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민중사 1
하워드 진 지음, 유강은 옮김 / 이후 / 2006년 8월
평점 :
품절


인간이란 존재는 참으로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데 인색하다.
개인적으로도 그러하지만 그 단위가 민족 국가로 커져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역사 교과서가 국수적 민족주의로 똘똘 뭉쳐있는것도 그러하다.
민족주의라는 이념이 그나마 식민지를 거치면서 저항의 이데올로기로 기능할때야 그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었지만 이미 우리의 민족주의가 진보적 이념을 상실하고 타인에 대한 배척으로 더 기능하는 오늘에 와서도 우리는 이 이념을 버리지 못한다.
오히려 어쩌면 더 미친듯이 광분하는 모습에 소름이 끼치기까지 할 정도다.
역사학계나 진보적인 진영에서도 그 민족주의(민족적 온정주의라는게 더 맞지않을까 싶지만)에 거스르는 부분을 발견하면 멈칫거리게 된다.
그리고 참으로 편하게 침묵하는 쪽을 택하는 경우를 숱하게 보게 된다.

뭐 나라고 해서 다를까?
한동안 난리가 났었고 언제든 다시 불붙을 동북공정이나 독도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워지면 나는 대부분 침묵을 지킨다.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발언에 찬성해서도 또 그 반대의견에 전적으로 반대해서도 아니다.
나는 다만 그 민족주의의 광풍이라 할만한 바람들이 뿜어내는 위험이 더 무섭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일본의 행보보다도 우리 안의 국수주의적 행동들이 나는 더 무섭다.
그렇다면 당연히 싸워야 하고 논쟁해야 함에도 나는 침묵을 지키는 비겁자다.
헛바퀴도는 감정적 논쟁을 감당할만큼 간이 크지도 못한 면도 있지만
또한편으로는 아직도 예전의 저항적 민족주의의 잔영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잔영은 의외로 깊어 단칼에 쳐낼수 없을만큼 사고의 깊은곳을 지배하고 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것. 우리의 역사를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것은 그래서 여전히 험난한 산이다.

비판의 칼날을 자신의 내부로 돌리는것. 그곳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 거기에 이 책의 진정한 가치가 들어있다.
어중간한 어줍잖은 이런일도 있었지가 아니라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확실하게 칼날을 그어버리는, 자신에 대한 적당한 변명과 그래도 이런 좋은 사람도 있었다는식의 온정주의는 들어설 곳이 없다.
기존의 진보적이라고 하는 역사해석들조차도 자신에 대한 온정적 주저함이 있을때 하워드 진의 비판의 칼날을 비켜갈 수없다.
그래서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는 진정한 역사가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웅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침략과 학살로 역사가 시작된 나라 -미국!
인디언, 흑인, 온갖 천하고 상서러운 신분의 이민자들, 가난한 하층 농민들과 노동자들
그들이 짓밟힌 역사에 어떤 식의 변명도 허용하지 않는다. 또한 어줍잖은 변명을 시도하는 온갖 논의들과도 저자는 명백하게 선을 긋고 싸운다.
그 죄악을 죄악 그대로 낱낱히 고발하는 것.
또한 그 죄악을 옹호하는(의도는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결과적으로 마찬가지인) 모든 이론과 싸우는 것.
그것이 이 책의 두번째 미덕이다.

그러면 오늘날의 이 미국을 만든 것은 정녕 무엇이었을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학살당하고 고통당했고, 또한 처절하게 싸웠다.
그럼에도 그 모든 싸움들이 패배하고 오늘날의 깡패 패권국가가 만들어진 이유는 무엇인가?
하워드 진의 고민은 이 부문에도 상당부분 할애되어있다.
미국의 저항이 보수세력의 품안으로 결국은 포용되어버리는 과정의 단편들을 이 책 곳곳에서 만날수 있다.
아마도 이 주제는 2권에서 본격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지만 1권에서도 그 역사적 연원들을 찾아가는 것은 어렵지 않다.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 정책 덕분에 자본의 여유가 생긴 지배층들이 저항세력들을 포섭해가는과정들이 조금씩 눈에 띈다.
자본과 지배층에 향한 칼날을 무디게 해줄 중간층의 형성과정이 얼마나 기만적인 전술이면서도 잘 먹혀들어갔는가 말이다.
미국의 오늘을 만든 이 지점이 2권에서 어떻게 펼쳐질지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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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07-03-03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에요. 책의 강점을 잘 설명해 주셨어요. 너무너무 탐나지만, 묵히지 않고 읽을 수 있을 때 살래요. 흑흑...ㅠ.ㅠ

홍수맘 2007-03-03 07: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진주 2007-03-03 1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람돌이님의 침묵과 저의 침묵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새삼 깨닫습니다.
저는.....논쟁할만큼...아는..게..없어서뤼....=3=3=3

클리오 2007-03-03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흑흑... 이 책 봐야 되는데.. 여기저기서 좋은 평 만빵에다 하워드 진 아저씨의 책인데... 가격도, 두께도... 어흑흑...

달팽이 2007-03-03 2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좋습니다. 바람돌이님.
저도 국기에 대한 경례할 때
손을 올리기보다
태극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으로 여깁니다.

바람돌이 2007-03-03 21: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마노아님/좋은 책이에요. 하지만 분량이 워낙 만만찮으니 여유 있으실때 천천히 읽으세요. ^^
홍수맘님/그렇게 생각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
진주님/알면서 침묵하는거 그게 훨씬 더 나쁜거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는데... 뭐 그렇다고 제가 제대로 아는것도 아니지만...ㅠ.ㅠ
클리오님/책이 생각보다 어렵지는 않아요. 하지만 워낙에 분량이 많다보니 예찬이 데리고 짬짬이 읽기엔 어려울거 같네요. 생각해볼 문제거리들을 많이 던져주거든요. 읽던 와중에 시간이 조금만 더 되었더라면 중간 중간에 생각이 필요한 지점들을 정리할 생각이었는데 결국 메모만 가득찬 책으로 남고 말았어요. 막판에 진을 뺐더니 다시 정리하겠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님은 나중에 좀 더 여유가 있으시면 보세요.
달팽이/국기에 대한 경례??? 딜레마죠. 제 어정쩡한 타협의 대표지점입니다. 아 괴로워요.... ㅠ.ㅠ

국경을넘어 2007-03-04 0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월서각에서 나온 걸로 가지고 있는데(그것도 몇년 전 서울 가는 길에 힘들게 구해서), 아직도 못 읽고 있네요

kleinsusun 2007-03-04 17: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 120%. 전 아직도 황우석 지지자들이 많은 게....무서워요. ㅠㅠ
잘 읽고, 추천하고 갑니당.^^
개학하셨겠네요. 새학기 즐겁게 시작하세요!

바람돌이 2007-03-04 2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폐인촌님/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으면 선뜻 잡기 힘든 책은 맞는 것 같아요. 전 2월달에 2권을 모두 볼 생각이었는데 결국 1권밖에 못봤어요. 3월은 여유 없는 달이니 그냥 넘기고 4월에 가서 좀 보려구요.
수선님/그렇죠. 한편으로는 웃기면서도 웃긴것 보다는 무섭다는 생각이 더 많이 들어요. 수선님도 올 봄에는 좋은 일들만 생기세요. 에릭 클립튼의 공연을 같이 봤던 그분과의 얘기가 자꾸 궁금해진다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