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 - 너무 멀리 나간 교실 실험
토드 스트래서 지음, 김재희 옮김 / 이프(if) / 2006년 7월
평점 :
품절


"나치가 그렇게 사람을 잡아다 죽이는데,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태평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요? 게다가 그런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주장까지 해요?"

제 2차세계대전을 공부하는 역사수업시간에 학생이 던진 질문으로부터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주인공이기도 한 역사교사 벤 로스는 이 질문에 대해 "글쎄.... 나치는 철저하게 훈련 받은 조직이라, 그 앞에서 감당하기 힘든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 지독한 불안과 공포, 가공한말한 공포"를 느꼈을 것이라는 애매한 대답을 하지만 자신 역시 그 질문에 대해 궁금증을 느낀다.

누군들 궁금하지 않겠는가?
명백히 비이성적이고 우스꽝스럽기까지한 행동들을 모든 인간들이 인형처럼 반복하는 모습.
바로 옆에서 비인간적인 만행이 벌어지는데 그에 대해 아무런 생각이 없는 다수의 인간들.
수용소에 갇힌 유대인에게 왜 모두 똑같은 옷을 입느냐고 묻는 평범한 독일인.
천만의 사람이 죽었다는데 그때 나치가 아닌 대다수의 독일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열광하는 이는 왜 열광하고 침묵하는 이는 왜 침묵하고 방관했을까?

그리고 시작된 실험!
나치의 어린 친위대의 모형을 현실 고등학교에서 만들어 가는 것.
교사의 실험은 처음엔 단지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시작은 별것아닌 약간의 신체적 훈련과 일체감을 같이 느껴보는 정도였다.
하지만 실험이 계속될수록 실험의 내용은 교사의 통제를 벗어나기 시작한다.
아니 오히려 교사인 벤 로스마저도 실험의 한 도구로 전락되어가버린다.
그가 정신을 차리기까지 학교는 그야말로 전형적인 파시즘의 집단적 광기로 폭발한다.

이제 벤 로스는 과연 어떻게 정신을 차리고 실험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자신이 파도라 부른 파시즘적 운동과 분위기에 폭빠져 자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고 자신만만 의기충천해있는 아이들을 어떻게 제자리로 돌려놓을 수 있을까?
그 과정이야 책을 볼 사람들을 위해서 남겨두도록 하자.

다만 이 책에서 소름끼치도록 절감하는 것은
파시즘의 씨앗은 어디나 존재한다는 섬뜩한 교훈이다.
2002년 월드컵의 거리응원과 나찌의 군중대회의 거리는 생각보다 그리 멀지 않을 수도 있다.
특히나 오랜시간 동안 집단주의와 획일적인 군사문화에 익숙해있는 우리의 문화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신체에 각인된 집단주의, 전체주의는 늘 의식보다 먼저 반응해버린다.
민주주의와 개성, 자유에 대한 추구가 나의 의식이라면 질서와 규율의 추구는 나의 신체다.
그래서 나의 신체와 의식은 항상 질서와 규율/자유로움의 그 경계 언저리에서 헤매인다.
나의 어정쩡한 위치 그 어딘가에 파시즘이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자유로와 보이는 삶을 살아가던 이 책의 아이들에게 숨어있던 것보다 훨씬 많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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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17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꽤 매력적일 것 같은 생각이 들어요.

드팀전 2007-04-17 07: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파시즘은 20세기 가장 매력적인 연구대상인 듯 해요..2차대전 이후의 거의 모든 사회,심리,문화연구는 파시즘의 악령에 대한 일종의 경계와 두려움을 담고 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말이지요.그게 한편에서는 정도를 넘은 간섭으로 작용할 경우도 있어보이구요...저도 '군중'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편입니다만 좀 구분이 필요할 듯 보이기도 합니다.이와 관련된 읽을 거리들이 많으니 함께 생각해보면 좋을 듯하네요.파시즘의 씨앗과 파시즘을 동일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파시즘의 씨앗이라는 것은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 인류역사에 수없이 등장하진 않았을까? 군중성이라는 것을 파시즘의 씨앗이라 본다면 모든 집단행동은 파시즘의 요소가 있다고 봐야하는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편의상- '선'을 위한 군집행동은 통제가능하기에 문제가 없고 '악'의 의도가 있는 군집성만 문제삼을 수 있을까? '통제가능성'의 여부는 누가 어떻게 판단하는가? 파시즘의 씨앗이라는 것은 결국 '인간본성'의 한 단면으로 인정해야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왜 하필이면 '독일''이탈리아' 등에서만 파시즘의 발호가 커진 것일까? '파시즘'이라는 용어가 인간 내부의 권위에의 의존,순응,폭력적 배제등의 부정적 요소들을 대표하는 단어로 사용될 수 있을까? ....즉 '군중의 동의에 의한 집단의 광기어린 행동'은 모두 '파시즘'인가?...... 재미있는 질문들 아닌가요?

