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日記 - 황정은 에세이 에세이&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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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란 얼마나 빈약한 것인가를 느낄 때는 많지만 그걸 절감할 때가 장례식장에 갈 때이다.

고인에게 절을 하고 상주와 맞절을 한 후 상주는 으례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란 말을 던진다.

그에 대한 답말은 "얼마나 상심이 크십니까" 내지는 "어르신의 명복을 빕니다"정도이다.

하지만 나는 정말 이 말을 할 때마다 낯이 뜨겁다.

건네는 말이 진심이 아닌 것은 아니지만 황망한 죽음을 앞에 둔 이들에게 너무도 형식적인 매뉴얼같은 말인지라 그렇다.

또한 장례식장의 상주에게 고인의 죽음이 너무도 황망하고 큰 슬픔일경우에는 도저히 저런 매뉴얼같은 말을 할 수 없고, 그렇다고 다른 말을 할 수도 없어 어려울 때가 많다.


오래 전 친정 올케의 아버님이 돌아가셨을 때 친정 부모님과 함께 문상을 갔다.

사돈어른의 연세가 돌아가시기에는 지나치게 젊어 황망한 죽음이었다.

절을 하고 눈물바람인 올케를 보며 어떡해야 하나 하는데, 절을 하고 난 친정 어머님이 한마디 말도 없이 올케의 어깨를 안고 다독이기만 하시는걸 보았다.

그 순간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불편할 수도 있는 관계를 넘어서 그냥 서로의 마음이 닿는구나

올케의 표정에서 진짜 위로를 받고 있구나라는 그런 느낌을 받았었다.


황정은 작가의 첫 에세이를 읽으며 내내 그런 마음들을 떠올렸다.

그가 마지막에 한 마디씩 남기는 말들


건강하시기를.

부디. (23쪽) 

이 평범한 문장에서 마음에 더 와닿는 것은 건강하시기를이 아니라 한 줄 더 만들어 덧붙이듯 건네는 '부디'라는 저 단어다. 

정말로 작가는 자신의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진심으로 저 말을 건네고 싶어 하는구나라는 마음이 느껴지는거다.

앞의 글들을 읽으면서 아직 어두운 새벽부터 애쓰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인사일수도 있고, 생활전선에서 고군분투하는 모두에게 보내는 마음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책을 읽는 이 순간에는 나에게 보내는 인사로 와닿는것이다. 


세월호는 아마도 우리 세대가 죽을 때까지 지고 가야할 트라우마지만 언제나 현실의 나는 무력하고 그래서 더 참담하다.

목포를 갔다온 작가가 쓴 일기를 보면 딱히 한 일이 없다.

작가의 탓이 아니라 지금 그곳에서 누구든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저 잊지 않음을 기억하려는 작은 노력일뿐이고 , 이 커다란 아픔 앞에 무기력한 자신에 대한 자괴감만 더할 뿐....

나라면 그곳에서 자괴감만 잔뜩 안고 왔을 것 같은데, 그래도 작가는 

용기를 내 어떻게 지내고 계십니까라고 안부를 묻는다.

그리고 그저 보이는 것들은 담담하게 쓰며 

"그런걸 생각하고, 그런 걸 보고 왔다"(113쪽)라고 쓰고 있다.

그런걸에 담긴 그 마음이 와닿아 울컥하기도 했다.

중요한건 역시 마음, 진심이다.


작가는 이 일기 속에서 타인에게 던지는 연민과 공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심지어 자신의 아픔을 얘기할 때도 어렸던 자신에게, 아직도 고통받고 있는 자신에게 같은 연민과 공감을 표현할 줄 안다.

결국 내가 나를 보듬기 위해서도 타인에게 공감하고 연민의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은 필요하다는 것을 작가의 글 전체가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나를 사랑하는 길은 내 옆의 타인을 사랑하는 것.

