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코르뷔지에 -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 클래식 클라우드 23
신승철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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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태어나서 최초로 살았던 집은 창고위 다락방이었다.

시골마을에서 오래 살았다보니 그 다락방은 늘 내 눈앞에 있었고, 그곳에서 살던 기억은 간간이 단편들이 떠오른다.

다락방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낭만은 없다.

다락방이니 온돌이 있을리 없고 방은 늘 추웠을테다. (솔직히 너무 어릴때라 추웠던 기억은 없다.)

부엌이 따로 없어 방안에 석유곤로를 두고 밥도 해먹고, 아마도 겨울에는 얼어죽을 듯 시린 방을 난로의 열기로 데우고 두툼한 이불로 때웠을거다.

다락방이다보니 내려오는 계단이 꽤 가팔랐는데 어머니의 증언에 의하면 내가 거기서 몇번 굴렀단다.

지금도 내 머리가 시원찮은건 그 탓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다.

그 집에서 우리집 셋째인 내 막내동생까지 태어났으니 딱 6년을 살았다.

그 뒤 잠시 온돌이 있는 방 한칸으로 옮겼었는데 나는 오히려 이집의 추위가 더 기억이 난다.

겨울이 되면 우풍이 어찌나 세던지 이불속에서 나오지 않고 누워, 얼굴만 빼꼼 내밀고 엄마가 입에 넣어주던 고구마를 먹던 기억이 있다.

내가 8살이 되던 해 아주 작은 양옥집을 새로 지어서 이사를 했다.

부모님이 처음으로 가진 집이다.

지금 생각하면 이 집도 딱히 좋은 환경은 아니어서 앞은 좁고 뒤쪽은 길다란, 그런데 그 뒤쪽이 좌우뒤로 모두 꽉 막혀서 하루종일 햇빛이라곤 일도 들지 않는 어두컴컴한 집이었다.

시골마을에서 가난이란게 뭔지를 알려면 배를 곯아야 하는데 그정도는 아니었고, 자식들 먹는것과 공부시키는 것에 유난했던 어머니덕분에 나는 우리집이 가난한지도 잘 모르고 자랐다. 다행이었다고나 할까?

내 부모님이 햇빛 잘 드는, 사람이 살만한 집을 가지는데는 딱 15년이 걸렸다.

 

그 시절은 내게는 천방지축 행복하기만 한 어린시절이었지만 어머니에게는 어찌 살았는지 지금도 눈앞이 캄캄한 시절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집이란 무엇일까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르코르뷔지에는 집을 살기 위한 기계라고 불렀다그는 우리 삶에 최적화된 집을 만들기 위해 자동차비행기대형 여객선을 모델로 삼았다 기계들은 표준화규격화를 거쳐 가장 효율적인 방식으로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킨다르코르뷔지에는 여기에 시대정신이 담겨 있다고 믿었다집이라는 기계 "목욕햇빛따뜻한 ,
찬물난방요리가족 간의 대화위생아름다운 비례같은 복잡한요구를 가장 실용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충족시켜야 한다산업화 이후 그의 시대는 다양한 재료와 구조를 통해 그에 걸맞은 해결책을 속속 내놓고 있었다- P134

 

르코르뷔지에가 살았던 20세기 초반부터 지구의 인구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기 시작한다.

농업 생산력의 발달과 페니실린같은 항생제의 개발은 그 폭발의 주요 이유 중의 하나였다. 거기다가 산업화 이후의 도시로의 인구집중은 더더욱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고 있었다.

그러면 과연 주택 문제는 어떤 대책을 가지고 있었을까?

 

산업혁명기 투기꾼들에 의해서 지어진  맨체스터의 노동자 주택단지들을 보면 그것은 집이 아니다.

인간으로서의 기본 삶을 해결 할 수 있는 공간이 전혀 아닌 것이다.

 

심지어 저 집들은 주택 하나에 한 가족이 살았던 것도 아니고, 대부분의 가족들은 방 하나를 차지할 수 있었을 뿐이다.

더더더 심지어는 저 마당에서 사는 가족도 있었단다.

 

르코르뷔지에가 말하는 "목욕햇빛따뜻한 ,찬물난방요리가족 간의 대화위생아름다운 비례의 집은 중산층 이상의 계급에게만 해당되는 것이지 사회 하층의 사람들에게는 꿈조자 꾸기 어려운 허상이었다.

 

어떤 건축가도 이 문제에 대해서 제기하지 않을 때 르코르뷔지에는 주장하고 계획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르코르뷔지에는 예술가의 독창성이 발휘된 집에서 누구나   있어야 한다고 믿었다.
주택은 표준화규격화되어야 하고대량생산될  있어야 했다그는 건축가가 아니라 만인을 위한 집을 짓겠다는 고집을 꺾지 않았다
- P176

 

그러면 르코르뷔지에는 도대에 어떤 식으로 모든 사람에게 인간다운 저택을 제공하고자 했을까?

사실 답은 너무 쉽다. 우리 주변에 널려있는 대형 아파트 단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의 도시계획 도판들을 보면 우리나라 곳곳에 있는 아파트 단지들이 바로 떠오른다.

이쯤에서는 그게 뭐야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형태가 같다고 그 속에 담긴 정신이 같은 것은 아니지 않을까?

 

르코르뷔지에가 꿈꾼 도시와 건축을 요약하면

인간의 신체를 기반으로 하는 모될로르 척도에 의해 구획되어 짐으로써 는 공간,

필로티를 세워 벽면의 한계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활용되는 평면을 통해 다양한 가족 구성원들을 자유롭게 수용할 수 있는 공간,

자유로운 입면으로 아름다움을 충분히 표혀할 수 있는 건축,

옥상정원이나 도시내 편의시설들을 통해 모두가 자연을 누리고 휴식과 편의를 누릴 수 있는 건축이라고 할 수 있다.

