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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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족을 생각하다.

 

소라와 나나와 나기 - 합쳐서 그냥 소나기라 부르면 좋겠다.

집 하나를 반으로 나눠 놓은 셋방에 소라와 나나 자매가 살고, 나머지 반에 나기와 나기의 엄마가 산다.

그냥 어느 순간 이들은 가족이 되었다.

아버지에 관해서 이야기하자면 너무 흔한 이야기라 통속적이다.

소라와 나나의 아버지는 공장의 기계에 휘말려 죽었고, 나기의 아버지는 술만 마시면 행패를 부리다가 시장 한가운데서 그냥 쓰러져 죽었다.

엄마는 나기의 엄마 순자씨가 있다.

"새끼를 먹여본 손맛, 그런 연륜"(43쪽)을 가진 엄마.

소라와 나나의 엄마 애자씨는 가족이 아니다.

사랑이 넘쳐 애자씨는 소라와 나나의 아빠가 죽은 이후 계속 혼자만의 세계에서 아빠와 산다.

이들은 곧 새로운 가족이 생긴다.

나나의 아기

그러면 이들은 아기, 할머니, 엄마, 이모, 삼촌으로 이루어진 가족이 될 것이다.

아기의 아빠는 중요하지 않다.

그는 가족이 뭔지를 모르는 사람이므로.....

가족은 혈연이 이어졌다고 되는게 아니다.

어린 시절 무서운 것을 본 순간 소라가 나나의 손을 잡고 허겁지겁 가던 그 길에 가족이 있다.

혼자 아이를 기르려는 나나에게 순간이나마 폭력을 행사하는 아기의 아빠에게 달려드는 소라의 주먹에 가족이 있다.

위로 받고 싶은 순간에 그녀들 만을 위한 스페셜 메뉴를 만들어주고 공간을 내어주는 나기의 식당에 가족이 있다.

그러니 남들이 뭐라든 이들은 가족으로 계속 살아갈 것이다.

 

 

2. 사랑을 생각하다.

 

사랑이 로맨스 소설처럼 낭만적이기만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현실의 사랑은 늘 구질구질함과 오해와 엇갈림을 동반한다.

 

애자는 나나와 나에게 그 이야기를 반복해서 들려준 뒤, 언제고 그런 식으로 중단될 수 있는 것이 인생이라고 덧붙였다. 너희의 아버지는 비참한 죽음을 맞았지만 그가 특별해서 그런 일을 겪은 것은아니란다.
그게 인생의 본질이란다.
허망하고,
그런 것이 인간의 삶이므로 무엇에도 애쓸 필요가 없단다.  - P12

 

그래서 소라는 애쓰고 싶지 않다. 그렇게 살기도 하는거지.

이 정도가 딱 적당하다라고 하는 그 지점에 소라는 늘 머물러있다.

그래서 소라는 적당한 거리와 적당한 관심과 배려를 보이는 가족에게 머물러있다.

아기를 만들었으면 무조건 결혼해야 하는걸까?

모세가 주었던 한순간의 위로가 사랑은 아니었음을, 그가 생각하는 결혼에 이르는 당연한 순서가 당연하지 않을 수 있음을, 내가 이렇게 아플 수 있으면 남도 이렇게 아플 수 있다는 거.(160쪽)

그런 공감이 이루어지지 않는 관계가 사랑은 아님을 나나는 잊지 않기로 한다.

그러고 보니 사랑의 대상에게서도 인정받지 못하는 나기의 사랑이 있구나.

부러져 텅비어버린 이빨 하나만큼의 공간만 남긴 나기의 사랑.

단 한줄의 소식 - 잘 지낸다든지 아니면 죽었다든지 -의 소식을 기다리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그런 사랑.

모든 사랑이 구질구질하고 안타깝고.

그래도 우리의 주인공들은 얘기한다. 계속해보겠습니다라고.....

 

3. 살아간다는 것을 생각하다.

 

산다는 것은 김장을 담기 전에 묵은 김치를 몽땅 꺼내 만두를 만드는 그 속에 있는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시작하기 전에 묵은 것을 갈무리해야 하는 것. 그것이 만두든 감정이든 관계든

양이 너무 많아 냉장고에 다 넣지도 못한 만두를 상할지도 모르지만 밖에 내놓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때로는 모른 척 버릴 수 밖에 없는 감정이나 관계들도 있는 것이고.

그럼에도 함께 만두를 빚으며 그 맛을 상상하고, 함께 하나의 일을 나눠하는 그 순간이 있어 삶은 계속될 수 있는거라고

그래서 그래서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함께 계속 살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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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티나무 2021-02-14 04:54   좋아요 5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소설 좋았어요.^^ 나중에 다시 읽어야지!!!

바람돌이 2021-02-14 23:41   좋아요 0 | URL
전 황정은 작가의 소설은 다 좋아요. ^^

초딩 2021-02-14 11:21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삶은 달걀이 아니고 만두군요!
함께 빚으면 역시 즐거운 것 같아요.
이제 동년배들과도 좀 빚으야겠다 생각합니다 :-)

바람돌이 2021-02-14 23:43   좋아요 1 | URL
이 소설에서는 사회적 통념상 평범함에서 멀고, 힘들고 어렵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저 만두빚기로 상징되는 것 같아요. 어떤 형태든 함께 하는 사람이 있다는게 힘이 되는거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