바람돌이 2007-04-17 1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홍수맘님/주제는 상당히 무겁지만 소설의 전개는 흥미진진하답니다. 재밌어요. ^^
드팀전님/이런 장문의 댓글이라니 부담스럽게시리.... ^^;;
지난 2002년 월드컵때 거리응원을 보면서 저 역시 흥분하고 행복해했었더랬죠. 근데 어느 순간 갑자기 그 영상이 파시즘의 영상과 겹쳐보이는 순간을 경험했었습니다. 이건 순전히 주관적인 감정이었는데 그 순간 전 참 이것도 병이구나 하는 생각을 햇었어요. 그냥 즐거운건 그대로 행복하게 받아들이면 되는데 거기에서 꼭 뭔가 다른 생각을 끄집어내야하다니....
하여튼 문명과 이성을 자랑하던 20세기에 파시즘의 등장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겠죠. 그러니 온갖 담론들이 쏟아지고 저처럼 쓸데없는 걱정으로 웃기는 상상을 하기도 하고.... 요즘 우리나라의 파시즘 연구나 논의는 일상의 파시즘쪽으로 많이 기울어져 있는듯 합니다. 그런 글들을 좀 보다보니 제 고민의 축도 그쪽으로 기울어있는듯하고요. 어쨌든 님이 얘기하신 주제들이 전부 묵직묵직해서 다 공부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계속 고민의 축으로는 삼아야겠죠....

마늘빵 2007-04-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엇, 바람돌이님 이 책 보셨군요! 저도 얼마전에 봤는데. ^^

바람돌이 2007-04-17 1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프락사스님 리뷰보고 이 책을 선택한거였는데요.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바람에 땡스투는 못했지만.... ^^ 님덕분에 리뷰쓰기 힘들었습니다. ㅎㅎㅎ

마늘빵 2007-04-17 1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저 때문에 보게 됐다니 이런 영광이. ^^
전 이 책 수행평가 도서로 주문해놨어요. 학교에다. 애들 읽히려고요.

바람돌이 2007-04-17 14: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고민중.... 중학교 1학년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좀..... 저희는 아직 예산이 없어서 도서관이 없어요. ㅠ.ㅠ

클리오 2007-04-17 14: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머. 내용도 맘에 드는데다 별 다섯의 리뷰... 덕분에 꼭 볼께요.. 나날이 쌓여만가는 보관함.. ^^

바람돌이 2007-04-17 14: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클리오님/지금 예찬이 자나봐요. ㅎㅎㅎ 저는 수업이 비어서.... 일단 소설적 재미도 있구요. 파시즘에 대한 진지한 연구나 어려운 책은 많지만 쉬운 책은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그런 의미에서 별 다섯이에요. 재밌어요.

국경을넘어 2007-04-18 0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시즘... 광기... 근대성... 뭐 이런 이야기하는 책들이 상당히 무거운데요. 개념에 개념을 쌓아서 도저히 올라가기 힘든 책도 있구요. 그런데 이 책은 쉽게 이야기를 풀어가게 되어있나 봅니다. 아이들하고 한번 읽어봐야 겠습니다.

바람돌이 2007-04-18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고등학교 아이들과 같이 읽으면 딱 좋을것 같아요. 전 내년에 아이들과 세계사를 하게 되면 파시즘 부분 공부하면서 같이 읽어볼려구요. 그거 공부하고나면 중학교 2학년정도돼는 애들도 왠만큼은 얘기를 해볼 수 있을 것도 같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