 

잠시 생각해보면 그 많은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도시의 대안이 아파트 단지가 아니고 무엇이 있을까싶다.

르코르뷔지에의 계획이 한국에 와서 그의 인간적인 척도를 모두 상실하고 형태만 남은 것이 건축가의 책임은 아니지 않는가?

더더군다나 집이 삶의 터전이 아니라 부동산투기와 재산증식의 수단이 되어 버린 것은 더더욱 르코르뷔지에의 책임이 아니지 않는가?

르코르뷔지에 자신의 종교는 건축이었다.

그는 자신의 건축 계획 외에 어떤 이념에도 상관하지 않았다.

심지어 파시스트와도 만나 도시계획을 논의한다.

하지만 그의 도덕성을 논의하기에는 그의 건축이상이 너무 아름답지 않은가라고 반문하고싶다.

누구도 사회적 하층 사람들의 가장 기본적인 주거의 문제를 얘기하지 않을 때 대중을 위한 건축을 얘기했던 어쩌면 건축계의 가장 급진적인 혁명가라고 해도 되지 않을까 싶다.

 

책속에서 르코르뷔지에의 이상을 공유한 오스카 니마이어라는 건축가가 설계한 브라질리아의 도시 구획 사진을 보면 딱 북한의 평양이 떠오른다.

책에서 따로 언급은 없지만 실제로 르코르뷔지에의 계획은 전후 사회주의 국가들에도 많은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싶다.

기본적인 주택의 공급을 국가가 책임진다는 사회주의의 이념에서 르코르뷔지에의 규격화, 표준화를 통한 대단위 도시계획과 주택의 보급은 딱 들어맞는 이론일 수 있다.

실제로 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주택단지를 보면 르코르뷔지에의 구상과 일치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다.

물론 현실의 사회주의 국가들 역시 대부분 주택정책이 성공적이지는 못했던 듯하다.

소설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읽다보면  사회주의 국가에서 청춘들이 자신만의 공간을 갖는 것이 얼마나 요원한 일인지가 나온다.

기성세대들은 국가에서 배급된 주택을 갖고 있지만 이후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가는 더 이상의 주택을 짓지 못하고, 그래서 30살이 넘어도 자신에게 배급되는 주택을 가질 수가 없는 청춘들의 분노가 표현되어 있다.

그러나 이 역시 한국과 마찬가지로 현실 사회주의 정책의 실패지, 르코르뷔지에의 책임은 아니다.

다만 그는 위대한 건축가였던 것이지, 정치가도 사상가도 아니었으므로.....

여전히 우리는 자신의 경제적 처지에 따라 너무도 불평등하게 공간을 점유하는 나라에서 살고있다.

고시촌 쪽방부터 호화 펜트하우스까지.

당장 이 불평등 자체를 다 뒤집어엎자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도 한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은 보장되어야 하지 않을까?

르 코르뷔지에가 말하는 건축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는 건축을 시로 만든 예술가이다.

이 부제에 걸맞는 르코르뷔지에의 대표작을 꼽자면 '롱샹성당'을 꼽아야 할 것 이다.

하지만 나는 르코르뷔지에에게 더 걸맞는 대표작은 마르세유에 세워진 아파트 '위니테 다비테시옹'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건축의 개척자, 건축으로 인간을 품고자 한 혁명가로 그를 불러도 되리라.

 

그런 그에게도 말년의 집은 지중해 작은 마을의 4평짜리 오두막이었다.

그의 아내와 그가 행복을 영위하는데는 그 정도의 공간으로 충분했던 것이다.

그리고 죽은 뒤 그가 차지한 무덤의 공간도 1평쯤 될까나?

그러나 이 위대한 건축가는 자신의 무덤조차도 영혼의 안식을 위한 가장 적당한 넓이와 위치를 계획하고 실현했다.

 

 

내게 어릴 때의 집에서 지금 살라고 하면 너무도 고통스러울것이다.

단순히 그것은 넓이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기본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는 그냥 빈공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나 기본적인 품위를 유지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정도의 경제력이라면 최소한 쪽방에서 사는 사람은 없어야하지 않는가싶은 생각을 간절하게 하게 되는 책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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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nine 2020-10-20 00: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천재였지요.
이책 살까 말까 망설이는중이랍니다.

바람돌이 2020-10-20 00:08   좋아요 0 | URL
지금까지 읽었던 이 시리즈 중에서는 제일 좋더라구요. 그래봤자 4권이지만... ㅎㅎ 다만 대표적인 건축물의 사진은 의외로 없어요. 그건 거의 다 인터넷 열심히 검색하면서 읽었어요

mini74 2020-10-20 00: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어릴 적 우풍 심한 집에서 살았어요 전형적인 싼 자재로 대강 그리고 대량으로 찍어낸 빨간 벽돌 이층집. 볼이 터서 아팠던 기억이 나네요 ~

바람돌이 2020-10-20 00:4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우리 볼이 다 빨갰잖아요. ㅎㅎ 오우 그래도 저에게 이층집은 로망이었답니다. 한번도 못살아봤네요. ㅎㅎ

페크(pek0501) 2020-10-20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집들이 많은 동네를 산책하길 좋아해요. 다양함을 보는 게 재밌어요. 일종의 건축 감상 시간인 거죠. ㅋ
건축에 관한 공부도 흥미로울 것 같군요.

바람돌이 2020-10-21 22: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도 건축에 대해서는 항상 공부하고싶던데 깊이있는 공부가 안돼요. 아직은 그냥 설렁설렁 이 책 저책 뒤지고만 있는데 항상 재밌더라구요. 하지만 본격적으로 들어가면 이 분야는 또 접근하기가 많이 어려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