름다움의 신화가 여성을 제약하는 것은 권력구조와 경제, 문화가 여성에게 반격을 가할 필요에 의한 것이지 결코 그보다 숭고한 목적에서 온 것이 아니다.
- P35

경제와 법, 종교, 성, 교육, 문화를 개방해 여성이 더욱 공평하게 참여할 수 있도록 하자, 사적 현실이 여성의 의식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아름다움"에 관한 관념을 이용해 법과경제, 종교, 성, 교육, 문화로 여성의 세계를 새롭게 재구성했고, 이런요소들은 전에 사라진 것 못지않게 억압적이었다.
- P39

 지금 서양 경제는 여성의 저임금 구조에 완전히 기대고 있다. 그런데 페미니즘이 우리에게 훨씬 가치 있는 느낌이 들도록 하기 시자하자. 이에 대응해 여성에게 "훨씬 가치 없는 느낌이 들도록 할 이데올로기가 시급히 필요했다. 여기에는음모가 필요 없다. 분위기만 필요할 뿐이다. 오늘날의 경제는 바로 지금도 아름다움의 신화 속에 나타난 여성의 모습에 기대고 있다.  - P42

우리가 여성이라면 반드시 어떠해야 한다는 무거운 짐에서 벗어나려면, 첫 번째로 필요한 것은 투표용지나 로비스트나 플래카드가 아니다. 바로 사물을 바라보는 새로운 방식, 새로운 시각이다.
- P43

슈퍼우먼들은 그것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깨닫지 못하고, 자신이전문적으로 다루어야 할 의제에 "아름다움"을 가꾸는 만만찮은 노동을추가해야 했다. 더구나 이 새로운 임무는 갈수록 엄격해졌다. 투자해야 할 돈과 기술, 솜씨의 양이 여성이 권력구조에 균열을 내기 전에는자신을 전시하는 직업에 종사하는 미인들에게나 기대한 수준 밑으로떨어지는 일이 없었다. 여성이 전문적인 주부의 역할과 전문적인 직장인의 역할, 전문적인 미인의 역할까지 모두 해야 했다.
- P56

그런데 작금의 사태를 보면, BFOQ를 서툴게 모방한 것(나는 이것을 더 구체적으로 PBQ professional beauty qualification, 즉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이라고 부르겠다)이 여성의 고용과 승진의 조건으로 아주 널리 제도화되고 있다.  - P57

1980년대가 시작되자 미국의 정부 정책은 일하는 여성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했고, 법은 그들의 의모를 진지하게 받아들여아 한다고 했다. 이런 판레법들이 나온시기를 보면 아름다움의 신화가 정치적 기능을 한다는 것이 분명해진다. 여성이 대거 공적 영역에 들어가기 전에는 직장에서의 외모에 관한 법이 그렇게 쏟아져 나오지 않았다.
- P66

크래프트의 고용주들이 그런 차별을 하고도 도전받지않을 거라고 믿은 것은 그런 치별이 피해자들에게 공동적으로 주입하는 반응 때문이다. 그것은 창피함이고, 창피함은 침묵을 보장한다.  - P69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은 최근에 기회평등법으로 위협받게 된 착취의 근거를 다시 고용 관계 속에 슬그머니 밀어 넣는 작용을 한다. 그것은 여러 영역에서 여성에게 심리적 영향을 끼쳐고용주들에게 경제적으로 필요한 것을 제공한다.
- P87

PBQ는 여성을 물질적 · 심리적으로 빈곤하게 만든다. 그것은 경제적안정이 주는 권리의식을 길렀다면 권력구조에 가장 큰 위협이 되었을 여성에게서 돈을 고갈시킨다. PBQ는 부유한 여성들조차 남성들이 경험하는 부에 접근하지 못하게 한다. 이중잣대로 남성 임원의 소득보다 여성 임원의 소득에서 더 많은 몫을 떼어감으로써 그런 여성들이 남성 동료보다 실제로 가난하게 만들었다.  - P93

전체 여성 임금노동자 3분의 1인 사무직 노동자와 4분의 1이 넘는 판매직과 서비스직 노동자가 그동안 가장 노조를 조직하기 어려운 집단가운데 하나였다. 여성이 서로를 볼 때 무엇보다도 먼저 아름다움으로보면 연대를 찾기 힘들다. 아름다움의 신화는 여성에게 누구나 제 앞가림이 먼저라며 그렇게 믿도록 다그친다.
- P98

여성은 아름다움과 일이 보상도 해주고 처벌도 하자 전혀 일관성을기대하지 않게 되었지만, 그들은 계속 노력할 것이다. 아름다움을 위한 노력과 직업에 필요한 아름다움이라는 자격 조건은 모든 여성에게여성과 관련해서는 정의가 구현되지 않을 거라고 가르친다. 그러한 불공정함을 여성에게 변함없고 영원하며 적절하고 여성 자신에게서 연유하는 것으로 보여준다. 그들의 키와 머리카락 색깔, 성별, 얼굴 모양만큼이나 그들에 속한 것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 P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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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2-02-14 1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바람돌이 님. 이 페이퍼 진짜 좋네요. 좋아요 백번 누르는 마음으로 한 번 꾹 누르고 갑니다. ㅜㅜ

바람돌이 2022-02-21 01:20   좋아요 0 | URL
좋아요 백번이라니 감개무량합니다. ^^

단발머리 2022-02-14 16:5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 지금, 아침에 읽은 잭 리처 페이퍼 재밌어서 한 번 더 읽으려고 바람돌이님 방에 들어왔다가 이제서야 이 리뷰 발견했네요.
너무 좋은 글, 잘 입고 갑니다. 아직 책 읽기 전인데 기대감 + 100을 얻고 갑니다.

바람돌이 2022-02-21 01:2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언제나 좋은 글 써주시는 단발머리님 칭찬이라 완전 기분이 업되네요. 오늘 이 책 다 읽었는데 이 책 읽고 난 이후 저는 저의 외모를 좀 더 사랑하게 될듯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