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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픈 란돌린 ㅣ 어린이 성교육 시리즈 3
아네트 블라이 그림, 카트린 마이어 글, 허수경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2월
평점 :
책을 등 뒤로 감추는 아이를 보면서,
이 책은 비밀을 말하는 책이구나 하는 서글픈 자각을 했다.
아침에 그림책을 읽어주면서 조금은 부담스러운 주제인 이 책을 꺼낸 것은 의도적인 것도 있었다. 아이의 반응을 한 번 보고 싶었다고나 할까.
바쁜 아침도 아니니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욕심에 가까운 마음이었는데, 국 데우느라 잠깐
자리를 뜬 사이에 거실에 가서 등 뒤로 보던 페이지를 돌려서 들고 있는 것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다. 그건 아빠가 읽어주기를 절대로 원하지 않는다는 무언의 시위였던 것이다. 어느새 그림을 보면서 아빠의 것과 같은 성기를 보았던 것이다.
아이는 눈이 동그랗게 되어서는 이해하는 눈빛으로 말끄러미 내 눈을 쳐다본다.
그 눈을 들여다보면서 부끄러웠다. [그래, 네가 살아갈 세상은 이런 어른들이 있는 세상이란다. 그리고 늘 보호해주고 싶지만 그렇지 못할 수도 있어. 그렇지만 그건 너와 같은 아이들이 잘못한 것은 절대로 아냐. 책 속의 아줌마 말처럼 브리트가 싫다고 하는데도 억지로 행동한 남자어른이 나쁜 거야. 네가 숨기지 않고 도움을 청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은 충분히 좋은 책일 거야. 그렇지?] 마음속으로 되뇌이면서 밥상을 차리고, 아침을
먹는 내내 아니 하루 종일 책 속의 브리트가 떠올라서 마음이 아팠다.
란돌린에게 밖에는 털어놓지 못하고 아팠을 브리트가 가여워서 얼마나 슬펐는지 모른다.
말못하는 란돌린에게 기대어서 슬퍼하고 아파한 브리트.
책의 처음 장에서 밝게 웃는 브리트와 란돌린의 모습이 어두워지고 눈물 짓는 모습이 보일 수록 가슴이 너무 아려서 어찌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어린이 성폭력에 대한 이야기는 늘 우리의 주변을 떠돌면서 여자라는 것이 죄인인 것은 아닌가 생각하게 하는 어처구니 없는 주객전도의 생각까지도 하게 한다.
아직도 사회의 인식은 “그럴만한 행동을 했으니 그랬겠지“ 란 무지한 말로 피해자들을 아프게 하고 쉬쉬하게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단지 의식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생각하는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는 어른들은 자신 이외의 사람에게는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몸만 커다란 아기일 뿐이란 생각을 해본다. 마음이 철저히 병들고 망가진 사람들.
정상적인 사고로는 도저히 일으키지 못할 행동을 단지 남자라서 충동을 못 참아서란 변명을 늘어놓는다면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
여전히 하고픈 말들과는 많이도 다른 이야기이다.
한도 끝도 없을 듯한 이야기들. 그런 이야기들은 그만하고 란돌린에 대해서 이야기해보자.
란돌린은 브리트의 둘도 없는 친구. 어릴 적부터 같이 있어온 소중한 존재. 즉 애착대상이다. 이 책에서 보면 엄마는 늘 바쁘고 재혼을 한 상태이다. 대개의 재혼을 하는 여성들은
경제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것이 부양가족이 있다는 것은
더욱 열심히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당면이유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는 재혼한 남성이 자신의 딸을 성폭행하는 것도 모르고 아이도 잘 못 챙기는 무심한
엄마로 나오는데 조금 지나친 감이 있긴 하지만 지치고 피곤한 상태로 아이에게 신경 쓸 여력이 전혀 없는 상태일 것이다. 일전에 아는 언니와 통화를 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었다. 아이들을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지 돈을 벌기 위해서 아이들을 희생 시키는 것인지 모르겠다는 말들. 착잡하고 슬프지만 그것이 일하는 바쁜 엄마의 현실이다.
그리고 그 기회를 이용해서 자신의 욕심을 차리는 의붓아비를 방치하게 되어서 더욱 슬플 엄마. 모르겠다. 예전에 백설공주의 변형된 이야기를 보니 백설공주를 성폭행한 친아버지인
왕과 그 모습을 보면서 친어머니인 왕비를 계모로 그린 사랑을 잃은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진 책을 본 적이 있다. 심리학적인 것이니 잘 모르겠지만 같은 여성으로서 슬퍼하고 아파하면서도 여자로서의 자아는 딸의 상처 입은 모습보다는 자신의 상처를 더욱 크게 부각시키게
되기도 한다고 한다. 그런 의미로서 엄마에게 털어놓지 못하고 혼자서 아파하고, 엄마가 아닌 신뢰할 [다른 어른] 에게 털어놓고 도움을 청하는 스토리가 일견 이해가 간다.
가끔은 가족 내부가 아닌 다른 시각이 필요한 것일 수 도 있다.
어쨌든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편하고 힘들었던 심정들을 쏟아놓기는 했는데 이 많은 글들 속에 내마음을 얼마나 표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저 슬프고 분하고 이런 일이 내 아이에게는 절대로 생기지 말았으면 하는 이기적인 엄마일 뿐임을 확인할 뿐이다.
** 이런 류의 책을 한 번 읽고 나면 진이 빠진다. 나만 그런 것일까 묻고 싶다.