작가가 글로 오늘의 나를 위로해 주었듯, 글을 못쓰는 나는

나의 말과 나의 표정과 나의 몸짓으로  내 옆의 사람들에게 위로를 전할 수 있음을,

그것이 나를 위로하며 세상을 살아가는 온전한 방법임을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황정은이란 이 예민하고 섬세한 작가의 소설만이 아니라 에세이도 나의 최애작에 올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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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cott 2021-11-04 00:31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이 글을 못쓰시다뇨
앞에 언급 하신 장례식장의 언어 표현 문제 정확하게 지적 해 주셨습니다

상대를 배려 하고 안타까운 마음을 담은 언어를 어찌 표현 할지 모르고
SNS상에 외계어들만 써서 진정한 위로를 건네는 말 조차 나누지 못하는게 현실이네요


바람돌이 2021-11-04 01:20   좋아요 3 | URL
이 밤의 칭찬에 또 혼자서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습니다. ㅎㅎ
하지만 문제를 지적하는건 잘했는지 모르지만 그걸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서는 항상 뭔가 모자란다는, 그래서 늘 글이 맘에 안들어 막힌다죠. 느끼는걸 모두 제대로 표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래서 작가들이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

책읽는나무 2021-11-04 00:57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황정은 작가 만큼 못쓰신다는 말씀인 거죠?ㅋㅋㅋ
바람돌이님 글 못쓰신다는 말에 저도 좀 놀랐습니다!!!
헌데 말과 표정과 몸짓으로 위로할 수 있다는 말씀은 맞는 말입니다.
올케분은 시어머님의 포옹에 뜨거운 위로를 받으셨을 겁니다.두고두고 잊지 못하실 거에요.
제게도 그런 시간이 있었는데 엄마와 각별하게 친하셨던 분들 그리고 내곁에 친했던 이웃집 언니들이 찾아와 말없이 포옹을 해주던데..아!! 정말 두고두고 고마운 생각이 들더라구요.
훗날 내 딸들에게도 나의 지인들이 찾아와 그저 안아주는 걸로 위로를 해주었음 좋겠다!!그런 생각을 가끔 하곤 합니다^^

바람돌이 2021-11-04 01:24   좋아요 3 | URL
설마요. 사실 아무 생각없이 황정은 작가처럼 글을 못쓰지만이라고 썼다가 후다닥 지웠습니다. 감히 어디다가 비교를 하면서 말이죠. ㅎㅎ
나이가 들어가면서 어떤 말이 또는 어떻게 해야 위로가 될지에 대해서는 좀 고민도 하고 노력도 하는거 같은데 저의 경우 여전히 안되는건 싫은걸 또 표현을 잘하는거요. 그거 고쳐야 되는데 좀 안돼요. ㅠ.ㅠ
우리 딸들에게 그렇게 위로를 전해줄 사람이 많으려면 부지런히 노력해서 제가 좀 더 좋은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겠죠? 열심히 착하게 살도록 노력해보겠습니다. ^^

희선 2021-11-04 02:30   좋아요 4 | 댓글달기 | URL
장례식장에서는 무슨 말 못하겠습니다 말하기보다 가만히 손이라도 잡는 게 나을지... 바람돌이 님 친정 어머님은 그때 딱 맞는 위로를 하셨네요

다른 사람한테 위로가 되는 글은 그렇게 쓰려고 해서 되는 게 아니겠습니다 그래도 다른 사람을 생각한다면 좋을 듯합니다 다른 사람이 느끼는 걸 그대로 느낄 수는 없겠지만, 알려고 하면 조금은 알겠지요

이 책을 바람돌이 님이 에세이에서 최애작으로 여기신다니, 황정은 작가가 기뻐하겠습니다


희선

바람돌이 2021-11-05 00:34   좋아요 0 | URL
황정은 작가님이 제 맘에 딱좋은 글을 계속 써주셔서 제가 감사하지요. ㅎㅎ
타인에 대해 완전히 안다는건 불가능하겠지만 이해하고자 노력하는게 중요한거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